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2면-자연의학 개설
- 자연건강
- 2009-12-21 16: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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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학 개설
- NISHI의학의 원리와 응용-
서 승 조
철학과 생물학
생물학은 19세기 중엽을 경계로 해서 완전히 실험 생물학의 시대에 들어갔지만, 사물을 너무 인과론적으로 너무 분석적으로만 연구하는 경항을 낳았기 때문에 여러 방면, 특히 임상의학 방면에서 정체 상태를 맞게 되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때에는 포크트, 몰레쇼트, 뷰히넬, 헥켈 등에 의한 천박한 「속류 유물론」이 유포되어 있었다. 이들에 대한 반동으로 19세기말부터 20세기초에 걸쳐 다시 생기론이 대두했던 것이다.
독일의 생물학자, 철학자 드리쉬(Driesch, Hans Adolf Eduard, 1869~1941)의 「신생기론」(Neovitalismus)은 대표적인 것이다. 그는 구 생기론처럼 생명력이나 영기를 인정하지 않는다. 또 생체에 물리학, 화학의 제 법칙이 행해지는 것도 결코 부정하지 않는다. 또 물질계가 생체라고 인정될 수 있다고 하면 그것은 그 계(系)의 인과성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합목적성에 의한 것이다. 즉 항상 일정한 최종 목표를 향해서 나아가는 것이며, 그것에 의해서 통제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목표를 향한 선택성을 생물에 주는 초물리적, 초화학적인 힘을 ‘엔텔리히(entelechie)’라고 불렀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스머츠(Smuts, Jan Christiaan, 1870~1950) 등의 생기론자들은 생물의 「전체적 연관성」을 특히 중시한다. 즉 생체는 단지 개개의 세포가 모여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생체 그 자신이 하나의 단위이며 만약 그것을 분해하면 바로 한 개의 생체로서의 특질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생체는 항시 전체로서 이를 관찰할 수 밖에 없고, 분해된 요소의 생물학적, 화학적 작용이 어느 정도 명확해지더라도 전체로서의 생명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이를 요약하면, 전체는 항시 부분에 선행하고, 부분은 전체의 분화에 의해서 전체의 내면에 생기는 것이지, 전체는 부분의 함수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 주장은 일반적으로 「전체적 생기론」 또는 「생명전체론」이라고 불리운다.
그 대표자로서는 스머츠 외에 홀댄(Holdane, John Scott, 1880~1936)이나 뒤르켄(Durken, Bernhard, 1881~?)을 들 수 있다. 또 이들 이외의 생기론자에 붕게(Bange, Gustav von, 1844~1920), 린드플라이쉬(Rindfleisch, 1836~1908) 등이 있다. 그러나 그건 그렇다치고 생기론은 벨라 이후의 생물학, 의학에 있어서의 물리학적, 화학적, 실험적 방법의 저 찬란하고 놀랄만한 수 많은 성과, 업적에도 불구하고 왜 다양한 형태로 잔존하고, 소생하고, 끈기있게 연명해 가는 것일까?
처음에 기계론적 입장에서 연구에 임했던 생물학자, 의학자 가운데에는 예를 들면 할러, 비사, 라일, 뮬러, 버나드와 같이 그 방법을 철저하게 하면 할수록 여러 방면에서 막다른 길에 봉착하게 되어, 자기의 연구 방법에 자신을 갖을 수 없게 되고, 나중에는 생기론자로까지 되어 버린 사람이 적지 않은데 우리는 이것을 도대체 어떻게 해석하면 좋을까? 이들 학자들이 기계론에 만족하고 그것을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었다고 하면, 결코 생기론자로 전향하지 않았을 것이다.
필자는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 생명의 문제에 대해서 물리학적, 화학적, 실험적 방법을 강화하면 할수록 여러 방면에서 막다른 길에 봉착하게 되었던 것은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이러한 방법 자체에 원리적인 불합리가 잠재되어 있었던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그 실시 방법에 결함이 있었던 것일까? 그렇지도 않다면 그 결과의 해석 가운데에 오류가 있었던 것일까?
이미 독자는 알고 있겠지만, 이 문제의 태반은 앞 절의 논의에 의해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단순한 머리속의 해결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을 참으로 해명하기 위해서는 더욱 실증적이고 또한 실천적인 튼튼한 기초 확립이 이루어져야 한다. 현대의학 및 현대의 생물학은 그것을 수행할 수 없었다. 그것이 불가능했던 데는 또 그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이 문제를 참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니시의학의 출현을 기다리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선 그 니시의학의 진리를 해명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NISHI의학 자연요법
보건치병의 길잡이
NISHI의학은 병에 걸리지 않게 하는 의학으로서 병을 고치는 것이 주된 목적은 아니다. 그러나 실제 문제로서 건강할 때는 건강법에 관심이 없다가도 병에 걸려서 약물이나 주사도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비로소 니시의학의 문을 두드리게 된다. 그래서 본인은 의사의 입장에서 건강법으로보다는 치병법을 중심으로 니시의학을 해설해 보려고 한다.
-서의학연구소장 의학박사 와타나베 쇼-
암
쪾비극의 종막
따라서 암은 상피세포가 있는 모든 조직에 발생한다. 피부, 혀, 타액선, 구강, 부비공, 인후두, 갑상선, 유선, 식도, 폐, 기관지, 늑막, 위, 췌장, 간장, 담낭, 소장, 대장, 직장, 항문, 자궁, 난소, 부신, 신장, 방광, 음경, 고환 등이다. 암의 발생은 전기한 것과 같이 전신의 장기의 상피세포에 생기지만 처음 암이 상피조직 내에만 있는 시기를 상피내암이라고 하고, 이 이전의 상태로 정상적인 세포가 아닌 시기를 전암상태라고 부르고 있다.
