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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6면-기독교와 니시의학자연건강법

  • 자연건강
  • 2009-12-21 16: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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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와 NISHI의학
자연건강법

Katsuzo Nishi

12. 위상학(Topology)에 대하여
이것을 수학으로 말하자면 원 투 원 코레스폰덴스(one to one corespondence) 말하자면 1대 1의 대응이라 한다. 이 1대 1이라는 원래는 복수수(復素數)에서 나타나는 것이지만 이제부터 무한론에서 연속론, 집합론(set) 이렇듯 점점 어려워져서 토로로지(Topology) 즉 위상학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서의학은 이 토포로지에 도달하고 있는 것이어서 진짜 건강은 토포로지칼 타이포로지(Topological-typology) 즉 위상학적 유기체험학(位相學的 有機體型學)에서부터 풀지 않으면 만들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들은 경제생활에 국제생활을 하고 있다. 예를 들면 어떤 장소에서 강연회를 한다치면 인쇄비도 들고 회장비도 든다. 그런 것들은 나는 별로 서의학쪽에서 수입을 얻어 생활하고 있는 것이 아니므로 다른데서 걱정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 경제적 어려움 또는 국외에서든가 국내에서의 압박이란 것을 개인으로 당하고 있다. 나는 정말 하느님에 가까운 그것이야말로 0=0의 생활도 할 수 있고 1=1, 1=0이란 것을 진정으로 맛볼 수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지금의 경제생활, 사회생활을 해나가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아무래도 필요없는 걱정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13. 최근에 와서 점점 심장펌프설에 의문을 가지게 되다
현대의학에서는 심장을 펌프라고 한다. 심장은 혈액순환의 원동력이라고 하는 것이 현대의학의 근본학설이다. 거기에서 사람이 병이 나서 점점 심장이 약해지면 심장은 펌프이기 때문에 비타칸화나 지기다리스 같은 강심제를 줘서 심장을 원래의 건강체의 심장의 힘을 복원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서의학에서는 심장은 펌프가 아니라 오히려 탱크이다. 살아있는 수조의 활동을 하는 삭크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강심제를 투여하는 것은 오히려 그 사람의 죽음을 재촉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현대의 의학이 심장을 펌프라고 생각하고 있는 동안에는 살인을 하고 있다고 나는 외치고 있다. 그 때문에 현대의학 쪽에서부터 20 수년간 거의 왕따당하고 있다. 그런 문제로 때로는 숨죽이고 가만히 있지 않으면 안되는 일도 있다. 그것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심한 일을 당하거나 암살될 수도 있는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든 강심제를 제조하고 있는 관계자만 해도 7천명의 가족이 실업의 운명에 놓이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사람들의 사정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이유로 작년에는 멀리 브라질까지 가서 일본 사람들이 이주하고 있는 상태를 조사하고 왔던 것이다. 서의학이 인정되면 현재 개업하고 있는 10만인의 의사 중 8만인은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므로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최근에 미국에서도 심장의 펌프라는 문제에 대해서 의문이 나오는 것이다. 그 제1인자는 캐나다 대학의 버치(Burch)교수이다. 그러나 심장이 펌프라는 데는 의문을 갖고 있지만 아직 결론적으로 돼 있지 않다. 심장이 펌프가 아니라고 한다면 큰 문제가 생기게 된다. 이것은 일본에서 만든 하루에 1000명의 살인을 공공연히 행하고 있다는 결론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이유 때문에 그리스도교의 성경 속에서 얼마만큼 치료라는 말이 나오는가에 대해서도 모두 조사하고 있으므로 그것을 일일이 말하고 싶지만 우선은 비판 쪽으로부터 말씀드리겠다.




