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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2면-자연의학개설

  • 자연건강
  • 2009-12-21 15:5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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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학 개설
- NISHI의학의 원리와 응용-

서 승 조

철학과 생물학
이에 대해 부르하베(Boerhaave, Hermann, 1668~1738)는 생명현상을 개체 및 액체의 복잡한 운동이며, 수축과 신장의 기계적 작용이다라고 하여 어느 정도 기계론적 입장을 취했고, 또 부르하베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라·메뜨리는 당시 프랑스 의사, 의학자, 의과대학의 인습적, 보수적인 분위기에 대해 격렬한 증오감을 품고, 그 기계론적 사상 때문에 신변에 위험을 느껴 파리를 떠나 프러시아에서 『인간 기계론』 등의 저서를 간행했던 것이다.
이러한 대립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슈탈, 할러, 비샤 등의 생기론은 점차 유럽의 생물학계, 의학계를 풍미, 석권하여 생명현상을 신비한 영기의 힘에 귀착시키는 경향은 19세기 중엽에 이르기까지 생리학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리학, 화학의 성과를 생리학 가운데 받아들여, 인체생리학을 대성하여 불후의 공적을 남겼던 실험 생리학자 뮬러(Muller, Johannes Pettr, 1801~1858)조차도 뒤에는 완전히 생기론자가 되어 생체에 특수한 생명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주장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19세기에 들어와서부터 급속한 진보를 거둔 자연과학적 연구의 방법과 성과는 생물학, 인체 생리학, 병리학 등의 방면에도 점차 스며들어와 마침내 오늘날에는 생물학, 의학의 모든 방면에 있어서 맹위를 떨치던 ‘생명력’이라든가 ‘영기’ 혹은 ‘목적원리’와 같은 개념은 차차 영향력을 잃게 되고, 그 대신 ‘인과원리’가 모든 과학의 근본사상이 되기에 이르렀다.
우선 생기론이 받은 최초의 커다란 타격은 1828년뵐러(Wohler, Friedrich, 1800~1882)의 요소의 인공합성 성공이다. 무기화합물은 실험실에서 인공적으로 합성할 수 있는데 반해 유기화합물은 생물 특유의 영기, 혹은 생명력이라고 하는 초워적인 특이한 힘에 의해서만 합성되고, 인공합성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던 생기론의 지주는 이 뵐러의 요소인 공합성에 의해 타파되고, 유기물과 무기물 사이에 원리적인 차이가 없다는 것이 밝혀지게 되었다. 그에 이어 각종 유기화합물의 인공합성 및 리비히(Liebig, Justus, Freiherr von, 1803~1873)에 의한 유기화합물 분석법에 의해 완전히 타파되었던 것이다.
또 마이어(Mayer, Julius Robert von, 1814~1878), 쥴(Joule, James Prescott, 1818~1889)에 의한 ‘열에너지’의 연구, 1848년 헬름홀츠(Helmholtz, Hermann Ludwig 「erdinand von」, 1821~1894)에 의한 「열역학 제1법칙」 즉 「에너지보존의 법칙」의 확립 및 그 법칙이 물질현상과 마찬가지로 생체에 있어서도 또한 성립한다고 하는 것의 증명은 생기론의 위력을 꺾어 놓기에 충분했다.(졸고 「영양에너지의 본질과 구성」 참조)
나아가 1809년 라마르크(Lamarck, Jean Baptisre Pierre Antoine de Monet, Chevalier de, 1774~1829)에 의해, 1839년 산·일레이(Saint Hilaire, Etienne Geoffroy, 1772-1844)에 의해 생물진화의 사상이 제창되고, 앞절에서도 서술했던 것처럼 1859년에는 다윈의 『종의기원』이 출판되어 「진화론」이 대성되고 있다.



