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즙 한컵만으로 살아가기-모리미찌오
- 자연건강
- 2009-12-24 16: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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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24일간의 장기 단식
앞서 말씀드린대로 단식으로 일시적인 효과가 있었으나 그 후 현미채식을 하게되면 악화되는 것이 반복되어 걸어다니기가 쉽지 않고 넘어지는 횟수도 늘었다. 자연의학에선 발목과 신장과는 밀접하다라고 하는 이론으로 자주 넘어져 신장에 무리가 와서인지 단백뇨도 나왔다. 더욱이 15분 정도 걸으면 열이 나고 전신이 악화되어 일에 지장이 생겼다. 안되겠다 생각하고 학교를 퇴직하고 고오다 의원에 입원하여 장기 단식 24일간의 장국단식을 시작하기로 했다. 장국단식은 물 단식보다 쉽고 흑설탕이 첨가되므로 1일 200kcal 의 저에너지도 포함하므로 훨씬 수월했다. 단기단식에 익숙해져 참을 만했지만 단지 먹고 싶은 것을 먹지 못하는 괴로움과 배고픔을 참을 수 없었지만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고오다 병원 처방은 가만히 명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침 조회의 고오다 선생의 강연과 하루 종일 건강법 운동등 틈이 없었던 것도 이겨내는데 큰 힘이 되었다. 입원이라기보다 합숙의 개념이었다.
지상 30센티의 정도의 시야를 가지고..
자연건강법의 요법 중 붕어운동이나 모관 풍욕 등 여러 가지 있지만 그중 가장 중요하고 효과적이라고 하는 것은 등배운동이었는데 본인은 기우뚱 거려서 할 수 없이 다른 처방을 많이 받았다. 다른 사람들은 1일 모관2-3회 정도 이지만 본인은 모관운동 12회 풍욕 8회나 하도록 처방받았다. 그럴려면 새벽 4-5시에 일어나서 밤까지 해야했다. 그때는 이동하는데 어려워 남들보다 서 너배는 시간이 더 걸린 듯하다. 벽을 잡고 걸을 수 있을 때가 좋았으나 얼마 후 그것도 안되어 기어서 다녔다. 어쩌면 앞으로는 걸어 다니지 못하고 이렇게 누어서 생활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들었지만 그때마다 단식을 통해서 꼭 낫는다 걸어다닐 수 있다라고 스스로 격려하며 버텨나갔다. 그런즉 차츰 차츰 개선되어 지상 1미터 높이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몸무게는 장기단식으로 51.4kg(신장 153cm)가 46.5로 고오다 선생의 예상보다 더 빠졌다. 왜 그것이 문제인가 하면 어느 정도 체력이 회복되지 않으면 체력과의 형평으로 다음 단식으로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먼저 말한대로 단식요법은 체중 체력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으면 안된다. 체중을 50kg까지 회복하고 다시 24일간 단식하는 것이 고오다 선생의 치료법이다.
그래서 빠른 회복을 위해 두부나 생선 벌꿀 사과등이 포함된 약 1600kg 식사를 처방받았지만 체중은 쉽사리 늘지 않았다. 나의 위장 흡수력이 쇠약했던 것입니다.
증상은 계속 악화되어 할 수 없이 47kg 상태에서 다시 단식을 하게 되었다. 매번 단식을 하게 되면 언제나 숙변이 나오게 되는데 어떨때는 오전만 하여도 5-6회 정도의 변을 보며 숙변을 보게 된 것이다. 이번의 장기단식 때도 다갈색이나 흰색 다갈색소의 수박씨 같은 검은 것이 섞인 변 뭉쿨뭉쿨 모래같은 것이 섞인변 등 여러 가지 숙변이 나왔다.
