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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1면-아침형 인간과 건강법

  • 자연건강
  • 2009-12-21 16: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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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형 인간과 건강법
―인간 본래의 생활리듬을 찾아서―

배 성 권

‘이 무한한 공간의 영원한 침묵은 나를 전율시킨다’
이것은 ‘생각하는 갈대’로 더 잘 알려진 ‘명상록’의 저자이며, 프랑스의 사상가요 수학자며 물리학자인 파스칼의 말이다.
철학자는 말한다. 고독이 무서운 것은, 고독 그 자체 때문이 아니고 오히려 고독의 조건 때문이라고. 이 사색의 계절에 한번쯤 음미해 보고 싶은 말이 아닌가 생각한다.
필자가 젊었던 시절에는 이 파스칼의 ‘명상록’과 몽테뉴의 ‘수상록’을 애독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아니 애독했다기보다 인생을 탐구하는 방편으로 생각했을지 모른다. 이 몽테뉴도 프랑스의 사상가로서 파스칼과 쌍벽을 이루는 사상가요 모랄리스트였다.
몽테뉴는 어렸을 때 늦잠을 잘 잤다. 그의 아버지는 몽테뉴의 늦잠 자는 버릇을 고쳐 주기 위해서 집사에게 이렇게 시켰다. 아침 6시면 몽테뉴의 침실 문앞에 가서 “도련님은 장차 훌륭한 인물이 될 분인데 늦잠을 자서야 되겠습니까. 어서 일어나십시요”라고 외치게 했다.
이렇게 해서 몽테뉴의 늦잠 자는 버릇을 고쳐 주었다. 처음에는 짜증을 부리던 어린 몽테뉴도 어느새 나는 이 다음에 큰 인물이 될 사람인데, 늦잠을 자서야 되겠냐고 이부자리를 걷어차고 일어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우리 건강법의 암시요법과 같은 역할을 했을 것이다. 건강법의 창안자 니시의 말을 빌면 각자의 습관적인 차이는 있겠지만, 어른이라면 적어도 밤 12시전에는 자야 하고, 아침 6시에는 일어나지 않으면 안된다고 했다. 그 이상 자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아이들이라면 10시에는 자게 하고 아침 6시에는 일어나는 것이 좋다고 한다. 되도록 빨리 재우는 편이 좋다는 것이다.
중학생이나 남녀 학생의 경우도 해가 떴는데도 잠자리에 들어 있으면, 대체로 아랫도리에 신경이 작용하기 때문에 자위행위 등을 유발하기 쉽다는 것이다. 그래서 프랑스 쪽에서는 이것을 매우 싫어하여 해가 뜨면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도록 두들겨 깨운다고 한다.
해가 떴는데도 이부자리 속에 들어 있으면 불량해진다. 즉 침상이 따뜻하면 배설기관이나 생식기관의 신경이 아래쪽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묘한 느낌을 일어켜서 안된다는 것이다.
일요일이라고 해서 늦잠을 자게 하는 것도 좋지 않다. 그러므로 어쨌든 해가 뜨는 것과 동시에 깨어서, 결코 침상 속에 놓아두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한다.
7세 이하는 말할 것도 없겠지만, 10세정도부터는 아침 6시에 일어나도록 하다. 그리고 밤에는 일찍 자게 한다. 이런 습관을 붙여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1979년이라고 생각된다. 사이쇼 아스시라는 의사가 ‘치료자의 자기체험에 의한 건강법’이라는 부제로 「조기심신건강요법(早起心身健康療法)」이라는 저서를 낸 일이 있었다. 책의 장정이나 외양은 그렇게 훌륭했다고 생각되지 않았지만, 필자로서는 몇번 통독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 책이 ‘일본도서관협회선정도서’로 뽑힌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뿐만이 아니었다. 28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저자의 아들인 사이쇼 히로시(1951년생) 박사가 성마리아나 의과대학을 졸업하고나서, 다시 와세다침술(鍼灸) 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이 부친 선대의 조기심신건강요법을 계승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100일로 「아침형 인간」이 되는 방법’이라는 저서를 비롯하여, 저서가 무려 70여권이 된다고 하니 놀랍기만 하다. 이것들은 우리말로도 몇 권이 번역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근착 외신 보도에 의하면 최근 미국에서도 ‘아침형 인간’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 자연건강법의 조식폐지 2식주의 ‘무조반 생활’도 아침형 인간의 중추를 이루고 있다고 생각할 때, 더욱 진리는 정도로 간다고 확신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인류가 태고적부터 몸에 익혀 왔던 유전자 정보― 「무조반 생활」의 리듬을 되찾으면 우리 모두가 이 어려운 시대의 험난한 파도를 헤쳐 나갈 수 있는 자신이 생길 것이라고 확신한다.(회장)


논단

종교와 건강

1950년대초 유물변증법을 사회생활의 신조로 하는 러시아가 종교를 공인했다고 하는 기사를 차중에서 읽은 일이 있다. 다년간 ‘종교는 아편이다’라고 배격해 오던 소련 공산권의 정책으로서는, 국책의 대전환일 것이다.
사회심리학자의 설에 의하면 종교는 인간의 종교 본능에 근거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 본능을 막아 못하게 하면 예상할 수 없는 사회문제가 발발하는 일도 있다고 사회심리학자는 가르치고 있다.
여는 러시아 혁명이래 소련의 종교정책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런 기사를 보고 마침내 올 것이 왔다고 생각하며, 차창을 통하여 한참동안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들의 생활은 유(有)와 무(無)의 통일이 지양(止揚)에 의해서 건강과 행복을 획득할 수가 있다. 그리고 생활을 무로 하는 방편으로서 여는 종교에 귀의할 것을 설파해 왔다. 그러나 오늘날의 종교는 가혹한 현실 생활을 무의 생활로 유도할만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수많은 사람들이 소위 신흥종교에 쏠리고 있는 원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전래의 종교가 종교로서의 생명을 상실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신흥종교도 역시 그들 신도들에게 내일의 행복과 건강을 약속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과연 소련의 종교 정책은 어떤 것일까. 여는 행복과 건강을 약속하는 참 종교가 흥기(興起)하기를 충심으로 바라는 마음이다. 또한 후대에 이어지는 진리야말로 니시의학이 있다는 것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후 소련의 사회주의 체제는 어떻게 되었는가. 새로운 체제가 어떻게 진전되고 있는가 계속 관망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겸당)
[이 게시물은 자연건강님에 의해 2013-06-19 16:04:45 2007년 10월호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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