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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6면-누구나 피할 수 없는 마지막여정

  • 자연건강
  • 2009-12-21 15:5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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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피할 수 없는
노후 인생의 마지막 긴 여정

한 창 수

경로효친사상이 사회 생활의 미덕
오늘날 노인을 공경하고 예우하는 경로효친사상이 땅에 떨어져 가고 있다. 경시풍조가 만연되고 있는 것이다.
이 나라 이 민족이 이만큼 잘살게 만든 역사적 현실과 과거성과에 대해서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누가 오늘의 한국을 만들었는가? 마치 노인이 되면 쓸모없는 폐기물처럼 인식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 인간이 사고가 없는 동물과 다른 점은 만물지영장으로 윤리와 도덕이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갈등도 질서의 파괴도 바로 경로효친 사상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한 노인이 재활용 상자를 잔뜩 실은 손수레를 이끌고 길을 건너고 있는데 한 택시기사가 거친 소리로 무어라 나무라며 지나간다.
문득 송강 정철의 훈민가(訓民歌) 시조 한 수가 생각난다.
- 반백 자불부대(斑白者不負戴)
- 이고진 뎌 늘근이 짐프러 나주오.
- 짐을 머리에 이고 등에 진 노인장이여
- 그 짐을 풀어 내게주오.
- 나 졈엇니 돌히라 무거울까.
- 나는 젊었으니 돌이라 한들 무거울까.
- 늘거도 설워라커든 지믈조차 지실까.
- 늙은 것도 서럽다 하는데 짐까지 지시겠는가.
따뜻한 인간애와 경로사상을 함께 느끼며 오늘에 사는 우리 세대가 노인에 대한 시각과 관심이 어떠한지 생각해 본다.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러한 사례는 얼마든지 접하고 볼 수가 있다. 그보다 더 험한 경우도 많다. 짐짝처럼 취급당한 경우나 무안을 당한 경우 전철 경로석 자리를 가지고 젊은이가 노인을 홀대하고 싸운 경우 등 사례는 많다.
노인(老人)은 누구인가? 우리의 나의 부모요, 할아버지 할머니이며 또 이웃에서 혹은 거리에서 만나는 나이들어 늙은 어르신이다. 일생을 통하여 한 가정을 일으키고 후세들과 자식들의 교육을 위해 근검절약 자기 희생을 아끼지 않은 분이다.
한편으로는 고유한 우리의 전통문화와 관습을 지켜오고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젊음을 바쳐 온 이제 기억과 체력이 쇄진된 사람들이다. 그리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 한평생 몸바쳐 오늘날 세계 10대 수출 한국을 만든 역군들이고 또한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노화 앞에서 그저 무력하게 소외받고 살아가는 사람이 노인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오랜 세월의 풍상(風霜)으로 이루어진 값진 교훈을 유산(遺産)으로 남겨주는 사람들이 또한 노인이다.
경험에서 오는 삶의 지혜 수용하고 비워내는 가슴의 깊이와 폭 어느 것도 내 뜻이 아니고 내것이 아닌 줄 알기에 어린이처럼 작은 것에 만족하고 감사할 줄 아는 교훈을 알려주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공자의 논어 말씀에서는 삶을 돌아보며 일흔까지만 말했다. 일흔이 되니 마음이 가는데로 하여도 사리에 어긋나지 않는다(從心所慾不踰知)라고 말하였으니 그래서 일흔살을 종심이라고 부른다. 그만큼 노인은 경륜을 통해 사회 이치를 깨달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속설(俗說)에 늙으면 어린 아이가 된다는 말 또한 어린아이처럼 단순하고 순진하여 변화되어 가는 자연의 섭리를 말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인간은 태어나서 죽기까지 어떤 사람도 젊음을 거치지 않고 노년을 맞을 수 없고 어떤 청춘도 늙지 않을 수 없다. 모두가 가야하는 그 길을 따라가며 저만큼 앞서 가는 노년의 모습에서 내일의 내 모습을 본다면 관심과 생각이 달라지지 않을까? 내일 미래를 짊어지고 갈 갈 젊은이들에게 부탁한다.
노인들에게 따뜻한 이웃으로 정겹게 내미는 손으로 부족하지만 친절함으로 다정한 말벗으로 다가와 준다면 세상은 보다 아름다워 질 것이고 따뜻해질 것이다.
이제 노인들에게 말씀드리고 싶다. 인생은 세월의 강처럼 살아야 한다고 문득 다우베드라이스마의 나이들수록 왜 시간은 빨리 흐르는가가 생각난다.
인생의 초입에 서 있는 사람은 강물보다 빠른 속도로 강뚝을 달릴 수 있다. 중년에 이르면 속도가 조금 느려지기는 하지만 아직 강물과 보조를 맞출 수 있다. 그러나 노년에 이르러 몸이 지쳐버리면 강물의 속도보다 뒤쳐지기 시작한다. 나이들수록 강물 속도보다 뒤쳐진다 해서 너무 서글퍼 하지 마라.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나이들어 방향이 뒤틀리면 되돌려 놓을 시간이 없다. 나이들수록 시간은 금이다. 아직 흘러가지 않은 남은 세월의 강물을 더욱 알차게 뜨겁게 아름답게 흘려보내야 한다.
이제 제2의 인생(Second Life)의 필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우리 사회도 제2의 인생에 좀더 진지하게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실버 취업박람회 등 일자리 창출에 정부의 능력이 더욱 아쉬운 실정이다.
따라서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노후 인생의 마지막 긴 여정에서 노후 생활을 알차게 보람되게 즐겁게 여가를 선용하면서 살아가는 지혜를 스스로 찾는 것이 행복을 지키는 길이 될 것이다.(담양자연생활교육관 회장)