그럴때마다 장의 마비가 풀리는 듯 조금씩 조금씩 개선되어 위장이 힘을 찾아갔다. 두번째 장기 단식을 하며 걱정한 체중의 문제는 이상하리만큼 체중이 줄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며 차츰 차츰 벽을 짚지 않고도 걸어다닐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더욱이 기뻣던 것은 할 수없었던 등배운동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좋아지는 것과 반대로 이번에도 체중이 급격히 줄어 20일째 체중은 41.5.kg가 되었다. 그때 놀랍게도 죽는 꿈을 꾸었다. 내가 이불속에서 자고 있는데 혼이 빠져서 훨훨 날라가고 옆에 고오다 선생이 있는 꿈이었다. 그것을 무심코 고오다 선생님께 말씀드리니 [ 기가 너무 약해졌군. 바로 단식을 멈추자] 라고 하여 20일간의 단식으로 끝내게 되었다. 나중에 알게된 바는 내가 죽는 꿈은 결코 나쁜 꿈이 아니라 이전의 자기를 버리고 재생, 신생하는 것을 암시하는 꿈이라고 들었다.
단식에서 생채식 그리고 녹즙 한사발로 갈수록 약해지는 체력
흡수가 나빳던 나의 위장은 2번째 단식으로 소화흡수력이 급속히 올라갔는지 체중이 늘어 어지러움은 거의 없어지고 힘있게 걷게 되었다. 그러나 단식 후 식사를 시작기만 하면 악화하는 것이 문제였다. 본래의 고오다 요법은 생채식으로 하는 것이지만 나는 녹즙 등을 포함한 생채식을 먹으면 반드시 어지러움이 심해졌기 때문입니다.
현미밥이나 익힌 야채로 된 현미채식과 생야채나 생현미분을 먹는 생채식과는 재료만 보면 같지만 먹거리가 가진 생명력이라는 관점에서는 크게 다르다는 것이 고오다 요법의 사고방식이다. 생채식은 가열에 의한 영양소 손실과 변성이 없고 식물이 가진 생명력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식사는 그 양이 적어질 수록 질이 문제다. 단식에 준하는 소식이나 초소식으로 몸을 유지하는 것은 질적인 생채식 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생채식이 좋은 것을 확신하고 있었으나 나의 몸이 생채식을 받아들이느냐가 문제였지만 여러 가지로 검토한 결과 두 번째 단기 단식 후에는 이전보다 빠르게 체중이 늘 때도 있어 기필코 생채식을 하기로 하였다.
고오다 선생은 생채식만 하면 병이 나빠지지 않는다라고하여 희망을 걸기도 하였다.
생채식을 결정하고 고오다선생은 나와 같이 기념사진을 찍자라고 하셨다. 그 것은 [ 서있을 수 있는 동안에 사진을 찍어두자는 의미였다. 전에 생채식을 먹었을 때 어지러움이 악화하여 서서 걸어다닐 수 없게 되었으므로 이번에도 그렇게 될 것을 우려하여 서있을 수 있는 지금 사진을 찍어두자는 것이었다. 이것이 최후의 서있는 사진이 되지 않도록이라고 기도하면서 좀 복잡한 기분의 기념사진을 찍었다. 내일부터 생채식으로 어지러움이 안생기면 당신은 틀림없이 고쳐진다. 어지러움이 생기면 또 시기를 보아 단식하겠지만 그것은 병의 진행과의 경쟁이 된다. 그래서 이것이 성패의 분기점이다라고 격려해 주셨다.
생채식을 해도 어지럽지 않다.
고오다 의원에서 지도하고있는 생채식에는 몇 가지 처방이 있으나 그때 나에게 지시한 것은 현미생채식 A형이라는 것이었다.(생채식 건강법 책자 참조-건강회 보급) 이밖에 변통을 촉진시키고 숙변에서 나오는 일산화탄소나 체내에서 생기는 유해한 활성산소를 제거하는 역할도 하는 마그밀을 복용했다. 마그밀은 몸에 필요한 미네랄인 마그네슘의 보급도 됩니다. 이상 현미생채식 A형의 내용으로 1일 섭취에너지는 약 900kcal 칼로리가 됩니다. 겁먹은 심경으로 시작한 생채식이었으나 결과는 좋았다. 즉 생채식을 먹어도 이전과 같이 어지러움이 심해지지 않았으므로 고오다선생의 말씀대로 반드시 나을 것이다 라고 겨우 확신하게 되었다.
