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2면-자연의학 개설
- 자연건강
- 2009-12-21 15:5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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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학 개설
- NISHI의학의 원리와 응용-
서 승 조
철학과 생물학
철학과 과학은 서로 깊은 관계를 갖고서, 철학이 과학적 사실 위에 입각하지 않을 때 그것은 당연히 쇠미하고 몰락하지 않으면 안되는 반면, 과학도 또한 바른 철학의 도움없이는 그 연구를 촉진, 발전시킬 수 없게 되어 있다는 것을 필자는 앞절에서 상세하게 설명했다.
철학과 과학은 원래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학문의 초기에는 같은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그것들은 분리된 현재에도 여전히, 아니 그 만큼 보다 더 높은 입장에서 결불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이때 비로소 우리는 자연과 인간의 완전한 이해에 한걸음 더 가까이 간다고 하는 희망을 갖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음에 철학과 생물학의 관련에 대해서 특별히 고찰해 보도록 하자.
모든 생물의 근원인 아메바가 처음 이 지구상에 나타난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연수계산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이설이 있지만, 그 중 최소한의 수치로 봐도 실로 7000만년, 인간의 형태를 갖추게 될 때부터 세어도 약 100만년을 경과했다고 한다.
이 오랜 동안 생물은 진화론이 가르친 바에 따라 간단한 것으로부터 복잡한 것으로 점차 변화하고 발달하고, 사라지고 다시 나면서 이제 수많은 생물이 번식하고 전 지구를 덮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현재 서식하고 있는 생물 및 화석이 되어 남아있거나 일찌기 과거에 존재했다고 생각되는 생물의 종류는 175만종에 달한다. 그 중 식물이 50만종, 곤충이 100만종 나머지 25만 종이 척추동물이라고 한다.
이들 많은 종류의 생물은 외견상 특별히 다른 형태를 갖는 것이 보통이지만, 그러나 생물은 외계와 서로 물질의 교환을 통해서 생장하고, 운동하고, 외부로부터의 자극에 반응하며, 다음 대의 생물을 만들고서 자신은 노쇠하여 사멸한다고 하는 점에서 어느 것이나 공통된 성질을 갖고 있다. 이것은 생물이 ‘살아 있다’고 하는 것이며, 이러한 현상을 ‘생명현상’이라고 한다. 특히 인간은 사회에서 생활하고 일정한 생산에 종사하며, 또한 소비하고, 이지, 감정, 의지를 가지며 도덕이나 예술이나 종교를 창조하고 또 학문을 연구한다. 살아있기 때문에 비로소 그것이 가능한 것이다. 생명이 없다면 그것은 이미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생명’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생명’과 ‘생명현상’은 명백히 서로 다르다. 우리는 생명현상을 보고는 있지만 생명이라고 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는 단언할 수 없다.
생물학이란 생명이라고 하는, 생명을 갖는 특별한 사물을 연구하는 자연과학이기 때문에 학자가 갖는 생명관이 그 연구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따라서 이 영역에서 ‘생명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가 옛날부터 논해져 왔던 것은 극히 당연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문제가 철학자들 간에 사색되고, 탐구되고, 여러가지로 논해져 왔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생물과 무생물은 어떻게 다른 것일까? 생명이란 그것이 아무리 신비하게 보이더라도 그것은 현재 우리의 과학적 지식이 불충분, 불완전하기 때문이며, 결국 언젠가는 물리화학적 법칙에 의해서 설명할 수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생물과 무생물 사이에는 분명한 경계선이 있어서 생물의 특수한 현상, 예를 들면 생명이라든가, 발생이라든가 하는 것은 도저히 물리학적 법칙에 의해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물리적 힘, 화학적 힘 이외의 ‘생명력’ 또는 ‘영기’라고 하는 생체 특이의 초물질적인 힘이 존재하고 작용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일까?
이들 두 사상의 대립은 생명의 문제에 관한 가장 기본적인 대립이었다. 그 역사도 길다. 전자의 생각은 ‘생명 기계론’이라고 하는 것이며, 후자는 ‘생기론(활력)’이라고 하는 것으로, 양자의 투쟁, 변천의 역사에는 깊은 흥미를 자아내는 바가 있다.
‘모든 현상은 원자의 이합집산에 의해 일어난다’고 생각했던 데모크리토스 등 고대 그리이스의 원자론자들이 또하 기계론자였었다는 것을 쉽게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반해 ‘생체는 영혼과 육체라는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고, 영혼이 생체내에 있으면 생체는 생명을 갖게 된다’고 생각했던 고대의 사상을 하나의 철학으로 체계화된 아이스토텔레스는 지금 보면 일종의 생기론자였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자연이 그 내부의 원리에 의해 항시 일정한 궁극 목표를 완성 실현하는 방법으로 향해 나아간다는 것을 설명하고 이 원리를 ‘완성원리’라고 불렀다.
NISHI의학 자연요법
보건치병의 길잡이
NISHI의학은 병에 걸리지 않게 하는 의학으로서 병을 고치는 것이 주된 목적은 아니다. 그러나 실제 문제로서 건강할 때는 건강법에 관심이 없다가도 병에 걸려서 약물이나 주사도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비로소 니시의학의 문을 두드리게 된다. 그래서 본인은 의사의 입장에서 건강법으로보다는 치병법을 중심으로 니시의학을 해설해 보려고 한다.
-서의학연구소장 의학박사 와타나베 쇼-
암
피하출혈을 일으킨다
제2의 단계는 피하출혈이다. 이 단계의 예외는 역시 백혈병이다. 그러나 출혈에 의해서 일어나는 다음 단계, 빈혈이 되면 예외일 수는 없다.
