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5면-톨스토이의 금주 절제론
- 자연건강
- 2009-12-21 16:5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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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의 금주 절제론
- 왜 사람들은 그들 자신을 마취시키려고 하는가 -
톨스토이
사람이 용이하게 자기를 마취시킬 수 있다는 것과 외견상 무해하게 보인다는 것 외에 담배와 기타의 많은 마취품과의 다른 점은 그 휴대가 경편한 것과 잠시 곤란한 일에 쉽게 이용될 수 있는 점이다. 사람은 언제나 담배와 종이를 가지고 다닐 수 있으나 아편이나 포도주나 대마초를 사용하고자 하면 언제나 가질 수 없는 도구가 필요하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담배가 다른 마취품에 비하여 편리한 점은 아편이나 대마초나 포도주의 마취에 모든 감각 및 어떤 좀 긴 시간 동안 받고 또 작동하는 일체의 행위에 이르르나―그러나 담배에서 오는 마취는 무언가 다른 일에 집중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제군은 해서는 안될 일을 하고자 한다. 여기서 제군은 담배를 피우고 해서는 안될 일을 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자기를 마취시킨다. 그리고 제군은 다시 제정신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명료하게 생각하던가 이야기 할 수 있게 된다. 또는 제군이 해서는 안되는 일을 했다고 느낀다. 다시 제군은 담배를 피운다. 잘못된 못할 행위에 관하여 불유쾌한 의식이 소실된다. 그리고 다른 일에 종사하여 그것을 잊을 수가 있다.
그러나 습관을 만족시키고 또 지루함을 견디기 위해서가 아니고 지금 바로 하고자 하는 또는 해버린 행위에 관한 양심의 가책을 지워버리기 위한 수단으로서 끽연자가 끽연에 의지한다는 개인적인 경우는 별도로 하고 사람들의 생활양식과 끽연욕과의 사이에는 명백히 뚜렷한 관계가 있다는 것은 전적으로 명료한 것이 아닐까?
언제 청년들은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나? 보통은 그들이 어린이 같은 순진함을 잃었을 때이다. 끽연자들이 더욱 도덕적인 생활상태 속으로 들어갈 때에 끽연을 멈출 수가 있고 타락한 상태에 빠지자마자 다시 피우기 시작한다는 것은 대체 왜 그럴까? 왜 도박자들의 거의 모두가 담배를 피울까? 왜 부인들 중에서도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이 끽연하는 사람이 가장 적을까? 왜 매음부나 광인(狂人)이 모두 끽연할까? 습관은 습관이다. 그러나 분명히 끽연은 양심을 마비시키고자 하는 요구와 어떤 확실한 관계가 있어서 또 그 요구대로 목적을 만족시키고 있다.
사람은 거의 모두의 끽연자의 경우에서 어느 정도까지 끽연이 양심의 소리를 흐리게 하는가를 관찰할 수가 있다. 끽연자는 모두 자기의 욕망에 몸을 맡겼을 때는 사회생활의 긴요한 요구―그가 타인에게 인정받기를 바라고 또 스스로도 그 양심이 담배에 의하여 마취되기 전에는 모든 경우에 있어서 인증받고 있는 요구―를 망각하고 또 흐려지게 하는 것이다. 통상의 교육을 받은 누구에게나 자신의 쾌락 때문에 타인의 평화, 위안 및 그 이상 더욱 건강까지도 침해하는 것은 허용할 수 없는 것이며, 불량하며 또 몰인정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도 사람들이 앉아 있는 방을 적시던가 소란피우던가 차가운 뜨거운 혹은 냄새나는 공기를 넣던가 또는 타인에게 누를 끼치던가 해를 가하던가 할 것이 아니다. 그러나 수천인의 끽연자 중 누구 한 사람도 담배를 피우지 않는 부인이나 아이가 공기를 호흡하고 있는 방 속에 유해한 연기를 만들고 있음을 서슴치 않는다.
예를 들어 끽연자가 그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 향해 「상관없는지요?」라 말한다면 모두가 그때의 답하는 말은 「그래요. 조금도」 일 것을 알고 있다.(끽연 않는 사람에게 있어 더럽혀진 공기를 호흡하던가 보기싫은 담배꽁초를 술잔이나 접시나 양초꽂이 또는 재떨이에서조차 보이는게 불유쾌하지 않을 수 없으나) 그러나 가령 끽연을 안하는 어른이 끽연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지 않더라도 누구 한 사람 승락을 받지 않는 어린이에게는 그것이 유쾌한 일도 또 좋은 일도 될 수가 없다.
고구려의 옛 땅과 백두산을 찾아서
정 기 웅
5. 환인에서 심양
점심을 성에서 내려와 환인에서 먹고 본계시(本溪市)호 향했다. 중간에 도로를 확장 공사하는 곳이 많아 시간이 많이 걸렸다. 본계시에는 삼계수동(三溪水洞)이라는 큰 호수가 있는 석회암 동굴이 있다. 작은 동력 고무 보트에 6명씩 타고 들어가면 왕복 40분이 걸리는 큰 동굴이다. 동굴안은 석회암이 흘러내려 여러 가지 모양의 형상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우리 배의 뱃사공은 계속적으로 중국 노래를 낮은 소리로 불러서 운치를 더해 주었다.
심양(沈陽)에 도착하니 오후 7시 30분이다. 북한에서 운영하는 냉면집을 갔다. 식사 중간 공연에는 음식을 나르던 20대 초반의 아가씨들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 나중에는 통일을 다짐하는 노래로 마무리 했다. 아가씨는 자기가 북한의 공무원이라고 소개했다. 국가가 젊은 처녀들을 외국에 보내 외화벌이를 시킨다고 생각하니 왠지 모르게 가슴이 울적하였다. 호텔에 도착하니 벌써 11시이다. 호텔 주변을 한바퀴 돌고 들어와 방에서 일행과 차를 마셨다.
