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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5면-불교와 니시의학 자연건강법

  • 자연건강
  • 2009-12-21 16: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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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NISHI의학
자연건강법

Katsuzo Nishi


일법인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이 삼법인이라는 것은 아직도 많이 방황하게 됩니다. 전기한 철재으 표면에 방수제(防銹劑)를 칠하여 녹슬지 못하게 하면 이것은 이제 철광석으로 돌아가지 못합니다.
인간계에도 이와 같아서 얼마나 단련(鍛鍊)되고 수양의 결과 깨우침을 얻었다 하더라도 자칫하면 깨우치기 전으로 되돌아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감시를 많이 하고 악행을 못하도록 방수제를 비른다. 이렇게 해 놓으면 악행을 못할 것이다. 이것을 우선 일법인이라고 합니다. 일법인이라 함은 깨우침을 끝낸 사람을 말합니다. 그리고 철재 속에 특수강을 합금하여 합금재로 하면 예컨대 스텐레스와 같은 녹슬지 않는 쇠가 됩니다. 이렇게 되면 참다운 일법인입니다.
그러면 이런 마음으로 일법인이 되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것은 우리들 인간계에 있어서는 현대의학으로는 일법인이 되어 버릴 수 없으므로 여기에 새로운 니시의학이라는 것을 만들어 일법인이 되고자 노력했던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혈액부터 모든 육체부터 일체를 개조하지 않으면 일법인이 될 수가 없습니다. 예컨대 폐병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BCG를 주사하면 좋다던가 혹은 페니실린이나 스트렙트마이신이나 하이드라짓트라던가 파스 같은 것을 주사하면 즉시 낫는다든가 혹은 폐병을 막는다든가 그런 미신에 가까운 과학의 가면을 쓴 현대의학으로는 참다운 일법인이 되어 버릴 수는 어렵습니다. 감시의 눈이 조금만 딴 곳을 보아도 바로 전의 악인이 되어버린다는 것을 만들어 근본부터 현대의학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여 배우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 나의 목표인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매달 4회 「엽서」로 내보내고 있는 「의학, 과학통신」에도 내보내 놓았으나 자동차로 성공한 미국의 헨리 포오드는 「인간은 식물(食物)에 의하여 성질이 변한다. 식물 여하에 따라 인간은 악인이 되기도 하고 선인이 되기도 한다. 나는 식물에 의하여 몇만이라는 인간을 쓰고 있다.」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의학·과학통신」에는 영문이 있고 독일어가 있고 프랑스어로도 되어 있어 여러가지 장단점이 있으나 일일이 출전을 명확히 하여 원문과 역문을 붙여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특히 외국 사람의 말을 늘어 놓고 이것에 대하여 이렇구 저렇구 하는 게 아닌 것으로 내가 말한 것을 이와 같이 외국인이 뒷날에 증명하고 있다는 뜻에서 올리고 있음을 제발 오해없기 바랍니다.
법구경(法句經)에 관하여
그리고 그 1`24절을 보시면 다음과 같은 말이 있습니다.
「몸이 있고 상처가 없으면 독 때문에 해를 받지 않고 독도 상처가 없으면 어떻게 하겠나 악이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도기와 다이조우 선생은 이것을 다음과 같이 번역하였습니다.
「독은 상처로부터 침입한다. 손에 상처 없으면 독도 안무섭다. 안을 돌이켜 보아 꺼림직하지 않으면 세상에 무서운 재앙은 없다」
손이라는 말에는 전체의 몸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문에서 몸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손이라고도 되므로 육체는 손이 대표하고 있다. 천하를 쥐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천하를 발로 쥘 수는 없는 것입니다. 또 코구멍으로 천하를 마실 수 없습니다. 천하는 내 수중에 있다던가 모든 경우 손은 육체를 대표하고 있습니다. 또 마음도 대표하고 있습니다.
「몸이 있고 상처없으면 독 때문에 해받지 않고 독도 상처없음을 어떻게 하나 악이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마음에 악이 없으면 걱정이 없다 이것은 어쨌든 2천 5,6백년 옛 사상의 대표이므로 이에 대하여 무어라고 내가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톨스토이의 금주절제론
- 왜 사람들은 그들 자신을 마취시키려고 하는가 -

톨스토이

여하히 적은 양심의 고민 뒤에도 사람은 언제나 어떤 마취물에 의지한다는 것 및 마취물의 영양하에서는 자기의 생활이나 환경을 반성하는 것이 곤란하다는 것 및 마취물의 간단없는 규칙적인 사용은 때로 불규칙으로 사용할 때와 같은 생리적인 결과를 나타낸다는 것을 알고 있다. 더우기 모든 이런 일에도 불구하고 적당히 마시고 또 피우는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마취물을 쓰는 것은 조금도 양심을 흐리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오직 취미 때문에 혹은 쾌락 때문이라고 보는 것 같다.
그러나 사람은 진실되게 또 공평하게―스스로를 자책하고자 함이 아니고―다음 일을 양해하기 위해 고려할 필요가 있다.
즉 첫째로 만일 때에 따라 다량의 마취물을 사용하는 것이 사람의 양심을 흐트러트리는 것이라면 그것을 규칙적으로 사용하는 것도 또 그것이 다량이거나 소량이라 해도(항상 우선 뇌의 활동을 강하게 하고 그후 그것을 둔하게 하여) 그와 같은 결과를 발생시키는 것, 둘째로 모든 마취물은 양심을 흐트리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언제나 그 영양하에 절도, 살인 강간이 행하여 질 때에도 또 그 영향하에서 이들 마취물이 사용되지 않았더라면 나오지 않았을 말이 나오고, 또 생각하던지 느끼지 않았을 것이 생각되고, 느끼게 되었을 때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셋째로 만일 마취물의 사용이 절도, 강간 또는 추업부(醜業婦)의 양심을 진정시키고 또 흐리게 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또 같이 예컨대 타인들이 정당하고 명예스럽다고 생각하더라도 그들의 양심이 비난하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의해서도 요구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대량이거나 소량이거나 때때로이거나 규칙적이거나 혹은 사회의 상류이거나 하류이거나 마취물의 사용은 하나의 같은 원인 즉 생활방식과 양심의 요구와의 사이에 존재하는 부조화에 주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양심의 소리를 억압할 필요게 의해 생긴 일이라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게시물은 자연건강님에 의해 2013-06-19 16:05:51 2008년 02월호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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