NISHI의학 자연요법

보건치병의 길잡이

NISHI의학은 병에 걸리지 않게 하는 의학으로서 병을 고치는 것이 주된 목적은 아니다. 그러나 실제 문제로서 건강할 때는 건강법에 관심이 없다가도 병에 걸려서 약물이나 주사도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비로소 니시의학의 문을 두드리게 된다. 그래서 본인은 의사의 입장에서 건강법으로보다는 치병법을 중심으로 니시의학을 해설해 보려고 한다.
-서의학연구소장 의학박사 와타나베 쇼-



쪾전이되기 이전에
암은 인간의 몸 전체를 하나의 보기 흉한 고깃덩어리로 만들려고 노리고 있다. 다만 그 전에 인간의 생명력이 다해 버릴 뿐인 것이다. 그런데 암 자체에는 별로 의미도 없는 일이지만, 인간에게 있어서는 그들이 처음 노리는 곳은 대단히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생명의 유지에 가장 중요한 기관인 두뇌, 이곳을 암이 노린다면 일격에 다운된다.
뇌암은 다른 곳으로 전이되는 암은 아니다. 그러기 전에 숙주가 죽어버린다. 암이 돌파구로서 뇌 같은 곳을 노리든가(다행히도 거의 예가 없지만), 자궁 같은 곳을 노리든가에 따라서 대단한 차이가 있다.
암 발생의 진정한 원인을 모르는 이상 확실한 예방법이 없으므로 암이 노리는 장소에 따라서 불운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된다. 단지 여기서 말할 수 있는 것은 죽지 않아도 되는 곳의 암으로 죽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는 죽지 않아도 되는 암으로 죽는 사람이 너무 많다. 이 말을 바꾸어 말하면 전이가 되지 않을 암을 전이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악의 나무는 움틀 때에 잘라버리라는 말이 있듯이 암 또한 전이하지 않은 작은 때에 잘라버리면 간간히 근치가 된다.
쪾독소―암세포의 대사물질
전이와 함께 독소를 내보내 숙주를 괴롭히는 거도 암의 커다란 특징이다. 이 독소는 비교적 조기부터 나오지만 특히 전이가 시작될 무렵에 심해진다. 전이와 독소는 암의 말기를 전후해서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암은 말기가 되면 전이하면서 독소를 내보낸다. 또는 독소를 내보내면서 전이한다고 할 수도 있다. 암이 독소를 내보낸다는 것은 옛날에는 확실히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러나 불치의 병, 무서운 병이라는 관념 속에 직관적으로 이 요소도 들어 있었다고 생각되었다.
고작 달걀 정도 크기의 종기가 어째서 커다란 인간을 쓰러뜨리는가? 죽음의 신의 저주라고 생각하는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암세포는 독소를 내뿜는다. 그 독소에 의해서 숙주가 고통을 당하고 죽음에 이른다고 많은 학자들이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독소를 세계에서 최초로 발견한 것은 일본의 나까하라 박사이다.
박사가 암세포 속에서 독소를 추출하여 여기에 ‘토키소호르몬’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1948년의 일이다.
독소란 암세포의 대사물질이다. 인간이 생활할 때에는 대변이나 소변, 그 밖의 불필요한 물질을 버리고 새로운 물질을 보급하면서 생활한다. 즉 신진대사를 되풀이하는 것이 생활이며 이것이 바로 생명의 특징이다.
암세포도 점점 증식하면서 노폐물을 내놓는다. 증식하는 속도는 성장기의 이상이므로 신진대사가 대단히 빠르다. 숙주의 영양물을 갈수록 더 많이 가로채고 그만큼 가스도 많이 내보낸다. 영양을 취할 때도 남의 생각 같은 것은 내 알 바 아니라는 식이지만, 가스를 내보낼 때 역시 그 양상은 마찬가지이다. 더구나 암의 대사물질은 맹독을 가지고 있다.




