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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암 극복-간증문

  • 박상건
  • 2007-11-08 14:3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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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문>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저에게 생명을 주시고 주님께서 오늘 이렇게 살아 계셔서 역사하심을 증거케 허락하시니 진정으로 감사드립니다.
저희들이 기도할때나 찬양할때나 언제나 습관적으로 간구하고 부르짖는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하여 주시고, 지극하신 사랑으로 영의 마음과 육의 세포 하나하나가, 그 속의 유전자가 어떻게 반응 하는지를 보여주시니 진실로 감사드립니다.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실재하심을 보여주시고 사랑으로 회복케 하시니 이를 증거하여 여기에 모인 모든 이들로 사랑의 생명력을 알게 되기를 간구하오며 거룩하신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간증문>
일전에 담임목사님 설교중에 잠언 24장의: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지더라도 ”의 제목으로 말씀 하신적이 있습니다.
그 설교말씀을 들으면서 제가 물론 의인은 아니지만 여태 살아온 지난날을 돌이켜 보았습니다. 저는 가정적으로나, 정신적,경제적으로 그리 힘든 생을 살아오진 않았지만 참으로 죽을 고비를 많이 넘긴 것 같습니다.

첫 번째는 1954년 경으로 저는 아기때이므로 기억은 못하지만 어머니를 통해 들어 알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질에 걸렸던가 봅니다. 무얼 먹어도 금방 토하고 설사를 하여서 아무것도 소화할 수가 없었고, 당시 의료상황도 형편없어 거의 죽음의 일보 직전까지 갔다가 생명을 건진 경험이 있습니다.

두 번째는 1956년으로 제가 다섯 살때 부모님과 함께 잠시 고향을 떠나 황간에서 살았던 때의 일 입니다. 당시 살던 집에서 철길넘어 있는 동네에 가게가 있었기 때문에 누나와 함께 자주 갔었는데 하루는 누나가 먼저가고 저혼자 뒤쳐저 오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일을 하시다 혼자 오는 누나에게 “기차시간 다되어 가는데 상건이는?”하면서 언덕위의 철길을 올려다 보니 제가 철로에 발목이 빠져 울고 앉아있고, 멀리 기차가 오는 절박한 상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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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께서는 맨 발로 언덕을 오르시고 주변사람들은 타이밍으로 보아 엄마와 아이 다 죽겠다고 안타까와 했는데 어머니께서 저를 들쳐 안자마자 기차가 지나가는 그 간발의 차이로 목숨을 건져 어머니를 통해 두 번태어난 적이 있습니다.

세 번째는 1968년 고등학교 1학년때 친구들과 태종대에 수영을 하러 갔다가 깊은 바다를 수영중에 태풍이 오기 직전이라 점점 파도가 험해져서 같이 갔던 친구들 중 한명이 위급한 상황에 처해 무작정 구출하려다 실패하고 결국 그 친구는 익사하고 저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사춘기때 깊은 상처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네 번째는 77년 군대 생활중에 심한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저는 아주 편한 군대생활을 했는데  용산의 미8군 본부 번역반에 근무하여 허구한날 이태원에 나와 술을 마시곤 하다가 어느날 술에 취해 귀대중에 택시에 받혀 중상으로 죽음의 일보직전까지 간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얼굴의 흉터가 남아 있듯이 흉악해져 장가도 못가는줄 알았는데 집사람이 구원해 주었습니다.

다섯 번째는 82년도 저의 딸 진아가 태어난지 얼마되지 않은때 인데 잠자던 중에 갑자기 혼수상태에 빠져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6시간에 걸친 대수술 끝에 목숨을 건진적이 있습니다. 이때 꽤맨 상처가 아직 남아있어 항암제 복용시 머리카락이 다 빠지면 흉하겠구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머리카락이 빠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뒤 한 20년간은 별 탈없이 지냈는데 지난 2002년 5월 1일 노동절날 예고 없이 혈뇨가 나와서 포이동에 개업하고 있는 고등학교 친구 병원에서 진찰해보니 신장에 혹이 있어 심상치 않으니 큰 병원에 가보라 하여 영동 세브란스 병원에서 진단결과 신장암 판정을 받아 서울대학 병원으로 옮겨 오른쪽 신장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여섯 번째 입니다.

