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5면-고구려의 옛 땅과 백두산을 찾아서
- 자연건강
- 2009-12-21 16:02:00
- hit481
- vote0
- 118.223.45.178
고구려의 옛 땅과 백두산을 찾아서
강기웅
Ⅰ. 들어가는 말
대학생불교연합회 회원 60명, 일반인 10여명 등 총 70여명이 대불련이 기획한 「COREA의 고구려를 찾아서」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하였다. 기간은 2007년 6월 25일부터 30일까지 5박 6일의 여행이다.
여행 중에 동국대 윤명철교수는 유적들에 관하여 자세한 해설을 해주었고, 이황사장은 이번 여행에 젊은 대학생들이 고구려의 옛땅과 백두산을 보고 기상이 넘치도록 금전적 뒷받침을 해주었다. 여행 중에 지도교수로서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기 보다는 넓은 요동벌판에 말을 타고 달리는 고구려인이 된 기분으로서 나날을 보냈다.
Ⅱ. 여행의 행로
1. 서울에서 대련
6월 25일 오후 5시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대련에 내리니 현지시간으로 오후 5시 반이다. 중국과 우리 나라는 시차가 한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1시간 반 만에 중국 대련에 도착한 것이다. 대련은 노일전쟁 후에 일본이 점령한 곳이라 일본풍의 건물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으며, 오늘날에도 일본기업이 많이 진출하고 있다고 한다.
저녁 식사 후 7시 반에 대련을 출발하여 단동으로 향했다. 단동까지는 323km이다. 고속도로 주변은 개발이 되지 않은 한적한 시골이며, 차의 통행량도 많지 않다.
2. 단동에서 집안까지
6월 25일 아침 식사 후에 호텔에서 차량으로 압록강변으로 이동하여 유람선을 탔다. 유람선은 단동(丹東)과 신의주를 연결하는 철교밑을 지나 신의주가 있는 북한쪽 강변으로 갔다. 북한과 중국이 협정을 맺어 압록강은 양국이 공동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어느 쪽이든 상대방의 육지에만 올라가지 않으면 위반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손을 흔드니 북한쪽의 작은 조선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손을 흔들어 주었다. 조선소의 규모는 영세하고 손을 흔드는 사람의 표정은 활기가 없고 옷은 누추하다. 강변에 있는 2층의 큰 집이 있는데 일년에 한 두번 기념일이 되어야 불을 밝힌다고 한다. 유람선에서 북한 우표를 기념으로 구입하였다.
유람선에서 내려 고구려시대 박작성(현재는 탑호산성(塔虎山城)을 향해 출발하였다. 압록강을 따라 가는데 군인들이 교통통제를 하고 있다. 강변에는 군인들이 부교로 도강훈련을 하고 있다. 위치는 북한의 위화도의 맞은 편이다. 위화도는 잘 아는 것처럼 고려말에 이성계가 요동을 치려고 군사를 출전시켰다가 이곳에서 회군한 섬이다. 중국군이 북한에 변고가 생길 경우에 신속히 군사를 투입하는 것을 고려하여 훈련하는 것이 분명하다. 차가 박작성(泊灼城)에 있는 호산진(虎山鎭) 호산촌(虎山村)에 도착하였다. 이 성은 고구려시대 압록강변에 위치하여 적의 수군 공격을 방어하는 중요한 성이며, 발해 때에는 해로로 중국으로 가는 사신이 이곳에서 출발하였다고 한다. 명나라 시대에는 이곳에서부터 만리장성이 시작되었다고 하여 최근에 성벽을 새로 수리하고 성벽 끝에는 박물관이 건립되어 있다. 박물관 바로 옆에는 고구려 성곽의 유적이 있고 고구려의 우물터가 있다. 우물은 직경 4.4m, 깊이 13m이며, 발굴 과정에서 길이 3.7m의 고구려시대의 목조배와 노가 출토되었다. 그러나 현재는 우물은 흙으로 묻어 버려 의식적으로 이곳이 고구려시대의 박작성이라는 것을 감추고 있다.