생채식을 하는 것은 내가 척수소뇌변성증이라는 병을 이기느냐 지느냐의 중요한 열쇠였다. 생채식을 먹어도 어지러움이 안나온 것은 말하자면 명을 좌우하는 큰 전쟁에서 이긴 것과 같은 것. 다음의 싸움 상대는 나의 식욕. 나는 고교생 때 단기, 장기의 단식을 거듭해서 식욕은 어느 정도 이겨온 것으로 알았는데 단식은 한정된 기간이지만 이에 비해서 생채식은 쭈욱 계속 해야 한다. 단식과 달리 먹을 수 있다는 것은 확실하나 전에 설명한 식단을 보아 상상할 수 있듯이 결코 맛있다고 할 식사는 아닙니다.
병이 낫느냐 죽느냐 하는 극한 상황이니까 맛은 문제가 아니다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생채식을 시작하고 날이 갈수록 나도 모르게 이 식사를 언제까지 해야하나 갈등이 생겼다. 선생 님, 이것을 얼마나 계속해야 됩니까 라고 여쭤보니 5년 합시다, 그것이 고오다 선생의 답이었습니다. 365x5 앞으로 몇 일을 참아야 보통 식사를 할 수 있을까 머릿속에서 계산해 보았는데 그때의 나에게는 거의 일생동안이라는 말과 같았다. 참고 참다가 언젠가 폭발하면 폭식을 하여 병이 악화되어 끝나겠구나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생채식을 시작할 때 깨끗한 찻잔 등 마음에 드는 것을 사는 댓가로 녹즙이나 현미가루를 먹었다. 또한 녹즙 맛의 변화를 위해서 꿀이나 레몬을 넣기도 했다. 이런 것을 마음대로 넣어서는 안되겠지만 참다 참다 폭발하는 것보다는 낫다라고 생각했는데 나름대로 효과가 있었고 그 후 내가 정말 생채식을 받아들이게 된 최대이유는 입원 중 어떤 체험 덕분이었다.
휘황한 야채의 오라를 보다.
고오다 의원에서는 환자들이 먹을 녹즙의 야채는 의원 마당에 있은 밭에서 케일 배추 쑥갓등을 재배했다. 나의 입원실에서 푸른밭이 보입니다. 입원 중 어느 맑은 날 무심히 그 야채밭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 야채에서 깨끗한 오라가 나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실은 고교 시절 고오다의원에서 단식했을 때 사람이나 동식물에서 나오는 소위 오라가 보이게 되었습니다.
오라란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로 해석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생명에너지가 구현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미약한 전자파에너지 라고 말하고 몇 층으론가 되어있고 그 색이나 광채 넓이 등은 나오는 사람이나 동식물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그때 밭의 야채에서 아지랑이처럼 빛나는 오라가 나왔습니다. 하기는 그때 내가 보고 있는 것이 무슨 빛인지 몰랐다.
그러나 야채의 둘fp에 무언가 깨끗한 것, 싱싱한 생명력을 느끼게 하는 무엇인가가 있는 것을 분명했습니다. 아름답다!!! 싱싱하구나!!! 야채도 살아있고 세상에는 생명이 가득차 있어 인간과 더불어 다 함께 살고 있구나 라는 느낌이었다. 무언가 세상 전체가 빛나고 있는 것 같고 웬지 참 좋다고 생각되었다. 그 야채를 뜯어 와서 녹즙으로 먹는 것. 그러면 자연히 잎의 생명력을 받는다는 마음이 되며 생명을 살리기 위해 다른 생명체를 옮긴다 던지 넣는다라는 느낌입니다. 이러한 논리는 우리가 먹는 음식과 식사는 다른 생명을 옮기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고 이제껏 음식에 대해 맛있다 라던가 즐겁다라는 형용사는 어색해져 버렸다. 식사는 본래 맛있는 것, 즐거운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맛없으면 싫다, 괴롭다라고 생각했으나 그 이후는 그런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물론 식사를 맛있게 먹고 즐기는 것도 사람에게 주어진 중요한 일이며 그것을 부정할 생각은 없으나 나는 왜인지 이전 감각에 변화가 왔고 그것을 계기로 조금씩 생채식을 자연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1일 900kcal 의 식사로 체중이 늘기 시작.