2002년 초 까지만 해도 저는 겉으로 보기에는  85~6kg의 풍채좋고 아주 건강한 상태로 운동도 열심히 했습니다. 누구보다 건강에는 자신이 있었지요. 그런데 이것이 다 헛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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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핑계로, 또 친구 좋아서 허구한날 술독에 빠져 있었고, 담배와 과도한 육식, 과식등 나쁜 생활습관과 물욕, 정욕등 영적인 죄로 인한 스트레스로 몸속에는 암세포를 키우고 있었던 거지요.

제가 벧엘로 가지 않고 세상 것을 쫓아 세겜에서 헤매는 대표적인 사례로
2002년초 직장동료의 환송회때 2차, 3차까지 가서 의식불명의 만취상태에서 부하직원이 대리운전 기사를 부르러 간 사이 직접 운전을 자행하다가 택시를 뒤에서 들이 받고서 음주운전이 두려워 뺑소니를 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다음날 출근할려고 차고에 차를 보니 여기저기 상처가 있었으나 간밤의 사고를 기억 못한 저는 강남경찰서에서 뺑소니 신고를 받고 차적 조회 끝에 연락이 와서 비로소 사고를 알게되고 경찰서에 가 보니 택시 운전사와 승객 2명이 병원에 입원해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때의 황당함과 자괴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살아오면서 저한테는 술이 바로 마귀였습니다.
당시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아 신장에서 크고있던 암세포가 급격하게 커지는 결과를 초래하여 갑자기 혈뇨가 나오고 암을 그나마 조기에 발견하게 된 것은 주님의 경고와 은혜였겠지요. 

 저는 20여년전 아내를 따라 처음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성경 읽기는 물론 기도도 거의 하지 않고 주일에만 겨우 교회에 잠깐 참석하는 지극히 형식적인 교인이었습니다. 저의 관심은 온통 세상적인 즐거움에만  있었고 이에 대한 자책감도 없이 당연한 것처럼 여기며 살았습니다. 주님을 만난 적도, 스스로 에타게 찾은 적도 별로 없었습니다. 암이라는 죽음의 병에 걸리지 않았다면 아마 평생을 그렇게 살았을 것입니다.
신장암 선고를 받고 비로소 인간의 나약함을 절감하고 주님을 간절히 찾게 되었습니다. 여태것 요리조리  죽음의 문턱을 용케 피해왔는데, 세상에 악한 사람도 많고 저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 피해를 주면서 살은 것같지도 않은데 이제는 심지어 암이라는 막다른 길로 몰고 가시는가 하고 한편 하나님에 대한 서운한 원망의 마음도 생겼지만 생명에 대한 미련과 집착으로 주님을 찾으며 간절한 기도와 자괴의 눈물을 흘리면서 주님 앞에 약속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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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담배를 끊겠다고,  둘째, 그때까지도 술을 끊겠다고는 못하고 다시는 취하도록 마시지는 않겠다고, 셋째, 하나님을 위한 일을 하겠다고...

다행히 수술은 잘되어 수술후 신체 어느 곳에도 암세포가 없으니 항암치료도 받을 필요가 없고 6개월 마다 정기검진만 받으면 된다고 하는 서울대 병원에서의 검진결과와 의사선생님의 말만 믿고 재발의 의심없이 일상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만약 제가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신앙 생활을 잘 하고 절제있는 생활을 했다면 아마 암이 재발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성가대 활동으로 주님께 봉사하면서 점점 주님 보시기에 좋은 아들이 되는 듯 했습니다. 그렇게 2년을 별 걱정없이 지내면서 ‘내가 원래 건강하여 암도 쉽게 극복하는구나’하는 교만한 마음으로 점점 생활도  나태해져 갔습니다. 빈번한 해외 출장중에 해외 거래선을 핑계삼아 끊었던 담배에 다시 손을 대고, 과음하는 횟수도 늘어가는 등 과거의 생활습관으로 되돌아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작년 2004년 4월에 포이동 친구병원에 점심이나 같이 하기위해 들렀다가 우연히 X-ray검사를 받아보니 임파선이 비대해 진 것을 알게 되었고, 서울대 병원에 입원하여 정밀 검사를 받아본 결과 신장암이 임파선을 타고서 폐쪽으로 전이된 상태로 여기저기 퍼져있어 절망적이 상황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저의 매형이 의료계 친분이 많아서 저의 의료 File을 복사해서 삼성의료원, 중앙병원, 일산 암센타등 최고 전문의들에게 상담해 봤지만 한결같이 절망적인 말이었습니다. 한마디로 현대의학으로는 살 수 있는 가망이 전혀 없는 상태이었습니다.
이것이 일곱 번째 입니다.