6. 고구려의 백암성에서
6월 29일 아침 호텔을 출발하여 백암성(白巖城)으로 향했다. 심양은 사방 산이 없은 평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현재 도심은 혼하(渾河)가 흐르는 북쪽에 위치하고 현재 강 남쪽은 이제 개발중이다. 백암성을 향하는 길은 시골길이다. 지평선만 보이는 길을 따라 2시간 반 정도 가면 태자하(太子河)가 흐르는 강가에 성이 나타난다. 이곳은 등탑시가 위치하고 있다.
성은 산의 경사를 이용하여 축성하였는데 제일 높고, 서쪽은 강이 흐르며, 동쪽을 연결하여 북쪽 부분에 옛날에 성문이 있었던 것 같다. 현재 동쪽 부분의 성벽이 무너져 그곳을 통해 성의 제일 높은 부분으로 올라 갔다. 성벽 동쪽 부분에는 성벽에서 일부의 성벽이 튀어 나온 치성의 형태를 하고 있다. 정상 부분은 성벽이 삼중 구조를 하고 있다. 제일 바깥 부분에 성이 있고 그 안에 다시 성이 있고 또 그 안에 다시 성이 있는 구조이다. 마치 큰 배의 앞부분 같은 구조를 하고 있다. 태자하가 흐르는 가운데 큰 군함이 떠 있는 형국이다.
이 백암성은 구구려가 요동을 지키는 중요한 성이라고 한다. 백암성 남쪽에는 수양대군이 이끄는 30만 대군을 격파시킨 요양성이 있고, 그 아래에는 현재 혜성 부근에 성주 양만춘이 당태종을 격파시킨 안시성이 있었다. 백암성 정상에 서니 옛날 고구려 시대 요동벌판을 달린 고구려인의 기개를 느낄 수 있었다. 산 정상의 나무에는 동네 사람들이 붉은 천을 걸쳐 두고 향로와 물을 올린 그릇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은 기도를 하는 신성한 곳으로 여기는 것 같다.
1,500여년 된 성안에는 무덤 하나 없이 성이 잘 보존되어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성의 서북쪽에는 바로 마을이 있다. 우리는 옛날 이곳에서 싸우다가 전사한 고구려 병사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하여 반야심경의 독송을 하였다. 대부분의 일행이 내려간 후에 모든 용사들이 평안히 지내기를 바라면서 ‘비목’을 큰 소리로 불렀다.
다시 심양으로 이동하여 오후 2시 반에 심양북역 앞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고속도로를 이용해 대련시로 향했다. 방음이 되도록 고속도로 양쪽으로 나무를 심어 두었다. 철생산지로 유명한 안산시(鞍山市)를 지나니 어둠이 깔리고 동쪽 산등선 위에는 보름달이 떠오른다. 만주벌판에서 보름달을 보고 여행을 하니 운치가 있다. 대련에 도착하여 저녁식사를 하고 공항 근처에 있는 호텔에 숙소를 정하였다.
7. 고구려의 비사성에서
6월 30일 아침 호텔에서 차를 타고 대련 근처 금주에 있는 비사성(卑沙城)에 갔다. 비사성은 대흑산성이라고도 한다. 이 성은 요동반도의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고구려의 요새였다. 성의 서쪽에 있는 주차장에 찰를 대고 도로를 따라 가니 성이 나타났다. 산 꼭대에는 군사기지가 있어 올라 갈 수 없고, 서문 근처에 근래에 개축한 성벽이 있다. 산성의 둘레는 5km, 동서의 폭은 1km이다. 남쪽으로 내려 오는 길에는 절이 있다. 절에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동에는 관음전, 서에는 미륵전이 있다. 미륵전 서쪽에는 당태종을 모신 전각이 있다. 서기 645년 당의 장량이 이끄는 수군이 등주(登州), 현재 산동의 봉래시를 출발하여 비사성을 공격하여 고구려군 8,000명이 장렬히 죽었다고 한다. 그런데 장렬히 죽은 고구려 군사들에 관한 것은 없고 그 공격의 주동자 당태종의 모습을 새긴 조각이 아직도 모셔져 있다니 묘한 느낌이다. 절에서 남문으로 내려오는 길은 아주 험한 좁은 길이다.
비사성을 보고 난 후에 어제 저녁을 먹은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공항으로 향했다. 현지 시간 4시 25분 비행기는 대련공항을 출발하여 1시간 반 후에 인천공항에 도착하였다.
8. 느낀 점
이번 여행에서 가장 인상적인 고구려의 옛땅에 있는 성과 유물을 통하여 고구려인의 기상을 느낀 점과 백두산 천지에 올라 천지의 기운을 느낀 점이다. 요동벌판을 달려보니 우리나라가 작은 나라가 아니라 큰 나라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구려의 문화는 고분벽화의 문양과 채색에 표현되어 있는 것처럼 체계적이고 독자적이며, 광개토왕비와 장군총에서 보듯이 당당함과 웅장함을 가지고 있다. 환도산성, 오녀산성, 백암성, 비사성을 보면서 고구려는 그 당시 세계 최강국이었던 수와 당을 격파할 수 있었던 군사강국일 뿐아니라 정치, 경제, 문화에서도 강대국이었던 것을 알 수 있었다. 여행후의 다짐은 앞으로 반도의 작은 국가에 사는 작은 사람으로서 사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이끄는 큰 국가의 국민으로서 사명감을 갖고 살도록 노력하겠다는 것이다.(건국대 법대 교수)
[이 게시물은 자연건강님에 의해 2013-06-19 16:06:20 2008년 04월호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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