생채식 시작 후 한달 반은 배운 대로 생채식을 계속했으며 그사이 점점 튼튼해져서 거의 발병전의 건강한 상태로 돌아갔다. 처음에는 녹즙 만들 때 믹서가 잘 안돌아가 고생하기도 했으나 점점 익숙해져서 손쉽게 만들 수 있게 될 시점 입원중의 생채식에서는 늘지않던 체중이 점점 늘었다. 1일 900kcal 라는 것은 상당히 저에너지로 현대영양학에서는 기초대사량인데 이것은 안정되어 있어도 내장활동 등으로 소비되는 에너지량이며 이것도 못미치는 식사를 오래 계속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설명되어 있다.
성인여성의 경우 개인차는 있지만 대체 1일 1200kcal가 기초대사량으로 되어있다. 이것을 밑도는 900키로 칼로리의 식사는 일시적이라면 모르나 오래 계속하면 근육이나 골수나 혈액세포 등이 손상되어 체중이 줄고 몸이 못쓰게 되어간다. 현대영양학의 이론이다.
그런데 1일 900kcal 의 생채식을 시작하고서도 몸이 나빠지기는커녕 더할 수 없이 몸이 좋아지며 오히려 체중이 늘기 시작했다.
퇴원시에 44kg 였던 것이 1개월 후인 7월30일 에는 47kg 2개월 후인 8월30일에는 49kg이 되었다. 입원 중 1,600kcal의 식사로 거의 체중이 늘지 않았던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달라진 것입니다.
실은 이와 같은 현상은 고오다 의원에서 단식이나 소식 요법을 한 많은 사람에게서 볼 수 있었다. 단식이나 소식을 하면 처음에는 체중이 줄어들지만 어느 시기를 경계로 늘어나는 것입니다. 몸이 단식이나 소식에 익숙해져 그것에 맞는 조직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이 체중의 변화를 그래프로 했을 때 V 곡선을 고오다선생은 고오다곡선이라고 합니다. 나에게도 극적인 모양으로 고오다 곡선이 현상된 것이다.
그러나 정말로 극적인 것이었던 것은 또 그 후의 일이었습니다.
식사를 줄여도 체중이 늘어 난다
11월이되니 체중이 50kg를 넘어섰으므로 5일간의 본단식을 했습니다. 그것만으로 소식인데 거기에 단식을 하니 괜히 하지 않았나 생각하지 모르나 고오다의원의 환자들은 이런 것은 보통으로 다반사였다.
특히 보통의 현미채식이 아니고 생채식을 하고 있으면 편하게 단식이 되고 체력이나 체중의 회복도 빠른 것 같습니다. 나의 경우도 그랬습니다.
이 5일간의 단식으로 체중은 50.5kg에서 47.5kg로 줄었으나 다시 생채식을 시작하니 3주간에서 먼저대로 50.5kg 로 돌아왔다.
그 후 다음해 1988년 초에 2일간의 본단식, 3월말에 같은 2일간의 본단식, 5월초에 2일간의 장국단식 7월 중순에 1주간의 녹즙 꿀물단식(물과 감잎차의 소량의 꿀과 녹즙으로 단식) 8월말부터 9월에 걸쳐 5일간의 장국 단식을 했습니다.
어느때나 단식은 체중이 1~3kg줄었으나 생채식을 먹기 시작하면 빠르게 원래 체중으로 돌아가고 그러면서 슬슬 늘어나는 추세였습니다. 그간에 받은 의학검사에서도 모두가 정상이었으며 더군다나 그해 9월에는 체중이 53kg이 되었으므로 점심의 현미분도 빼기로 했습니다. 즉 점심은 야채 500g(엽채류 250g녹즙+뿌리채소 250g 갈은 것)만으로 하고 저녁은 종래와 같이 현미분 70g+야채 500gdl 먹게 된것이다..
1일의 섭취에너지는 약 650kcal.
