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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6면-톨스토이의 금주 절제론

  • 자연건강
  • 2009-12-21 16: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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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의 금주 절제론

- 왜 사람들은 그들 자신을 마취시키려고 하는가 -

「사람은 맨정신으로는 할 수 없어서 돌아와 양주 2잔을 마시고 그리고 겨우 실행할 수 있었다」 그리고 최악을 범했다.
「용기를 내기 위해 마셔라」라는 식이 된다. 타락하는 부인의 절반은 술의 영향으로 타락한다. 수상한 집의 내유(來遊)객의 거의 모두가 취객이다. 사람들은 그의 양심의 소리를 멈추게 하는 술의 효능을 알고 있다. 그리고 고의로 그 목적을 위해 그것을 사용한다.
사람들이 양심을 억압하기 위해 스스로를 마취시킬 뿐아니라 또 그들은(술의 효능을 알고) 타인으로 하여금 양심에 반하는 행위를 하게 하고자 하는 외에도 고의로 그들을 마취시킨다.―즉 사람들의 양심을 없애기 위해 그들을 마취시키는 수단을 갖춘다. 전쟁에 있어서 병사들은 항상 접전 전에 만취시킨다. 모든 불란서의 병사들은 세파스토포리 공격에 앞서 술을 먹였다. 방어지대가 점령되었으나 병사들이 약탈하지 않고 또 무저항의 노인이나 아이들을 살해하지 않을 때는 누차 그들로 하여금 만취시키라는 명령이 내렸다. 그래서 비로소 그들은 요구당하고 있는 일을 한다. 사람들은 모두 양심을 꺼리게 하는 어떤 악행을 한 결과로서 술을 마시는 습관에 빠진 사람들을 알고 있다.
어떤 사람도 부도덕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보다 한층 마취의 재료에 끌리게 되는 것을 알게 된다. 강도나 도둑의 단체 또는 취업부는 하루도 도취물(陶醉物) 없이는 살 수가 없다.
사람들은 모두 마취물을 사용하는 것은 양심의 가책의 결과이고 또한 어떤 부도덕한 생활양식에 있어서는 마취물이 양심을 현혹하기 위해 사용된다는 것을 알고 또 용인한다. 사람들은 또 같이 마취물의 사용은 양심을 현혹한다는 것을 즉 명정자(酩酊者)는 그것이 평소에는 순간에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또한 용인한다. 사람들은 이에 모두 동의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마취물의 사용이 예컨대 절도, 살인, 강간 등의 행위에 이르지 않았을 때―마취물이 어떤 무서운 죄악의 뒤가 아닌 우리들이 죄악이라고 생각지 않은 직업의 사람들에 의해 사용되었을 때 또 마취물이 일시에 다량은 아닐 정도로 자주 적당한 분량으로 소비되었을 때―그때는(혹 어떤 이유로) 마취물은 양심을 흐리게 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이와 같이 하여 유복한 노서아인의 각 식사 전의 양주 및 식사와 같이 마시는 포도주 혹은 불란서인의 아프산 혹은 영국인의 보루도주와 보록다 맥주 혹은 독일인의 생맥주 혹은 유복한 중국인의 적당량의 아편 및 이상의 것과 같이 피는 담배는―오직 쾌락을 위해 마시는 것으로서 이들 사람들의 양심에는 하등의 영향을 주지 않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만일 이 상습적인 마취 후에 어떤 죄악도 절도도 혹은 살인도 일어나지 않고 그저 통례의 나쁜 어리석은 행위가 있었다면―그럴 때는 이들 행위는 자연히 일어난 것으로서 마취에 의해 일어난 것은 아니라고 생각되고 있다. 만일 이 사람들이 형법에 걸릴 만한 행위를 범하지 않는 이상은 양심의 소리를 억누를 필요가 없는 것이다. 고로 습관적으로 스스로를 마취시키는 사람들이 보내는 생활은 천하에 스스로를 마취시키지 않을 때와 조금도 다름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마취물의 부단한 사용은 그들의 양심을 조금이라도 흐리게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다.
예컨대 각 사람이 경험에 의하여 인간의 마음이 술이나 담배에 의해 변한다는 것을, 흥분물(興奮物)만 섭취하지 않으면 부끄러워 해야 할 일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는 것을.


