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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혈병을 생채식으로 고친 이야기

  • 이근영
  • 2005-02-02 15:5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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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ze: 12px;">백혈병을 생채식으로 고친 이야기

그러니까 지금부터 약 8년전 나는 이유없이 체중이 줄어들고 힘이 쭉 빠지면서 식욕도 갈수록 떨어지면서 얼굴에 병색이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경남과 부산에서 병원이라는 병원은 거의 다 다녀봤고 유명한 한의원도 거의 다 다녀봤다. 4촌도 의사와 한의사가 있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조카의 권유로 서울의 유명한 한의대가 있는 한방병원에서도 진찰과 치료를 받았으나 별 효과를 보지 못했다. 지방에서 비행기를 타고 1주일에 한번씩 병원에 드나들었다. 직장생활을 계속 하면서 서울로 병원에 드나드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처음 2개월은 좀 효과가 있는 듯 했으나 2개월이 지나니 예전처럼 그대로 다시 되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때 우리 가족들은 모두 내가 잘못 되는 줄 알고 울고불고 하면서 걱정이 태산 같았다.

병명을 모르면 무조건 신경성
나는 힘들고 어디가 불편한지 모르지만 여하튼 불편하고, 잠도 잘 오지 않고, 식욕이 떨어지면서 체중이 줄어들고, 얼굴에 병색이 완연한데 의사는 한결같이 병명도 모르면서 그냥 신경성이라고 한다.
그래서 아내는 제발 모든 일에 신경을 쓰지 말라고 하는데, 나는 집이나 직장에서 별로 신경 쓰는 일이 없다고 해도 아내는 내 말을 믿지 않았다.
처음에는 나도 의사의 말대로 신경을 많이 쓰는 것이 신경성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의사가 신경성이라고 하는 말은 ‘나는 병명을 모릅니다.’ 라는 말과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의사로서 자존심은 있고 환자들에게 실력 없는 의사로 보이면 환자들이 오지 않으니까 병명을 모르면 모두 신경성이라고 병명을 붙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참 편리한 발상이었다. 

단식의 권유
그러던 어느 날 집안 아저씨가 업무상 볼일이 있어 직장에 찾아왔다.
몇 년 만에 보는지라 얼굴이 형편없는 나를 보고 ‘왜 그러냐.’ 고 물었다. 나는 ‘아무 병명도 없이 이렇게 되었다. 의사도 병명을 모른다.’ 라고 하니 ‘그럼 단식을 해 보라’ 고 권유를 하였다.
그래서 아저씨의 권유대로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단식을 하기로 결심하고 서점에 가서 단식에 대한 책을 2권 구입했다.
명절인 추석날부터 단식을 시작했다. 단식에 대해 전혀 아는 것이 없으면서 그냥 책만 보고 생수단식을 시작했는데, 이틀 후에는 잘 걷지도 못하게 되었다.
체력이 형편없이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 생수단식을 했으니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단식에 대한 지식이 없으니 우선 책을 쓴 저자에게 전화를 했다.
죽염을 조금 먹고 자기 집으로 오라고 해서 그리로 갔다.
집으로 가니 상세한 설명도 없이 직장에 휴가를 한달 내어서 자기 집에서 단식을 해야 된다고 했다. 그렇게 한다고 약속은 했는데 직장 사정이 그러질 못해서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자연건강법과의 인연
병은 하나인데 약과 치료법은 엄청나게 많았다. 병자에게 생명을 담보로 속이는 사람도 많다. 심지어 수기(손의 기술)로 암과 모든 병을 고친다는 사람에게도 속아 봤는데, 급하면 안 속을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그때는 잘 몰랐다.
그건 그렇고 후배의 추천으로 안현필 선생님의 저서를 모두 구입해서 현미자연식과 생식을 시도해 봤다.
그때 생현미를 먹으면서 치아가 나빠져 지금도 그 영향이 조금 있다. 현미는 고오다 선생님의 추천대로 방앗간에서 빻아서 가루로 만들어 먹어야 소화흡수도 잘 되고 치아가 손상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신문을 보고 한국자연건강회를 알게 되었고 돌아가신 정은영 이사님을 소개 받게 되었다. 진주에서 직접 생채식을 실천하고 계신 정은영 이사님께서는 고오다 의원에도 입원한 경험이 있으셔서 자연건강법에 정통하고 있었으며 특히 생채식에는 일가견이 있으셨다.
이때부터 정통 자연건강법과 인연이 되어 1급건강지도사 교육을 받았고, 생채식을 2년간 실행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그 후로 쭉 자연건강법을 실천하면서 생채식과 단식을 반복하여 지금은 건강하게 직장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친구 아들이 백혈병
1998년 가을 어느 날 마산에 사는 고향 친구로부터 급한 연락이 왔다.
고등학교 3학년인 아들이 급성 골수성 백혈병으로 서울의 유명한 모병원에 입원을 했는데, 내가 생식을 한다는 소문을 듣고 조언을 좀 해 줄 수 없는가하고.
외화위기로 하던 사업이 많이 어려워 부도 직전에 있던 친구의 사정을 아는지라 나는 당장 퇴원하여 생채식을 할 것을 권유하였다.
그러나 친구의 부인은 아무리 돈이 많이 들어도 절대로 퇴원하지 않고 끝까지 치료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한 모성애로 고집을 피우고 있었다.
그렇게 병원에서 6,7개월 정도 치료를 하다가 갑자기 재발을 하게 되었는데, 재발을 하면 2배로 강한 항암제를 투입한다. 체력이 한계점까지 저하되어 있는데다 2배로 강한 항암제를 투여하니까 화장실에 갔다 오다가 복도에서 쓰러졌다.
그래서 중환자실로 가서 보름동안 산호호흡기에 의존하여 생사여부를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었던 것이다.
그런 일을 당한 후 친구의 부인에게서 연락이 왔는데, 병원에서는 가망이 없고 포기하니 퇴원을 하라고 하니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의견을 물어 왔다.
나는 병원에서 포기를 한다면 생채식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자신 있게 조언을 해 주었다.

