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2면-니시의학의 원리
- 자연건강
- 2009-12-21 16: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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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학 개설
- NISHI의학의 원리와 응용-
서 승 조
니시의학의 원리
해부학적 지식 그 자체는 전혀 나쁘지 않다. 그러나 그것에 의해서 분석적 연구방법이 강조된 결과, 종합적으로 관찰하지 않으면 안되는 인체를 부분으로 나누어서 연구하는데 쫓겨 인체의 각 부분 상호관련을 파악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하면 의학은 이미 사도(邪道)에 빠졌다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또 하아비의 주장은 혈액순환을 기계론적, 인과론적으로 일단 설명한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주먹 크기의 심장의 4분의 1인 좌심실의 수축, 확대로 물의 4배 내지 5배의 점도를 갖는 혈액을 체내의 모든 혈관이나 50억개도 넘는 모세혈관(그 직경은 0.002~0.009mm, 평균 0.0055mm)을 통과하여, 겨우 22초 동안에 1순환될 만한 펌프로서의 동력을 인정한 것이 과연 기계론적, 인과론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오히려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하면 그것은 기적 이외의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갈레누스에 의해서 제창된 「프노이마」설이 오류였다는 것은 의심할 나위 없는 사실이며, 그것을 뒤엎고 혈액순환을 발견한 하아비의 공적은 결코 적지 않다. 그러나 하아비가 혈액순환의 원동력을 심장의 수축력에 귀착시키고, 그것이 「심장원동력설」로써 지금까지 의학자들 사이에 아무런 의문도 없이 신봉되어 왔던 것은 의학에 있어서의 자기 비판 결여를 이야기 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베살리우스, 하아비 등에 의해 시작된 근대의학은 중세의학의 모순을 근본적으로 타파할 만한 힘을 갖고 있었던 것이 결코 아니었다. 근세의학은 의학 독자의 방법론을 자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다른 자연과학으로부터 빌려온 것인 「기계론적 방법」에 의해서 인체를 처리하려고 했던 것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하아비 혈액순환론에 이르러서는 인과론적 증명의 체계만을 갖춘 갈레누스 이상의 미신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곳에 실로 풍부한 의학의 진보가 있을 리 만무하다. 실제로 그 이후의 근대의학은 실천에서 유리되고 임상에서 동떨어졌기 때문에 뮬러, 슈방, 헤르너, 비르효 등의 유익한 연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질병을 근절하는 힘이 되지 못하고 보건법, 치료법에 있어서 전혀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19세기 중엽을 맞이하게 되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의학자가 의학의 혁명을 19세기 중엽 에 있어서의 파스퇴르, 리스터, 코호 및 그 문하생의 연구에서 찾고 있는 것은 이상과 같은 사정이 그 이유의 하나가 되고 있다. 그들 의학자들은 그들의 연구 및 그에 이어 새로운 치료약의 엄청난 발견에 의해서 이론의학 및 임상의학은 근본적으로 변혁되어 보건법, 예방법, 치료법에도 전도양양한 희망이 주어지기에 이르렀다고 믿고 있다. 필자도 그것이 어쨌든 의학의 「일변화」였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과연 그것은 의학의 한 「변화」였던 것만으로 그치치 않고, 더 나아가서 의학의 혁신, 혁명이었던 것일까? 그렇게 말하기는 매우 의심스럽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파스퇴르는 당분을 알콜과 탄산가스로 변화시키려고 하는 발효현상이 살아 있는 효모균의 작용이었다는 것을 확증하고, 1857년에 그에 관한 최초의 발표를 하고, 나아가 부패현상 및 전염병의 감염도 또한 현미경적인 미생물(비루스)에 의한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이 파스퇴르의 생각을 활용해서 리스터는 1865년 비로소 다리골절의 치료에 석탄산을 사용하고, 1867년에는 소독법이 확립되었던 것이다.
파스퇴르가 인간의 질병 가운데 얼마간은 미생물에 의해 전염된다고 하는 사상을 품고 있던 때, 이러한 미생물 즉, 병원균에 대한 정밀한 연구를 개척하고 세균을 창시했던 자는 독일의사 코호였다. 그는 1881년 세균학의 연구 방법을 확립하고 그것으로 다음해 1882년에는 결핵균을 또 1884년에는 콜레라균을 발견했다. 나아가 1890년 그는 투베르크린을 만들어 그것을 결핵치료에 사용하려고 시도했지만 그 결과는 좋지 않았다.
NISHI의학 자연요법
보건치병의 길잡이
NISHI의학은 병에 걸리지 않게 하는 의학으로서 병을 고치는 것이 주된 목적은 아니다. 그러나 실제 문제로서 건강할 때는 건강법에 관심이 없다가도 병에 걸려서 약물이나 주사도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비로소 니시의학의 문을 두드리게 된다. 그래서 본인은 의사의 입장에서 건강법으로보다는 치병법을 중심으로 니시의학을 해설해 보려고 한다.
-서의학연구소장 의학박사 와타나베 쇼-
암
니시의학에 의한 암의 치료
니시의학은 전술한 암에 대한 견해에 입각하여 치료의 지침으로 체내의 일산화탄소의 해소, 비타민 C의 보급, 그로뮤의 재생 부활을 최대의 목표로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목적을 위해 피부기능의 회복, 숙변의 배제, 변비의 처치, 혈액임파의 환류, 체액의 정화, 자세의 고정 등에 중점을 둔다.