이 무렵에도 거의 통증은 찾아볼 수 없다(단 골수암은 성질상 통증이 먼저 온다). 출혈의 단계에서 발견되는 암은 상당수가 있다. 전형적인 것은 자궁암이다. 자궁은 출산 때에는 평소의 500배나 커지기 때문에 통증을 느끼는 부위나 그 밖의 신경조직이 이곳저곳으로 퍼져 있다. 또 평소의 상태에서는 대단히 두꺼운 근육층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조그만 응어리가 생겼어도 이상한 느낌을 느낄 수가 없고 제2단계, 즉 출혈로써 발견이 된다.
암으로 출혈을 하는 것은 어느 정도 커진 응어리(암의 종양)가 짓물러서 혈관이 파열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암이 짓무르게 되면 반드시 출혈하는 것은 아니다. 유방암이나 그 밖의 악질적인 암은 출혈 전에 짓무른 암세포가 전이되는 수도 있다(따라서 정확히는, 응어리→응어리가 짓무른다→출혈한다와 같은 과정이다).
위암이나 장암도 출혈로 발견되는 일이 많다. 특히 항문에 가까운 직장암은 90%정도가 출혈로써 발견이 된다. 항문에서 멀어짐에 따라서 육안으로는 출혈을 확인하기 어렵게 된다. 잠재성 출혈이라고 해서 현미경으로 보지 않으면 모르는 출혈도 있다.
폐암도 역시 늦게야 출혈(혈담)로 알게 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출혈의 색깔은 암이 생긴 장소에 따라서 다르다. 혈액이므로 본래는 모두 선명한 붉은 색이어야겠지만, 몸 깊숙한 곳에 생긴 암인 경우는 갈색에 가깝고 폐암같이 기관지, 인후를 거쳐서 바로 몸 밖으로 나오는 피는 딸기젤리처럼 선명한 붉은 색을 띠고 있다.
또 항문까지 고작 10cm가 안 되는 곳에 생기는 직장암의 출혈도 비교적 선명한 붉은색을 띠고 있다. 물론 자궁의 경우도 질에서 바로 밖으로 나오므로 선명하다. 단 자궁암의 경우는 생리적인 출혈, 즉 월경과 착각하는 수가 적지 않다.
“다 늦게 부끄러워서.”라고 하면서, 그래도 너무 오랫동안 월경이 있어 의사를 찾아갔더니 자궁암이라는 말을 듣고 놀라는 부인이 더러 있다. 무지만큼 무서운 것은 없다.
빈혈을 일으킨다
출혈이 계속되면 빈혈이 생긴다. 외부의 상처처럼 한꺼번에 출혈을 하면 다량으로 보이지만, 수도꼭지에서 물이 새듯이 조금씩 나오는 출혈이 오히려 무서운 것이다. 아무리 소량이라도 반드시 빈혈을 일으킨다.
몸 깊숙한 곳에서 나오는 출혈이라도 몸 밖으로 나오는 성질을 가진 기관의 암은 그래도 낫다. 항문이나 구강에 이어져 있지 않은 기관의 출혈은 발견할 수가 없기 때문에 시기를 놓치기 쉽다.
체험·치험 사례
고다 박사의
단식 체험기
금번 뜻밖에도 장기 단식을 하게 되어 여러가지 유익한 체험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을 진심으로 행복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일생의 추억이 되도록 체험을 일기 속에서 모아 보기로 했다.
단식에 관심을 갖고 스스로 그속에 뛰어들든지 임 20여년이 되나 그간 몇 십번이나 단식을 해왔었다. 그러나 이번은 이제까지 제일 긴 23일간의 단식이고 더욱이 맹장염 같은 증상 속에서의 절박한 상태로 시작하였으므로 진지의 극이었다.
이것이 행운이었는지 단식중은 물론 단식후의 식양생도 실로 엄격하게 지켜낼 수가 있어서 그 결과 예상외의 호성적을 거둘 수가 있었으므로 인간의 운명이라는 것은 참으로 불가사의 한 것이다. 이하 일기의 날짜를 따라 써보자.
7월 15일
이달 초부터 때때로 바른쪽 하복부에 가벼운 통증을 느끼게 되었다. 요새 2,3개월간 과로나 과식이 탈인 것은 잘 알고 있다.
「자칫하면 이것은 맹장염(충수염을 말함)이 아닐까? 아니 5년 전에 복막염을 앓았을 때도 같은 통증을 느꼈는데 복막염의 재발인가? 어떻든 빨리 고쳐 놓지 않으면 어려운 꼴이 되겠다」 이런 생각을 하며 매일 매일 일에 쫓기고 10여일이 지나가 버렸다.
「지금 단식을 하면 간단히 고칠텐데 19일에는 유해식품연구회의 결성대회가 있으니 그것은 꼭 나가야 되니 19일 후부터 단식하도록 하자.」 이렇게 미적미적 단식을 미뤄왔으나 오늘은 우하복부의 통증이 한층 심해진 것 같다. 과연 19일까지 늦출 수 있을까. 빨리 어떻게 해야되겠다고 마음이 초조하다.
7월 16일
어제밤 내객이 있었다. 나는 피곤하여 빨리 자고 싶은데 심야까지 떠들어야 했고 수면부족이 겹쳐 오늘의 복부의 상태가 한층 나쁘다. 빨리 어떻게 해야 되겠다고 생각하나 또 일면 「단식만 하면 낫는다」는 안이한 생각에 지배되고 만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라고 하니 만심은 참으로 대적으로 알라. 단식의 큰 효과를 아는 자가 흔히 이것으로 목숨을 잃는 것이다.(본회 고문·의학박사 고다의원장)
[이 게시물은 자연건강님에 의해 2013-06-19 16:03:52 2007년 07월호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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