다음은 고구려의 국내성이었던 집안으로 향하였다. 도로는 비포장 2차선으로 강변을 따라가는 좁은 길이다. 옛날 옛적 고구려의 선조들이 말을 타고 가던 길이라 생각하니 감회가 새롭다. 주변의 경치는 우리나라와 풍경과 다른 것이 없는 산세이다. 집들의 규모가 작고, 지붕은 붉은 기와인 것이 모두 비슷하다.(법학박사·건국대학교 법대 교수)
허약체질을 개선하여 의사가 된 나오키 박사의
건강생활 실천기
합장합척(合掌合蹠) 촉수(觸手)요법의 실천
나의 모친은 40분합장을 수련하고 우리가 아플 때는 촉수를 해 주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만성충수염이어서 자주 통증을 호소했는데 어머니의 촉수로 언제나 풀렸고, 수술하지 않으면 안된다던 것이 어머니의 촉수와 붕어운동으로 좋아졌다.
1930년 가을에 아버지가 중증 적리에 걸려 빈사상태에 빠졌을 때도 어머니의 촉수로 위기를 모면하였다. 어머니는 또 친척이나 아는 사람에게 가서 촉수하여 주기도 하였다.
나도 촉수요법을 할 수 있는 손을 만들었으면 하였는데, 1933년 11월에 강습에 참가하여 6명이 함께 하였다. 40분을 끝냈을 때 팔이 아프고, 어깨가 굳어지고, 한쪽 다리가 저리던 생각이 난다. 그날 저녁 식사 때는 양쪽 어금니가 몹시 아팠던 기억이 난다.
촉수요법을 남에게 할 때에는 손바닥으로 나오는 효소를 잃어 체력을 소모하게 되니까, 6대법칙을 하고 생야채식 냉온욕 등을 실천하지 않으면 안된다.
준비없이 촉수요법을 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니시선생은 훈계하고 있다. 나도 함부로 나의 체력을 소모하지 않도록 주의하여 꼭 필요할 때 이외에는 하지 않도록 명심하고 있다. 니시회 회원도 전보다 촉수요법을 하는 사람이 줄었다고 생각한다.
40분 합장수행보다는 합장합척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 아침 저녁의 실천은 건강 증진에 대단히 유효하다. 안산(安産)에는 특히 효과가 있으니까 임신부에게는 꼭 권했으면 한다.
합장은 「신(神)에 통하는 방법」이며, 합장합척은 「정신과 육체의 일치를 가져오는 것이다」. 합장합척으로 좌우의 신경이 정돈되고 정신의 안정이 얻어지는 것이니까 정신적 스트레스가 많은 현대에는 특히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식사 전후에 합장을 하면 식중독을 막을 수가 있다. 또 합장하고 음식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도 지금으로서는 특히 필요하다.
언젠가 고다박사는 자신의 다리의 고장과 요추골(腰椎骨)의 고장을 고치기 위하여 수년에 걸친 합척을 매일 장시간 실천하여 끝내 고질(痼疾)을 고쳤다는 말을 듣고 강한 인내와 굳은 신념에 깊이 감탄한 바 있었다.
고다박사의 책 『현대의학의 맹점을 찌른다』를 보면, 왼쪽 대퇴부 바깥쪽의 피부가 저렸는데, 그 원인이 왼쪽 고관절의 이상 즉 고관절의 대퇴골의 골두가 잘 맞지 않는데 있었다. 합장합척운동을 계속한즉 고관절이 잘 맞아들어가 저린 것이 풀렸다고 쓰여 있다.
고다박사는 그 후 많은 사람들에게 어느 쪽인가의 대퇴부에 감각의 이상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대다수의 사람은 좌우의 고관절이 조금이라도 불대칭인 것, 그리고 이것을 같게 하는 방법이 합척임을 지적하고 있다.
두 개의 다리로 서서 체중을 지탱하고 있는 우리는 역학적으로 좌우 언밸런스가 되기 쉬워 고관절이 좌우 불대칭으로 된다. 좌우의 다리의 길이가 달라지고 골반이 기울어 척추가 만곡하는 것은 이해하기 쉬운 일이다. 이들의 역학적인 언밸런스를 고치기 위하여 또 그 예방을 위하여 합장합척 운동을 힘쓰지 않으면 안된다.
[이 게시물은 자연건강님에 의해 2013-06-19 16:04:45 2007년 10월호에서 이동 됨]
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