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암선생의 회고-뇌진탕 회복(2005년8월호)
- 자연건강
- 2005-08-12 11: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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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암 김흥국 선생의 회고
문 경 동
저는 자연건강 1급 지도사 74호입니다. 1982년도 4월 3일~6일(4일간)에 제가 부산에서 제4차 때 지도사 과정을 이수하였으며 올해 나이 76세입니다. 제가 나이 40세였을 때 몸이 아파서 병원을 내 집처럼 다녀야 했습니다. 알 수 없는 질병과 위궤양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난치병에 시달려 몸이 마를 대로 말랐으며 설상가상으로 암 진단까지 받게 되어 병원에서 시키는대로 치료를 받고 약을 밥보다 많이 먹었지만 몸의 상태는 점점 나빠 갈 뿐이었습니다.
절망 속에서 헤매던 그 무렵에 직장 선배의 주선으로 청암 김흥국 선생님을 뵈옵고 서식건강법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난생 처음으로 서식건강 독본을 읽었습니다. 저는 부처님의 말씀을 진리로 알고 있으며 부처님 다음으로 니시가쯔죠 선생의 자연의학이 진실되고 참다운 진리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연이야말로 철학이며 종교이며 의술임을 깨달았습니다. 소식과 캬베쯔 요법, 감잎차와 생청수 먹기, 그리고 보건요양 6대법칙을 생활화 하고, 냉온욕과 나체요법(뒤에 풍욕법이라고 하면서 테이프는 청암께서 만든 것을 제가 단식할 때 최초로 사용하였습니다) 을 실행하였는데 날로 좋아지는 느낌이 오고 또 건강을 되찾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 뒤 청암선생께서 저에게 일러 주시기를 병은 피의 혼탁이며, 자세의 불안정에서 오는 것으로, 그의 원인은 숙변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선생님의 말씀에 공감하였으며 매료되어 단식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선생께서는 처음 하는 단식이니 혼자 하기가 어렵다고 하시면서 선생님의 자택(부산시 문현동)에서 함께 하자고 하시었습니다.
처음에는 3일간의 단식을 계획하고 시작하였으나 저를 위해서 함께 단식하시는 선생님의 열의와 자상한 지도, 격려에 힘입어 본 단식 7일을 마쳤습니다. 그때 대형 건강기가 지금은 산청분회에 비치되어 있는데 감회가 깊습니다. 단식 후의 회복식을 마치는 날 저더러 단식 기간 중 저의 일과생활을 보시고는 “원만히 수행을 마쳤다. 이제는 나의 제자로 받아준다”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선생께서 그 뒤 부산의 송정에 단식원을 개설하셨을 때, 저는 두 번째 단식을 실시하였고 두 차례의 단식 후에는 매일 냉온욕을 하였으며, 2년 전부터는 이틀에 한 번씩 하고 있습니다. 5년 전부터는 아침도 먹지 않고 생활을 하고 있는데 그때부터 오늘까지 약을 먹을 일도 없고 병원에 간 일은 병문안을 위하여 갔을 따름입니다.
저는 자연건강을 접하게 되어 병마를 물리치고 건강을 되찾은 사람으로 김흥국 선생께서는 항상 겸손하시고 남의 말을 긍정적인 입장에서 귀를 기울이며 남을 도와 병고에 시달리는 환자에게 최선을 다하여 자연의학으로 복귀하는데 심혈을 기울이는 선생님의 뜻을 받들어 지금까지 본받아 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생활할 것임을 오늘 추모회준비위원의 한 사람으로서(사회자) 청암 김흥국 선생님 영전에 굳게 다짐합니다.
저의 또다른 자연건강의 체험은 건강이 회복된 후 업무상 피할 수 없는 술자리가 많았는데 어느 하루는 술에 취해 넘어진 후에 수족을 쓸 수 없게 되어 병원에 실려가 뇌진탕이라 하여 바로 수술을 하였습니다. 마취에서 깨어 병실에 있을 때 의사와 간호사들이 저를 에워싸고 질문하기를 하나에 하나를 더하면 얼마냐 하여 쉬운 문제여서 둘이라고 답하였고, 열에 하나를 더하면 얼마냐고 하는 질문에 11이라고 답하였더니 100에서 50을 빼면 얼마인가 하므로 또 의사는 이제는 안심해도 좋다고 하면서 약을 주었는데 그 약이 어이없게도 간질병 약이었습니다.