나의 투병기

운명이란 무엇인가

신 미 희(34세)

「운명」―이것을 「명을 옮긴다」고 읽을 것인지 「명이 옮겨져간다」고 읽을 것인지 이것이 곧 인생의 갈림길이라고 생각한다.
발병 후의 경과
내가 난치병이라고 진단받은 것은 염원하던 대학원에 합격하고 찬란한 빛속에 그 첫걸음을 떼어놓으려던 바로 그때였다.
지난 1991년 가을부터 바른손 집게손가락의 관절에 통증을 느끼게 되고 동리 접골원에서 찜질과 적외선 치료를 받고 있었다. 당시는 교육실습이나 박물관 실습 졸업 논문의 집필 등으로 손을 혹사한 바도 있고 건초염정도로 밖에 생각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도 혈액, 뼈, 관절 등에 이상이 없었으므로 역시 혹사나 과로해서 그런 것이라는 진단이었다. 다음해 1992년 3월에 바른쪽 발목도 붓고 아파와서 이건 단순히 건초염은 아닌게 아닌가 하는 강한 의구심이 들었다. 그리고 점점 퍼져가는 통증과 불안을 참으면서 1년간에 걸친 병원돌기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증상으로는 체내 관절이 붓고 아프기는 하였으나 혈액검사에서는 원인이 될 증후가 없어 병명조차 알 수 없는데 이때 이미 나는 발을 끌게 되고 한번 앉으면 서기 위해서 심히 안간힘을 써야 했다.
이와 같이 심한 증상으로 고통받고 있는데도 의사는 수치만 보고 「병이라고는 할 수 없고 교원병이 아닌가」 하는 정도였다. 도쿄의 대학병원도 1년이나 다녔으나 혈액검사와 진통제 투여가 전부였다.
교원병―어떤 특징적인 염증변화가 혈관·결합조직에서 볼 수 있는 질환을 포괄적으로 말한다. 전신성 에리테마토-데스나 만성관절류마치, 다발성경화증 등이 포함된다.
그때로부터 9년이 지난 지금도 현대의학에 있어서 교원병의 인식은 특정질환으로 인정되는 난치병으로 원인조차 모르고 뚜렷한 치료법이 없으므로 대증요법을 할 뿐이다.
절 망
당시의 나는 현대의학에 한계를 느껴 망연자실하고 있었다. 「왜 이 지경이… 어떻게 해서 고칠 수 없을까」 시들어가는 몸을 추스리며 필사의 힘으로 침구, 정체, 건강식품, 마지막으로 신사, 분각까지 어떻든 좋다는 것은 무엇이나 해보았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이렇다 할 효과는 없었고 몸은 날이 갈수록 움직여지지 않았다. 기대하고 허탈에 떨어지는 생활 「또 안되었다」하며 뿌리쳐질 때마다 어둠으로 밀어붙이는 것이었다.
그간 내 몸은 약을 놓을 수 없게 되었다. 이 체험은 지금 생각해도 끔찍하다. 약을 먹으면 악몽과 같은 아픔에서 해방된다. 「먹음」이란 간단한 행위로 병을 잊어버림으로 이렇게 편할 수가 없다.
그러나 이것은 잠시 잠깐이고 약기가 떨어지면 바로 아픔이 엄습한다. 그러면 한발을 내딛는 것조차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로 온 힘을 짜내야 했다. 악마와 같은 유혹으로 단꿈에 빠뜨리고 건전지와 같이 나를 움직이게 하는 약. 그러면서 근본적 치료와는 무관하게 갈수록 약효도 점점 짧아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런 약물을 오래 계속하는 것은 결코 몸에 좋을 리가 없다. 부작용에 대하여도 걱정되어 되도록 자제하에 덜 먹고자 하나 마음은 점점 약에 의존해 갔다. 항상 약을 갖지 않으면 불안한 상태로까지 되어 갔던 것이다. 안먹더라도 여하간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안심되는 「아아 이것이 중독이라는 것인가」하고 생각이 되었다. 병원에서는 내마음 같은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약의 처방량이나 종류가 늘어가기만 했다.