난치병 극복 체험기

유방암 극복에 생채식 소식요법

J. C. K

니시식, 고오다식 건강법 입문
그러나 목침, 붕어운동, 합장합척, 모관운동은 겨우 계속할 수 있었으나 바쁘다는 핑계로 풍욕이나 온냉욕 등은 그다지 못했다. 전혀 안한 것은 아니었으나 완벽하지 못했다. 그 결과 현미중심의 생활이 되고서 한달째는 4kg의 체중이 줄었다. 2개월째는 3kg으로 이상적인 감소였다.
이렇게 해서 체중은 46kg까지 줄었다. 그후 고오다의원에서 진찰을 받았다. 12월 17일이었다. 그때 새로운 양생법을 써주셨으며 체조 등의 6대법칙의 지도도 받았다. 그로부터 2년여까지나 가을이 되도록 양생식을 하였으나 아직 몸이 개운치 않아 과로해서인가 하였다.
유방암의 발견과 수술
중요한 신호였다. 「밤중에 잠에서 깨어난다」 「잠이 잘안온다」 「잠이 깊이 안든다」 등의 상태가 계속되고 낮에는 오전 중에는 모르겠는데 오후가 되면 피로를 느끼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먼저도 말한대로의 상태에다가 어깨결림도 시작되었다. 11월이 되어 고향 묘소에 갔을 때는 헤르페스가 목덜미에 일어났다. 그래서 식양의 대가인 도오조 유리꼬 선생의 저서에 있는 비파엽요법을 하고 10일 정도로 해소되어 안심하고 있었으나 새해 1월 2일의 일이다.
친구로부터 연하 전화중의 일이다. 그날은 정월이라고 하나 창문을 열어도 될 정도로 따뜻한 날씨였다. 이야기를 하면서 무심히 겨드랑이 아래를 만지던 나는 친구에게 “앗! 암이다”라고 소리쳤다. 친구도 깜짝 놀라는 상황에서 “전화좀 끊을께”라고 말하고 새삼 확인해 보니 겨드랑이 속에 종암이 두 개 있었다. 왜 간단하게 암을 발견했는가 하면 지금도 하고 있으나 시의 「모자보건추진원」을 하는 중 보건실습의 일환으로서 암의 조기발견을 위해 쓰는 「촉진용의 유방」을 몇번이나 만져서 그 감촉이 전적으로 같았기 때문이다.
1월 4일 시민병원에 갔다. 고오다 선생께 가더라도 렌트겐이나 에코 등의 검사데이타를 보시게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월 16일 결과는 역시 ‘암’이었다. 병원에서 의사 선생에게 “다른 병원에 한번 더 보이면 어떨까요” 하니까 “좋습니다. 납득이 될 때까지 해보세요. 귀중한 몸이니까요”라고 하면서 치료받게 되면 오라고 하여 감사했다.
시민병원에서 렌트겐, 에코 사진, 프레파라드 진단서 등 모든 자료를 가지고 고오다 선생님께 갔다. 그리고 “선생님 말씀대로 무엇이던지 하겟습니다”하고 나의 결심을 말씀드렸더니 참으로 슬픈 얼굴로 같은 진단을 하셨고, “또 한번 큰병 원에서 진단을 받아 보고 그래도 진단이 같으면 집근처 시민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오면 좋겠다”고 하셔서 몸이 오그라지는 기분으로 나왔다. 그리고 그 길로 의대병원으로 갔다. 도착한 시각은 외래 환자 시간이 지났으나 먼데서 왔다고 퇴근 직전의 응대해 주고 같은 의견이었으며 서류를 본 의사 선생이 시민병원 의사가 자기 대학동기라면서 “안심하고 수술을 받으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결심을 하고 시민병원에 갔고 1월 29일 수술받기로 되었다. 고오다 선생한테서 대학병원에 가고 집에 돌아올 때까지의 나의 마음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 마음이 생채소식을 해낼 원동력이 된 것으로 안다.
‘암’이라고 자기 진단한 정월부터 생채소식을 계속하며 다음에는 풍욕 1일 8회의 양생생활이 되었다.


나의 투병기

운명이란 무엇인가

S.M.H(34세)

필사의 투병생활
일단 바닥을 치는 곡선은 책을 보아 알았고,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 「증상즉요법(症狀卽療法)」이라고 머리 속에 새겨져 있었다. 그러나 너무도 심한 반응에는 니시모토 선생에게 전화할 때도 있었다.
어머니와 가족들은 외부에서 갖가지로 들리는대로 나보다 더 불안해 하고 수없이 니시모토 선생에게 꾸중을 들었다. 니시모토 선생은 전화로, 그리고 때로는 집에까지 와서 큰소리로 격려해 주셨다.
“고오다 선생님이 낫는다고 했으니 걱정 말라. 당신이 나을 때까지 내가 튼튼히 뒷받침 할 것이다” 이렇게 따뜻하고 근엄한 뒷받침이 있었으므로 8년이란 긴세월 동안 버티어 왔다고 생각한다.
고오다 의원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고독과 요법에 매달린 나에게 있어 가까이서 버티어 주신 니시모토 선생의 존재는 생명줄과 같은 든든한 존재였다.
1년째는 월 1일 정도의 단식을 함께 10번 했다. 처음 했을 때는 어름어름 했으나 할수록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도 쉬워졌다. 극적인 효과를 기대했으나 생각만큼 아픔이 가시지 않아 병근의 깊음을 통감했다. 그래도 네번째 단식 후 탱탱하게 부었던 손가락에 처음으로 주름이 나타났을 때는 대단히 감동했다.
결국 수일 안에 다시 탱탱해졌지만 내 몸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변하고 있는 것은 몸뿐이 아니었던 것이다.
병상호전의 징조 감사의 매일
병이라는 것은 항상 나와 나를 마주보게 한다. 24시간 곱하기 매일, 매일 매일 병은 내 안에 자리잡고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뿌리를 뺏고 있다. 아픔이 끊임없이 그 사실을 들이대고 거기서 도망칠 수가 없다. 그때마다 나를 새삼스럽게 돌아본다.
투병생활을 시작했을 때는 아무래도 건강했을 때가 바탕이 되어 현재가 더욱 힘들었다. 이제껏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어려움이나 문제를 내 스스로 풀어왔기 때문에 무엇인가 남에게 도움이 필요한 생활은 여간 서글픈게 아니었다.
상대에게 항상 미안해지고 사소한 일에도 마음이 무거웠다. 아니 사소하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바쁜 간호부에게 말을 걸 수 없는 환자의 마음이다. 그러나 실제 도움없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나날이고 체념, 관행의 나날이었다. 그러면서도 나의 존재 이유를 고민했다.
「과연 내가 살 가치가 있는 존재인가」 이런 생각에 자주 빠졌다. 「그래 살아 있어도 좋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무언가를 간절히 필사적으로 찾았던 걸로 생각된다.
[이 게시물은 자연건강님에 의해 2013-06-19 16:05:15 2007년 12월호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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