체험·치험 사례

고다 박사의
단식 체험기

쪾7월 21일
단식 5일째 오늘은 열이 조금 내린 것 같으나 아직 냉온욕 중의 한기가 와서 별로 좋은 기분이 아니다.
구역질은 여전히 계속되고 우하복부의 아픔도 어제와 같은 정도로 하루종일 누워서 촉수요법을 하고 있다(자기 양손을 우하복부의 아픈 곳에 가볍게 얹고 있는 것). 배속 아픈 곳에서 뜨끔 뜨끔 손에 반응이 있어 한때 통증이 있었으나 뭐라 할 수 없는 좋은 기분이 된다.
전에 소화 25년에 담낭염을 앓아 많이 아팠을 때 이 촉수요법을 배워 언제나 우계륵부(右悸肋部)에 손을 대고 있었으나 그때는 2년 정도 사이에 모사셔츠가 닳아 뚫어질 정도로 하였으므로 이 정도 촉수는 기분이 좋은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도 또 매일매일 손을 대고 있으나 덕분으로 병이 있는 곳이 문자 그대로 손에 잡힐듯이 민감하게 알게 되는 것은 의사로서 환자의 진료에는 참으로 유용하다.
쪾7월 22일
단식 6일째 하루종일 누워만 있다가 우하복부의 통증이 오늘은 한층 더 한 것 같다. 단식에 의한 반응이라고 생각한다. 증상즉요법의 견지에서 우리들 생각으로는 단식 중에 반응이 강하게 나타나주면 후의 대가가 그만큼 크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증상을 그와 같이 맹목적으로 좋게만 해석하고 있으면 큰 함정이 있어 돌이킬 수 없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으므로 그것은 단식중의 전신상태를 잘 관찰하고서 바른 판단을 해야 한다. 지금 심해진 통증이나 구역질이 병은 아니므로 배아픈 것은 걱정할 것 없다. 자그마한 증상의 기복에 일희일우 하지 말자. 증상즉요법에 투철하여 이 복통을 기쁘게 받아들이자. 이제껏 많은 사람들에게 이 말을 소리쳐 온 내가 아닌가.
여기서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의 견지에서 이번의 병을 기쁘게 다소곳이 받아들일 일이다. 그리고 이와같이 된 것은 역시 평소의 나의 생활이나 마음씀이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벗어나 있었음이니 이 기회에 조용히 반성하고 이제부터는 바른 자연의 법칙에 맞는 생활을 하겠다고 다짐하는 것이다. 바른 생활을 하는 자에게 병은 없다. 이런 병을 앓는 나에게는 아직 많은 잘못된 생활의 연속이었었다.
지금 여기서 솔직하게 반성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이렇게 결점 투성이의 나에게도 대자연의 신비함은 잘살게 해주고자 고마운 매를 들어주었다. 감사하며 지금의 험한 길을 가게 해주기 바라자. 지금부터 증상의 기복에 일체 얽매이지 말고 전적으로 대자연의 힘에 맡겨버리자.
「금후는 어떻게 바른 길을 갈 것인가」하고 오직 나로서는 최선이라고 믿고 있는 요법을 실행하고 있는 것이다. 하늘이 나에게 아직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임무가 있다고 생각하면 살려줄 것이고 이제 이 세상에서 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면 끝낼 것이다. 그때는 기쁘게 그 숙명에 따르면 될 것이 아닌가. 이와같이 되풀이 하면서 나 스스로에게 타이르면서 꾸벅꾸벅 졸고 있다.
단식을 시작하면 많은 사람은 불면증에 시달린다. 「어제밤도 잠이 안와 고생했습니다」라고 호소한다. 그런데 지난 1주간 낮도 밤도 참으로 잘잤다. 스스로도 이상하다고 할만큼 잘잔다. 이제껏 과로했나 보다 하고 깊히 생각케 한다. 그러나 단식중 이렇게 잘 잘 수 있는 것은 참 좋은 증후이다. 이것으로 쌓였던 피로가 풀리는 것이다. 모든 것은 좋은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 고마운 일이다.(본회 고문·의학박사 고다의원장)
[이 게시물은 자연건강님에 의해 2013-06-19 16:04:26 2007년 09월호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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