냉온욕과 태자 싯달타

냉온욕은 그 역사가 깊고, 『과거현재 인과경』중 석존의 탄생 상황을 기술한 곳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난타용왕(웅룡), 우파난타용왕(자룡), 허공중에서 청청수의 1은 온(溫) 1은 냉을 토하여 태자의 몸을 씻으니, 몸은 황금색으로 32상(相)을 갖추고, 대광명을 발하여 골고루 삼천대천세계를 비추다.
이 얼마나 장관인가. 이리하여 석가는 건강하게 자라고 처음으로 인세(人世)의 혼미를 풀려고 발분하여 처자를 두고 천성을 나가 사색에 잠기기를 6개년, 보리수 아래에서 드디어 대각을 성취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는 아득한 3천년 전이어서, 과학의 발달이 없었기 때문에 형이상(形而上)의 문제뿐이지, 이것을 깊이 합리적으로 형이하(形而下)까지 파고들어서, 형이상과 형이하를 연결하는 고삐를 발견할 수 없었던 것은, 참으로 부득이한 사정이었다.
그러나 정신적인 문제에 관해서는 석가 이후에 아직 여기에 첨가할 아무 것도 발견된 것이 없었다. 지금은 문예 부흥 이래 300여년, 물질문명은 현란한 발달을 이룩했지만, 이것을 뒷받침할 정신문명은 이와 연결할 고삐를 잃고 있었기 때문에, 문명이 발달하면 할수록 인류는 고생한다는 기현상을 나타내어 온 것이다.
그러나 이 연결의 고삐는 발견되었다. 이 반사에 의하여 형이상과 형이하, 유물(唯物)과 유심(唯心), 이(理)와 기(氣), 극좌와 극우, 산(酸)과 알칼리, 교감신경과 미주신경 등등이 모두 대립 상극을 벗어나 각각 100% 작용함으로써 공(空), 허(虛), 영(零), 중(中), 그리고 대화(大和)인 일자(一者)를 성취하는 사실을 이론적으로 증명한 사람은 니시건강법 창안자이다.
이와 같이 하여, 여기에 인류는 참된 건강을, 그리고 세계는 참된 평화를 구현할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즉, 그 중대임무를 담당하는 것이 니시의학과 자연건강법, 이것을 뒷받침하는 니시철학, 즉 니시학의 광대한 체계인 것이다.
[이 게시물은 자연건강님에 의해 2013-06-19 16:04:26 2007년 09월호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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