일산화탄소의 해소를 위해 대기요법을 1일 6회 이상 11회(증상에 따라서) 한다. 대기요법에 의해서 체표면을 통해 요소를 비롯한 노폐물을 발산하고 산소, 질소를 공급한다. 이에 의해서 체내의 불완전 연소를 발생한 일산화탄소를 산화하여 탄산가스로 만들에 체액을 깨끗이 한다. 또 온냉욕을 실행한다. 비타민 C는 생야채 다섯 종류 이상을 혼합하여 으깬 것 및 감잎차로써 보급한다.
숙변의 배제, 변비의 처치로서 조기에 단기 위장 휴양법(단식), 한천식, 또는 완전 생식으로 발의 고장을 고칠 필요가 있다(모관운동을 하면 된다). 글로뮤의 재생 부활을 위해서는 합장합척, 모관운동을 한다. 식염의 보급과 생수를 마시도록 힘쓰고 감잎차를 충분히 마시는 것도 좋다.
암은 체액으로서는 알칼리화의 극단이므로 식사로서는 쌀밥, 어육, 가벼운 조류의 고기 등의 산성식이 좋다. 이때 생야채 다섯 종류 이상을 혼합하여 먹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니시의학 건강법의 6대 법칙을 실행하는 것이다.
이상의 치료법에 의해서 나는 많은 암환자를 고친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 중에는 위암, 직장암, 폐암, 자궁암, 인후암 등 온갖 암이 포함되어 있다.
위궤양
위가 묵직하면서 불로 지지는 듯하고, 찌르는 듯 하며, 또는 경련을 일으키는 듯한 통증이 자주 오게 되면 의심스럽다. 암과 달라서 초기부터 증상이 나타나므로 발견은 간단하다. 만성이 되기 전에 변비를 고치고 양배추를 날로 먹으면 거의 모두 낫는다.
변비가 원인
위궤양의 원인은 한마디로 ‘변비’ 때문이다. 그리고 변비에 의한 ‘숙변의 정체’에도 문제가 있다. 인간이 변비가 되는 데에는 두 가지 원인이 있다.
하나는 발한(發汗)의 대책이 적절하지 않기 때문이다. 발한에 의한 변비야말로 위궤양의 원인이다. 현대의학에서는 발한과 위궤양의 관계 같은 것은 상상도 하지 않는 사람이 대부분인 것 같은데 발한의 대책이야말로 중요한 일이다.
발한 후에 수분, 염분, 비타민C를 적절히 보급하지 않으면 분변(糞便)은 수분 부족 때문에 굳게 건조되며 따라서 변비가 된다. 결장내에 분변이 정체되므로 자연히 위의 유문은 닫히고 위 속의 음식물은 장으로 갈 수가 없으므로 소위 유문협착의 상태가 된다.
변비를 일으키게 하는 그 다음 원인으로 자세의 불량에 있다. 이 자세의 불량은 발의 고장에 의해서 생기므로 발의 고장이 변비의 원인이며 위궤양의 원인이라고 할 수가 있다. 발과 위궤양의 관계를 말하는 것은 생체를 하나로 보는 니시의학이 아니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체험·치험 사례
고다 박사의
단식 체험기
쪾8월 9일
어제 숙변이 나와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은 우하복부의 통증이 훨씬 편해졌다. 걸어도 조금도 울리지 않는다. 아이구 이정도만 되어도 살겠다. 큰소리로 이야기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오래 누워만 있어서 발이 약해지고 볼품없이 가늘어졌다. 계단의 오르내림도 겨우 가능해졌다.
여러분의 의견도 받아들여 오늘부터 회복식을 들기로 했다.
자 이제부터의 식양생이 큰일이다. 여간 주의하여 시작하지 않으면 과식하여 실패할테니까.
긴 단식후인 만큼 평상식으로 돌아갈 때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필요하니까 그간의 공복을 참아내는 절대한 극기가 필요해진다.
이제 이번 단식 후의 식양으로 제일 주의하지 않으면 안될 것은 이제까지의 과식의 악습을 단연 끊고 소식에 철저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 한가지 고쳐야 할 것은 식사의 시간이다. 지금까지 진단시간 관계로 저녁은 진찰이 끝나고서 먹었으므로 일요일 이외는 언제나 밤 9시 전후가 되어버렸다. 이렇게 저녁 시간이 늦으면 먹고 난 후 취침까지의 시간이 짧고 아직 먹은 것이 위속에 정체된대로 자는 것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아무래도 숙면이 안된다. 이 때문에 피로가 충분히 풀리지 않고 다음날로 넘어가게 된다. 그 위에 밤중에 왕진으로 일어나야만할 일이 계속되면 몹시 지친 상태가 되어 버린다. 그러므로 이번 단식 후에는 저녁을 진찰시간 전에 먹도록 하자. 그러면 대체로 5시까지 먹어야 한다.
쪾8월 10일
오늘도 종일 금후의 식양생(食養生)에 대하여 생각했다. 단식 후의 식양생 뿐이 아니고 이기회에 안전한 식생활을 몸에 배인 습성으로까지 훈련하여 이상적인 심신을 만들어보고자 생각하여 여러가지 식사방법까지를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무어라 해도 최후에는 불굴의 정신력과 실행력으로 이것을 완성시키는 이외의 다른 길이 없다. (본회 고문·의학박사 고다의원장)
[이 게시물은 자연건강님에 의해 2013-06-19 16:05:51 2008년 02월호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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