이렇게 일곱 번을 죽음의 일보직전 까지 몰고 갔다가 구원하셔서 이렇게 간증의 자리에 설 수 있도록 하신 것을 보면 하나님의 이 사람에 대한 사랑이 크신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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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어야 1년 이라는 시한부 생명의 통보를 받는 최악의 절망 상태까지 가게되어, 제일 먼저, 여태 25년간 고생만 시킨 아내와 자식들에게 미안하고, 유달리 생의 고비를 많이 넘기며 애태워드린 어머니께 미안하고, 밤낮으로 기도하시는 보람도 없이 딸자식 고생만 시킨 장모님께 미안하고, 무엇보다 생을 잘못살아온 저 자신에게 미안했습니다.  아무리 후회해도 이미 때는 늦었고, 나는 이미 죽음에 한발자욱을 디딘 상태였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선택의 기로에 처했습니다.  암이 재발하여 9개월여에 걸친 항암제 투여 결과, 별 효과를 보지 못하고, 더 독한 항암제를 써보자고 하는 서울대병원의 결정을 따라야 하는지, 하나님을 의지하며 식이요법등 대체 요법으로 나아갈지, 생명을 담보로한 선택의 기로에 처했습니다. 그래도 한국의 최고 권위의 전문가들이 제시한 길을 가야하지 않을까하는 갈등으로 아내와 함께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이때까지도 오직 하나님만이 제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확신이 없었던 게지요.
 이때 저의 40년 친구인 비전교회 손 목사님 부부가 매주 같이 청계산 등산을 하면서 병원 치료를 포기하고 하나님 의지하면서 대체요법으로 치료할 것을 거의 강권하다싶이 했습니다.  때마침 저의 처제도 저를 놓고 간절히 기도하던 중, 방언의 은사를 받고 “하나님을 붙들어라 그러면 하나님이 꼭 살려주신다. 그 후에 이를 증거해라”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울면서 애원을 했습니다.
 항암치료도 결국 드러난 현상을 단기적으로 고치는 치료이지 그 근본원인을 고치는 치유는 아니라는 판단과 결국 내가 살 수 있는 길은 하나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 저희는 병원 치료를 포기하고 그때부터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철저한 식이요법, 대체요법, 운동에 전념 했습니다. 저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이었습니다. 이는 곧 저의 아내의 투병일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도 죽음을 앞에 둔 마음에 어찌 걱정, 불안, 초조가 없을 수가 있겠습니까 ?  그럴 때마다 이사야 41장 10절의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의 말씀을 붙들고 간절히 기도하면서 마음의 평강을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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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던 중 올해초 오순절 새벽기도 시간 중에 회개의 은사를 받았습니다. 눈물로써 회개하는 동안 저의 병은 그동안 제가 잘못 살아온 생활 습관과 영혼의 죄로 인하여 스스로 자초한 병으로 암세포도 결국 오랫동안 누적된 탁해진 피와 독소로 인해 유전자가 변이된 장애아로 모든 게 내탓이며, 따라서 내가 변해서 암세포가 정상 세포로 회복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드리고 또 그렇게 될 수 있다는 확실한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현대의학적 치료를 과감히 포기하고 집에서 아내와 함께 식이요법, 대체요법, 운동등 자체 면역력 증강에 전념한지 8개월 여만에 최근 서울대 병원에서의 정말진단결과 평소에 자기표현에 박하셨던 담당 의사선생님께서 여태 수많은 환자들을 보아왔지만 자기로서는 처음보는 기적같은 현상으로 폐속의  암세포는 완전히 사라지고 임파선쪽만 1/6정도로 축소되어 조금 남아있는정도라는 놀라고 또 놀라게되는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할렐루야!!!!
저는 아직 완전하게 회복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틀림없이 완치시켜 주실 것이란 확신을 안고 오늘 이 간증에 임하고 있습니다.