식사를 이와 같이 줄인 것으로 체중은 겨우 감소했으나 그 후에는 또다시 슬금 슬금 늘어났났다. 그래서 1988년말에서 새해에 걸쳐 9일간의 본단식을 했다. 그때는 4.5kg 정도 줄었으나 단식 후는 또 서서히 원래로 돌아갔다. 3월말 경 근처의 벚꽃가로수가 아름다워 보고 있으니 뛰고 싶어져서 한참을 뛰다가 집에 와서 지도를 보니 뛴거리가 약 10km 정도였다.
고오다선생께 보고한 즉 하루 650kcal의 생채식을 하면서 10km를 뛸 수 있나라고 놀라셨습니다. 그래서 많은 소식요법의 환자를 보아온 고오다선생도 놀래는가 하여 오히려 내가 놀랐다.
나로서는 특별히 건강하다라는 느낌은 없고 이제 겨우 건강을 회복했구나 하고생각했다.
그 후로도 체중은 슬슬 불어나 또 50kg을 넘어서서 1989년 4월말에서 5월에 걸쳐서 9일간의 사과단식을 했습니다.
그 단식으로 47kg된 체중으로서 생채식을 하니 1주일 정도에서 49kg정도까지 늘었습니다. 그래서 5월16일 부터는 저녁의 현미분도 빼게 되었습니다. 즉 아침과 저녁같이 야채 500g 합해서 1kg만의 식사가 된 것입니다. 그것에 벌꿀 30g을 합쳐서 1일 섭취에너지는 약 500kcal, 단백질은 약10g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같은 성인 여성의 식사 섭취기준과 비교하면 에너지는 대체로 4분의 1, 단백질은 5분의 1에 해당합니다. 소량의 벌꿀 이외에 식사 거의 모두가 야채가 된 이날은 내가 생채식을 시작하고서 꼭 2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p 66페이지 도표와 67페이지 도표를 실어주세요
생채식에서 야채즙만의 식사
1989년 5월에 거의 야채만의 식사를 시작하고서 약 1년반 약 1년 반 그대로의 식사를 했습니다. 그간 체중은 거의 늘지도 줄지도 않고 49.5kg 전후였다. 몸의 상태는 지극히 양호하여 의학검사에서도 아무것도 이상이 안보였습니다.
실은 야채만의 식사를 시작하기 조금 전에도 1989년 4월에 나는 침구사가 될 결심을 하고 침구학교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 공부에도 아무 지장이 없고 건강하게 지낼 수 있었다.
건강하고 체중이 안정되어 있으므로 이 식사가 지금의 나로서는 가장 알맞은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했습니다.그런데 1990년 말경이 되어 약간 곤란한 일이 생겼습니다. 점심 저녁 합해서 1kg의 야채를 먹고 있으니 배가 불러서 조금 기분 나쁜 날이 생겼다.
같은 식사를 계속하여 1년 반동안은 아무일도 없었으므로 이상하지만 또 무언가 체내에서 변화가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배가 부른 것을 피하기 위해 1991년 1월1일부터는 점심의 야채 500g과 벌꿀을 안안먹기로 했다.. 즉 1일1회 저녁때 야채 500g(입채소 250g의 녹즙+뿌리채소 250g갈은 것)을 먹는 것이 식사생활의 전부가 된 것 이다. 이것으로 섭취에너지는 1일 약 200kcal섭취, 단백질은 약 5g 정도가 되었습니다.
식사를 반이하로 줄인 것이 되나 그래도 체중은 줄지 않고 7개월간 49~50kg사이가 유지되었다.
이번에는 이 식사내용으로 고정한다 생각하고 있었으나 여름이 되어 또 배속이 부른 기미가 250g의 엽채로 만든 녹즙의 건더기를 버리고 마시고 근채에는 당근 250g의 갈은 것을 짜서 마시도록 했습니다.
짬으로서 에너지가 양이 줄으므로 합한 섭취에너지는 1일 약 150kcal입니다. 이렇게하여 결국 야채즙만의 식사가 된 것입니다. 그래도 여전히 체중은 거의 줄지 않았다.
<다음호 연재>
[이 게시물은 자연건강님에 의해 2013-06-19 16:06:53 2008년 9,10월호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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