수술 후에 병원에 문병을 오신 선생께서 저에게 좌우요진을 늘 하라고 권하시고 간질약은 먹지 말라고 하시기에 화장실에 가서 약은 버리고 링거 주사 바늘을 꽂은 채 좌우요진을 실시하였던 것입니다.
수술을 일요일에 하였으나 6일 후인 토요일에는 좌우요진의 효과가 있어 몸을 움직일 수 있었기에 퇴원하겠다고 요청하였으나 병원측에서는 신기할 정도로 회복이 빠른 것은 인정하지만, 뇌 수술을 한 사람이니 3개월은 입원 치료를 하여야 하니 퇴원을 허락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주치의를 만나 상담을 하면서 보게 된 사진에는 엉킨 피의 일부분만 수술하였고 차후 다시 수술을 해야 할 뿐만 아니라 갑자기 상태가 나빠지는 경우를 생각하여 퇴원을 허락할 수 없으나, 꼭 퇴원을 하겠다면 말릴 방법이 없으니 만약에 퇴원 후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병원측에는 책임이 없다는 본인의 각서와 가족들의 보증까지 받은 후에 퇴원 수속을 하였습니다.
퇴원 후에도 좌우요진을 계속하고 자연건강법을 따라 생활하였는데 며느리가 병원에 가야 한다고 졸라 마지 못해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 사진을 찍었는데 결과는 재수술을 하여야 한다던 핏덩이가 사라지고 없는 것을 확인하자 저도 놀랐지만 이 자리에서 좌우요진(등배운동)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저의 어머님이 78세 때 몸이 불편하시어 물조차 넘기지 못하시어 병원에 갔더니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기에 병명을 물었더니 병명을 알기 위하여 수술을 하여야 한다는 어이없는 답이었습니다. 그래서 의사와 크게 싸우고 강제 퇴원을 하여 중앙동 모병원에 입원하였더니 담석증이라는 진단을 내리고 수술을 하자고 하였습니다.
수술만하면 완치가 되느냐고 하였더니 의사는 결과는 해보아야 알겠다라고 하였습니다. 의사의 답을 듣고 수술에 동의하지 않았던 바, 약명을 적어주어 국제시장 약국에서 약을 구하여 드렸으나 오히려 사경을 헤매시게 되셨습니다.
병원에서는 우리로서는 고칠 방법이 없으니 임종을 맞으시게 퇴원을 하라고 하였을 때 청암 선생님께서 오셔서 체모관측을 하신 후에 장이 꼬인 것이니 생수에 마그밀을 타서 숟가락으로 조금씩 자주 마시게 하고 붕어운동을 하시게 하라는 말씀이 계셨기에 구급차로 집에 모시고 오면서 차안에서 제가 마그밀액을 기구로써 경구 투여 했습니다. 집에 도착하여 형제들에게는 “병원에서 가망이 없다고 하나 어머님을 그냥 보내실 수가 없으니 자연건강법으로 내가 치료하여야 겠다고하였을 때 형제들의 반대는 없었습니다.
청암 선생님의 지도로 저는 조수가 되어 시키시는 대로 누워계신 어머님의 몸을 흔들어 붕어운동을 실시하여 마그밀수를 드시게 하고 관장을 하였습니다. 자연요법으로 치료를 시작한지 일주일 후 아랫도리에 피가 터져 나왔는지 온 방이 핏빛인데 피가 아니었고 숙변이 터져 나온 설사였습니다. 이후 건강이 회복되어 치매나 다른 아픈 곳 없이 94세에 자연사 하시었습니다.
자연건강과 김흥국 선생님을 만나지 못하였다면 천추에 씻을 수 없는 한을 남겼을 것입니다. 김흥국 선생님께서는 생노병사(生老病死)가 아니고 생장노사(生長老死)라고 항상 말씀하셨습니다.
물건은 쓰다가 오래되면 망가져서 없어질 뿐(成住壞空 : 성주괴공) 병이 없는데 태어나서 잘 살다가 늙으면 가는 것이지 사람에게 병이란 글자가 붙어서는 안된다는 말씀이셨습니다. 김흥국 선생님에 대하여 많은 일화(逸話)와 추억담이 있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닿으면 말씀올리겠으며 머리 숙여 청암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자연건강 1급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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