암재발 사실을 알고 이내 저희는 일단 과천의 청계산 자락의 공기좋은 곳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저의 집에서 나서면 바로 청계산 등산로 입구이고 30분정도 걸으면 대공원 산림욕장의 깊은숲에 다다릅니다. 이사를 온지 근 15개월동안 거의 매일같이 산림욕장을 찾아 이제는 계절따라 피는 구석구석의 꽃, 나무, 그리고 그 향기가 몸에 베어 어떨때는 스스로 산속에 동화 되어 가는 느낌을 받곤 합니다.

물론 다니던 직장은 그만 두었고, 생식과 무염식의 철저한 식이요법을 했습니다. 여태 수 많은 시행착오를 하며 살아왔지만 여기서 또 한번의 시행착오는 곧 죽음을 의미했으므로 식이요법 하나하나에 저의 집사람의 온 정성과 노력,  그리고 기도로 준비되고, 조리되었습니다.  말이 생식이고 무염식이지 실제로 경험해보지 안으면 이것을 1~2년 장기간 동안 실천한다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릅니다. 지금도 저는 제일 먹고싶은 음식을 꼽으라면 잘 익은 김치과 구수한 된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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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암이기 때문에 무염식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먹지않았습니다.

때로는 힘들어서 한번씩 해이해질라하면 항상 옆에서 부릅뜬 사랑의 눈으로 감시하고 있는 아내의 애원과 다그침으로 극복하곤 합니다.
                 
저는 참으로 복이 많은 사람인가봅니다.

저는 최근 3년여에 걸친 암의 발병과 수술, 재발과 투병을 해오는 동안 잃은것도 있지만 훨씬 더 중요한 것을 얻었습니다.

첫째. 저에 대한 아내와 자식들의 지극한 사랑과 그들을 향한 저의 사랑을 서로가 확인하게 되고, 이를 더욱 키우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둘째, 15년을 섬기던 원로 목사님,고목사님, 교역자들과 온 동산교회 식구들의 기도와 사랑을 분에 넘치게 받았습니다.

셋째, 비전교회 손목사님을 비롯해 나를 위해 기도해 주는 많은 친구들을 통해 뜨거운 우정의 진실함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가장 크게 얻은 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확인한 것입니다.

그당시엔 잘 몰랐지만 제가 살아오는 동안 죽음의 고비를 넘길때마다 하나님이 항상 제 곁에서 저의 생명을 지켜 주셨음을 알게되었습니다.
제가 잘못된길을 헤메고 있을때 경고해 주시고 그래도 제가 돌이키지 않으면 때론 매로 때리시면서 지금 제가 이렇게 이 자리에서 간증할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생각해보면 공기좋은 청계산으로 이사하도록 등산로 바로 입구에 마침 빈집을 예비해 주셨고, 또 때마침 덧밭도 분양 받아 직접키운 채소로 건강을 지킬수 있게 해주시는등 하나 하나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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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도 마음속으로는 하나님을 만나는 성령 체험을 통해 그 순간 제 몸이 완전히 치유되는 기적의 역사를 내심 기대하면서 간절히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확신합니다.  저를 가장 잘 아시는 하나님이 저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온전케 하시며 저에게 가장  적합한 방법으로, 적당한 때에 저를 치유해 주신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건강유지에 있어 마음가짐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실제로 우리몸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세포, 즉 유전자는 사랑에 반응한다는것입니다.  새로운 세포가 생겨나기도 하지만, 세포가 재생된다는 것은 기존의 손상된 유전자가 다시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굉장한 에너지가 필요한데 이 세포를 재생시키는 힘! 그것이 바로 생명력입니다.
병이 났다는 것은 세포 즉 유전자에 사망적 사고가 일어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병을 나을려면 새로운 생명적 혁명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 답은 하나님이 생명을 창조할때의 모습인 올바른 생활과 영원한 진리인 “사랑”입니다.

다시말해 실제적으로 유전자를 움직이는 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비록 암이라는 무서운 병뿐만아니라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겪게되는 수많은 문제들에 있어서도 가장 근본적인 해결방법은 사랑이라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바로 “제”가 하나님과 가족들, 친구들, 교회식구들의 사랑으로 죽음에서 다시 살아난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끝으로 우리 동산교회가 사랑의 중보기도를 통해 저와같이 육적으로, 영적으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영혼들이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치유되는 기적의 역사가 계속해 일으나는 은혜와 사랑의 교회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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