요석 한학륜 전명예회장 기념 연재

자세 결함의 관측과 치료
-정적 관찰을 중심으로-

2. 학령기 전의 유아
다른 면으로부터 고찰하여 본즉, 운동이나 근육의 움직임이나 그 결과로서의 근육의 발달은, 하등 속박을 받지 않는 영아에 있어서는 토인과 같은 취급을 받는 것보다는 훨씬 중요한 문제이다. 신체가 곧바르다는 것은 지보(支保)로서도 혹은 근육 활동으로서도 달성되지만, 이것 등은 어느 것이나 유리하고 불리하고 한 점을 섞어서 가지고 있다. 이와 반대로 만곡은 부정확한 지보, 또는 부정확한 운동에 의하여 야기되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여기서는 특히 부적당한 의복과 운동, 완구와 기구라는 점에 관련하여 고찰하였으면 한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영아의 의복은 자세라는 점으로부터 말하면 일반적으로 양호하다. 그 의복은 큼직하여 여유가 있고 또 가볍고 더구나 운동의 방해가 되지 않는다. 곱사병을 갖는 영아에게 엉덩이 받침을 대면, 다리가 굽는 수가 있다. 그러나 정상적인 영아에게는 이것을 해도 그런 장해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실지로 엉덩이 받침은 널리 일반에게 쓰여지고 있지만, 굽어진 다리는 비교적 적다. 가령 있었다고 하여도 그 원인은 곱사병에 있다고 하리라. 양복 바지나 아랫도리를 끈으로 어깨에 걸치게 하면 고양이 등처럼 굽는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유아용의 바지끈은 극히 가벼우므로 그런 일은 일어나리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아마도 그 원인은 더 뿌리깊은 것이리라. 구두와 양말이 바지끈보다도 중대성을 갖고 있다. 현재 발이 기형인 사람이 놀랄만큼 많은 것은 잘 아는 사실이다. 이러한 발의 기형은 많은 경우 극히 어릴 때의 부주의에 의한 결과이다. 적당한 신발, 나막신이나 구두에 대하여는 갖가지 전문가의 연구를 후에 발표할 예정이므로, 여기서 새삼 그 중요성을 역설할 필요는 없으리라. 그러나 나막신이나 구두만에 책임을 지우는 것은 부당하다. 특히 유아의 경우에 있어서는 양말이 부적당한 것이 많고, 발에 꼭 맞는 양말을 신기는 사람이 적다. 그렇지 않아도 한번 빨면 양말은 줄게 되고, 또 유아의 발은 발육이 빠르므로 자연히 다소 여유있는 양말도 발을 죄게 되어 버릴 것이다. 발을 죄는 것 같은 양말을 신고 있으면, 발의 양쪽 끝에 끊임 없는 압박이 가해지는 것이다. 이 압력 그 자체는 결코 발을 기형화시킬 정도로 영향은 없지만, 이것을 매일 12~14시간 계속 사용하고 있으면, 끝내는 발을 심하게 기형화하여 버릴 것이다.
윌프(Wolfs Law)씨의 법칙에 의하면, 이런 압력에 대응하여 발의 뼈의 외형이나 내부적 구조는 변하게 되는 셈이다. 딱딱한 구두가 발에 해를 주는 것은 분명하리라. 그러나 그 영향은 부적당한 양말 이상으로 나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느쪽 한쪽이라도 적지 않은 해를 미치는 것이므로, 양자를 병합한 때의 영향은 참으로 한심스러운 것이 될 것이다. 일반적으로 흔히 되고 있는 바를 보면, 딱딱한 양말과 몹시 질기고 연한 녹피(鹿皮) 제화를 신기고 있다. 발 그 자체가 정상이고 강하며, 이전에 딱딱한 양말로 손상되지 않았다면 녹피제 구두라도 해는 없다. 그러나 이미 기형화된 발이나 약해져 있는 발에, 녹피제 구두와 같은 질기고 연한 것은 신겨서는 기형을 증대시키는데 불과하다. 딱딱하고 폭이 넓고, 바닥이 평평한 구두는 발을 정상적인 형상으로 유지하게 할 것이다.
복대와 같은 배의 지보물이나, 고양이 등 방지용 같은 것은 기형의 실증이 없는 한, 일시적인 사용은 어떻든 시종은 사용할 것이 아니다. 그 사용이 과연 적당한가 아닌가는, 개개의 경우에 대하여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예방적 수단으로서 사용하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나의 투병기

운명이란 무엇인가

신 미 희(34세)

절 망
때로는 「신약이 나왔으니 실험해 봅시다」 등 자세한 설명이 없어도 받아먹어 보지만 검사수치는 같지 않을 뿐아니라 점점 악화일로였다. 이래서는 나을 희망은 없었다.
「아픔과의 싸움. 여러 요법에 매달리고 이렇게도 노력하는데」 병원에서 오는 길에 사람들 틈을 헤쳐오면서 나도 모르게 울고 있었다.
「이대로 증상이 악화되고 끝내 누워 못일어나게 되고 마는 것일까」 가족들의 짐이 될 것을 생각하니 밑바닥 없는 무한지옥으로 빨려들어 가는 것 같았다.
번쩍 정신을 차리니 보행금지선 밖을 걷고 있었다. 그때의 나의 심정은 바로 죽음언저리를 방황하고 있었던 것 같다.
고오다 요법 입문
내가 어떤 의사를 알게 된 것은 바로 그때였다. 그는 「마이너스 영향」이란 불가사의한 설을 주창해 현대의학에 정면으로 대항하고 있었다. 그러나 여러가지 난치병을 고치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나는 그 선생이 저술한 책을 몇 권씩 사들여 읽는데 빠져들었다. 이제껏 수없이 배신당한 만큼 그리 간단히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가냘픈 희망도 안이루어져 난치병이 아닌가. 그래서 모두 고통받고 있지 않은가. 이에 도전하는 마음으로 한장 한장에 매달렸다. 그 전부를 읽어 끝맺었을 때 내가 잘못 살아온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한 줄기 섬광이 나에게 던져진 순간이었다. 이제까지의 나는 고쳐주기만을 바라왔다. 인간에게 본래 주어진 힘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자연치유력을 높여서 스스로 병을 극복하자는 것이 그 선생의 주장이었다.
나는 마음을 정하고 새로운 문으로 들어갔다. 1993년 2월 12일의 일이었다. 멀고 먼 오사카까지 발을 끌고 갔었는데 진찰은 3분도 안걸리고 끝났다.
나의 손을 보고 「숙변이 있군요」라는 한마디를 끝으로 배를 조금 만지고 쓱싹 식사와 운동 메뉴를 써주시는 것 뿐이었다. 이제까지의 병원에서는 초진에 오래 기다리게 하고 가지 각색 검사도 몇 시간을 걸리는 것이 보통이었으므로 그 너무나도 다름에 어쩐지 맥 이 빠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 난치병을 난치병으로 생각지 않는 진찰에 오히려 희망이 실리는 자신감이 생겼다.
내가 처음 받은 처방은
아침 녹즙 한그릇
점심 현미밥, 두부 반모, 검정깨 10g,
저녁 녹즙 한그릇+점심과 같음
붕어운동 3회, 모관운동 5회, 풍욕 3회, 합장합척운동 1회, 온냉욕 1회 였다.
[이 게시물은 자연건강님에 의해 2013-06-19 16:04:45 2007년 10월호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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