현대의학에서는 이 전암상태의 시기에 암을 발견하면 암을 거의 치유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암은 통증이 없고 전신적인 발열을 일으키지 않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자각증상이 없기 때문에 암의 조기발견은 지극히 어려우며 일반적으로 치료를 받다가, 암이라고 진단되는 시기에는 암은 상당히 진행되어 있어서 그대로 두면 평균 약 1년 밖에 살 수 없다는 것이 거짓없는 오늘의 실정이다.
니시의학은 암을 이렇게 보고 있다
그렇다면 암의 근본적 치료법 및 정확한 예방법을 현재로서는 인류는 단념해야만 하는 것일까?
나는 단연코 ‘아니다’라고 외친다. 참으로 외람된 말이지만 나는 암을 완전히 예방할 수가 있다. 또 암에 걸렸어도 이를 치유할 수 있다고 단언하는 바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암이 생기는 원인을 분명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암의 원인에 대해서는 1959년 11월에 돌아가신 니시의학 건강법의 창시자 니시 가쯔조 선생이 해명했으며 프랑스의 학자 에스토리뽀 박사, 독일의 유명한 생화학자 와르브르그 박사의 학설 등도 지지하고 있다.
첫째, 암의 원인은 인간의 몸 속에 생기는 일산화탄소의 증가와 그로 인해 유발되는 산소의 결핍에 의한 것이다.
어째서 인간의 체내에 무서운 유해가스인 일산화탄소가 발생하는가? 이것은 결국 인간이 옷을 너무 두껍게 입어서 피부가 호흡작용을 충분히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체내에 충분한 산소가 보급되지 않기 때문에 체내에서 산화반응이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아서 일산화탄소라는 유해가스가 발생한다.
이에 반해서 자연의 동물은 옷을 입지 않는다. 피부는 털로 덮여 있지만 자연의 대기에 항상 접하고 있다. 그리고 인간과 같이 밀폐된 옥내에 사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대기 속에서 산다. 따라서 인간 이외의 동물은 피부의 호흡작용이 완전히 이루어지고 있으며 체내의 산화에 필요한 산소가 충분히 피부호흡에 의해서 공급이 된다. 산소가 피부호흡에 의해서 충분히 보급이 되면 체내에 발생한 무서운 유해가스(일산화탄소)도 산화되어 무해한 탄산가스와 물로 변한다.
체내에 발생한 일산화탄소야말로 무서운 암이다. 체내에 일산화탄소가 불어난 상태에서, 거듭해서 자극받는 기관의 상피조직이 이상증식한 것이 암이다. 인간 이외에 자연생활을 하고 있는 포유동물에게 암이 없는 것으로도 잘 알 수가 있다.
체험·치험 사례
고다 박사의
단식 체험기
쪾7월 31일
이 길로 들어선지 20년간 실제 자나 깨나 음식물을 생각하지 않는 날은 없을 정도로 식양도로 고심해온 덕분으로 조금은 알게 되었으나 사쿠라사와 선생 말대로 「식양의 길은 항상 박빙을 밟는 마음」으로 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번 단식후 특히 주의하여 지키지 않으면 안될 것은 소식에 철저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것을 먹지 말라던가 과식은 절대 안된다던가 야식을 먹지말라던가 여러가지로 사람들에게 주의하고 있으나 소식을 지키는 것에 있어 나도 아직 큰소리치기 어렵다. 어려서부터 크게 좋아했던 단것만은 겨우 졸업했으나 소식은 아직 철저하지 못하고 때때로 과식한 후에 후회하는 꼴로 이번 병의 원인도 확실히 이 과식이 탈낸 것이 틀림없다. 이제부터 어떻게 식생활을 해갈 것인가 하고 구체적인 식단표를 만들고 종일 생각하고 있다.
우리들이 도대체 하루에 얼마나 먹어야 하느냐 하게 되면 이처럼 어려운 문제는 없다. 사람마다 위장의 소화흡수력이 전부 다르므로 소식으로 토실토실 살찐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편에는 먹어도 먹어도 살찌지 않고 마른 사람도 있다. 단식을 마치고 중탕에 죽, 밥으로 점점 회복식으로 나아갈 때 이런 적은 식사량으로 하는데 체중이 점점 늘어나는 사람과 같은 회복식에서 평상식으로 돌아갔는데도 그다지 체중이 늘지 않는 사람이 있는 것은 신기하다(그중에 몰래 먹어서 증량하는 사람이나 신장이나 심장이 나빠서 부종이 오는 사람은 예외이다). 주의할 것은 자기의 위장의 소화흡수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모르고 소식에 지나쳐 언제까지나 영양실조 상태에서 회복을 늦게하거나 보통 이상의 소화흡수력으로 부활했는데도 불구하고 그전과 같은 양을 먹으려고 과식하여 버리는 사람들이다. 단식 후의 과식으로 실패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다 아는 바이지만 너무도 소식에 치우쳐 영양실조에 빠지는 사람도 더러 있고 때때로 나의 병원을 찾아오는 사람도 있다. 단식지도자는 이 점에도 충분히 배려해야 할 것이다.
지금 입원하고 있는 도요시마군은 10일간의 단식으로 체중이 겨우 4kg정도 밖에 줄지 않았고 단식종료 후 15일간에 그중 3kg이 이미 증가해 버렸다. 이런 사람의 체질은 대단히 좋은 것이다. 단식중에도 평소처럼 활기있고 회복식에 들어가면 점점 활기차다.(본회 고문·의학박사 고다의원장)
[이 게시물은 자연건강님에 의해 2013-06-19 16:05:01 2007년 11월호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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