고오다 의원 방문
병원에서 퇴원을 하여 집에 와서 생채식과 치료방법에 대하여 의논을 하길래, 나는 ‘내가 생채식에 대한 지도를 해도 되지만 내가 의사가 아니기 때문에 나를 믿지 못할게 아닌가. 그러니까 일본 고오다 의원을 방문해서 생채식 처방을 받는 것이 어떠냐?’ 하고 물으니 그게 좋다고 동의를 하였다.
그래서 돌아가신 김흥국 회장님과 내 아내와 친구의 아들과 1999년 5월 15일 고오다 의원을 방문하여 생채식 처방을 받았는데 그 처방은 다음과 같다.

1. 조식폐지
2. 생수와 감잎차 1일 6〜8홉
3. 점심과 저녁
 ○ 잎채소 250g(5종류 이상, 레몬 1/2개)
 ○ 뿌리채소 250g(당근 120g, 무 100, 마 30g)
 ○ 생현미가루 100g
 ○ 두부 200g
 ○ 벌꿀 30g
 ○ 식염 5g
4. 평상과 경침 사용
5. 풍욕 1일 10회 이상
6. 냉온욕 1일 1회(냉5 온4)
7. 건강체조
 ○ 붕어운동 1일 3회, 1회 2분
 ○ 모관운동 1일 3회, 1회 2분
 ○ 합장합척 1일 3회, 1회 100번
8. 마그밀 1일 20cc
9. 각반요법 1일 1회
(주의사항)
○ 생채식 개시후 전신의 권태감이 강할 때는 혈액검사를 받을 것
○ 생채식을 시작하고 6개월이 지나도 계속 체중이 주는 사람은 여기서 일단 회복식에 들어갈 것.
○ 생채식을 시작하고 체중이 10kg 이상이나 주는 사람은 정밀검사를 받을 것
○ 생채식을 먹을 수 없고 토해버리는 사람은 무리를 하지 말고 일단 중지하고 현미크림식이나 현미죽을 잠깐 동안 먹어서 숙변이 나와 체질이 양성으로 바뀌고 나서 생채식을 다시 시작할 것. 절대로 서둘지 말 것

건강한 청년으로 사회에 복귀하다
생채식을 하면서 여러 반응들이 많았다 그런데 좀 아쉬웠던 것은 그때마다 여러 분들에게 조언을 구했지만 자세하게 설명을 해 주시는 경험이 풍부한 분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배워 가면서 또 같이 생채식을 하면서 아픔을 같이 함께 하면서 지금까지 꾸준히 한 결과 지금은 건강한 청년으로, 백화점 점원을 하다가 포크레인 기사가 되겠다고 마산에서 학원에 다닐 준비를 하고 있다.
생채식을 하면서 계속 6개월마다 병원에 가서 종합혈액검사(종양표지인자 포함)를 받고 있는데, 의사는 이제 다 나았다고 한다. 그래서 생채식을 그만 하면 안 되냐고 자주 묻는다.
나는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혈액검사는 참고할 뿐이지 완전히 믿어서는 안 된다고. 또 7년이 지나야 유전자가 바뀌기 때문에 유전자가 변한 암은 적어도 7년은 생채식을 해야 된다고. 또 현대의학과 혈액검사를 완전한 것으로 믿지 않기 때문에 지금도 나는 생채식을 계속 실행할 것을 권하고 있다.

만병 근치의 비법은 단식과 생채식
같은 병실에 입원해 있던 당시 상태가 좋았던 다른 5명의 환자들은 모두 운명을 달리 했는데, 재발하여 가망이 없어 의사도 포기한 친구의 아들만이 현재 건장한 청년으로 사회구성원의 일원으로 복귀할 수 있었던 것은 생채식의 위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나는 그 후로 위암 환자와 10년 이상 병명도 모르고 치료해 오고 있던 희귀병 환자를 생채식으로 지도를 했는데, 기회가 되면 그 이야기도 계속 쓰려고 한다.
그러나 당사자들이 이런 것에 나서는 것을 매우 꺼린다. 사람이 찾아오고 하면 치료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까 염려해서인 것 같다.
나도 체험기를 올려서 한국자연건강회와 암과 난치병 환자들에게 도움을 줄까도 생각해 봤지만 이렇게 용기를 내서 쓰기가 쉽지는 않았다.
조금이라도 한국자연건강회와 암과 난치병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나름대로 용기를 내서 이렇게 올리며, 그 동안 많이 도와주신 배성권 회장님, 김태수 회장님, 허요하 사무국장님께도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마지막으로 특히 암과 중병을 예방하는 방법은 단식과 생채식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중년 이후에 1년에 한번이라도 단식을 실행하시기를 권한다.
 
2005년 2월 2일

1급 건강지도사 이 근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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