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5면-아토피성피부염 극복
- 자연건강
- 2009-12-21 15:4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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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험사례
아토피성 피부염의 극복
S.J(23세)
숙변이 배설되어 장벽이 깨끗이 치유된 것만으로도 고다선생을 알게 된 것이 너무나 감사할 뿐입니다.
입원까지의 경과와 식생활
아토피를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유아기경부터였다고 합니다. 2, 3살 때는 손바닥이 조금 트는 정도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되어서는 관절안쪽이 꺼칠꺼칠하게 건조된 상태였지만 미약했었는데 습진, 가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피부과에 다니기 시작해, 약도 조금씩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후 동경에 있는 성인병 전문의를 소개받아 본격적으로 아토피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아토피 치료법이란 Ca 이온을 다량 섭취함으로써 체질개선을 도모하는 것으로 식사도 자연식품에 한정되었습니다. 이 방법을 3년 정도 계속했지만,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여 도중에 그만두었습니다. 스테로이드제도 그만 두려 했지만, 가벼운 습진이나 거칠어진 얼굴 피부에는 조금씩 발랐습니다.
본격적으로 아토피염이 시작된 것은 고등학교에 들어서면서부터입니다. 자연식은 계속했지만, 활동범위가 점차로 넓어지면서 식사도 엉망이 되어버렸고, 단음식이나 패스트푸드까지 먹곤 했습니다. 당연히 증상이 악화되어, 수면중에 무의식적으로 긁게 되었으며, 시트에 혈액이 묻어나고, 그 상처가 공기와 접촉할 때는 아프기까지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테로이드제를 하루라도 거를 수가 없었고, 2주동안에 한 병이나 사용한 적도 있었습니다. 얼굴 쪽의 습진은 없어졌지만, 꺼칠꺼칠한 상태를 줄여 볼 생각으로 스테로이드제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조금씩 발랐습니다. 그러던 고등학교 2학년 어느날 밤, 얼굴에 심한 가려움증이 있더니 순식간에 눈이 떠지지 않을 정도로 벌겋게 부어올라, 마치 개미집을 쑤셔 놓은 것처럼 되어버렸습니다. 바로 스테로이드제의 부작용이었던 것입니다.
그 후로도 얼굴의 붉은기는 가시지 않고, 늘 술취한 듯한 얼굴로 학교에 다녔습니다. 얼굴에 스테로이드제 바르는 것은 그만두었지만, 몸에는 여전히 바르고 있었습니다. 정신적으로는 우울증에 빠져 있었고,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이 싫었으며, 장래를 비관하여 거의 매일을 울다시피 했습니다.
그렇게 되자 식사도 단음식이나 육류를 피하게 되고, Ca을 섭취하여 알칼리성 체질로 바꿔보려고, 많은 양의 우유를 매일 다 마셨고, 생선류나 비타민 A가 풍부하다는 당근 등을 반찬으로 먹었으며 비타민제까지 복용했습니다.
때마침 한방약과 침술치료를 권유받아, 고등학교 졸업때가지 계속했습니다. 이것은 체질에 맞았던지, 가려움이나 얼굴의 거친 상태가 남기는 했으나, 얼굴의 붉은기가 없어졌습니다. 조금이나마 정신적으로는 해방된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폭음폭식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던 것도 바로 이 시기였습니다. 가장 애로사항이었던 얼굴의 부기가 가라앉자, 교우관계가 다시 넓어지면서, 이전에 아팠던 경험도 완전히 잊어버리고, 습진 정도는 약으로 간단히 가리면서, 외식이나 술자리에 자주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2년도 채 지나지 않아, 얼굴에서는 고름이 나오고, 지금까지 멀정했던 등이 하룻밤사이에 욕조에 들어갈 수 없을만큼 가렵고 꺼칠꺼칠해졌으며, 밤에는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고다요법과 입원생활
바로 이 시기에 고다요법을 소개받았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최악의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어, 소식보다는 단식이 빠를 것 같아서 감식(減食)이나 회복식도 하지 않고 바로 5일간의 본단식과 수차례의 1일 단식을 반복했습니다.
그러자 2개월 후, 등의 꺼칠꺼칠함도 없어졌고, 가려움도 없어졌고, 얼굴에는 약간의 붉은기가 남기는 했지만, 그런대로 깨끗하게 나았습니다. 지금까지는 어떤 약을 바르고 먹어야만 치유된다고 생각했지만, 전혀 다른 치료법으로 효과가 있었기 때문에 단식요법의 놀라움과 단식요법이라면 나을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평성(平成)4년 6월 고다 선생님의 진찰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 “말끔히 나을 수 있습니다”라는 한마디에 뭔가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듯 했습니다.
생각하는 갈대
감잎차와 더불어 50년
이 태 오(88세)
「이선생 감잎차 한 상자 빌려 주세요」
거의 매일같이 진료소의 선생님이 감잎차를 의뢰해 온다. 천삼백명의 종업원이 있는 진료소 소장으로부터 오늘도 의뢰전화가 있었다. 22, 3년 전에 동진료소에 근무하던 간호사가 치경(齒莖)의 출혈이 심해져서 본인으로부터 상담이 있었으므로 나는 「속은 셈치고 이것을 차로서 마셔 보세요」하며 건네준 일이 있다. 3일쯤 시킨대로 마신 결과 4일째에 딱 출혈이 멈췄다는 보고가 있었다. 그 이후 여기 소장은 감잎차 애용자가 된 것이었다.
내가 니시식을 실행한 것은 1933년부터이다. 니시선생은 병의 근원을 비타민C 부족이 큰 원인의 하나이다. 인간은 비타민C의 만성결핍증이다. 체내에 비타민C를 자기가 생성시킬 수 없는 동물은 인간과 원숭이와 몰못이라고 자주 말해 왔다. 니시선생께서 감잎으로 차를 만드는 것을 발표하고 출판된 책에 의해 감잎에서 차만드는 법을 배웠다. 감잎차를 열심히 4, 5년쯤 만들어서 우리 집에서 애용하고 있을 때 뜻밖에도 니시건강회에서 염원의 감잎차가 판매되었다. 이때 이렇게 편리하게 구할 수 있어 크게 기뻐하며 그 이후 계속 50년이 된다.
우리집 일족 십수 명은 귀회의 감잎차를 애음하고 있다. 기타 니시식에 관계있는 분들이나 친척 친우에게 권하여 50년에 이르렀다. 나 자신은 회사의 내 전용이 상비되어 있고 보통차는 마시지 않고, 니시선생이 장려하신 쵸코렛색의 병을 책상 옆에 비치하고 1일 2팩을 마시고 있었다. 회의 등으로 본사에 출장할 때마다 또는 출장 때도 이 감잎차를 휴대하고 다녔다.
일전 치과에서 어금니를 한대 뽑았다. 80세 이상의 사람으로 20개 이상 남아있는 사람은 진기하다고 의사가 말했다.
우리들과 평소 교제하고 있는 분들 중에 감잎차의 애용자가 상당히 증가한다. 우리들 일가에 있어서 감잎차는 건강유지의 수호신 같은 존재가 되어 있다.
「80세로 20개 남은 것은 진기하다고 의사는 말하면서 어금니를 빼주었다.」
자연건강회 창립 37주년 기념
대강연회
일 시 : 2007년 5월 12일(토) 오후 1시~5시
장 소 : 미 정(추후 공고)
강 사 : 국,내외 초빙 강사
내 용 : 자연의학의 이론과 실제, 임상담
문 의 : 한국자연건강회 사무국
(02) 2205-0661, 2205-06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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