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4면-한천단식이야기
- 자연건강
- 2009-12-21 15:3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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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의 한천단식 이야기
이 영 규
단식은 체질을 개선하여 건강을 증진하고 난치병을 근치(根治) 할 수 있는 대단히 뛰어난 자연건강법이다. 그러나 생수만 마시면서 일체의 음식을 금하는 단식요법은 극기를 요하는 방법이기 때문에 꺼리게 되고 실천과정에서 힘들어하는게 보통이다.
하지만 한천단식을 비롯하여 벌꿀이나 효소, 과즙, 녹즙, 장국단식 등은 물단식에 버금가는 효능을 내면서도 비교적 수월하게 실천할 수 가 있다. 이 방법들 중 한천식 같은 것은 대개 양껏 먹어 창자를 채우기 때문에 단식 중에 가장 참기 힘든 공복감을 비교적 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건강회가 서울 용산구 원효로 4가에 처음 사무실을 개설한 1970년대말 경이었다. 당시는 잘살아 보자는 새마을운동이 전국적으로 전개되어 농촌에서는 초가지붕을 헐고 스레트로 갈아치우는 등 그야말로 활기에 차 있었던 때라고나 할까. 모두가 바삐 돌아가던 때였다.
그때 우리 주위에도 벌써 미식(美食)을 습관적으로 탐(貪)해 오던 일부 인사들이 왜 그런지 그 원인도 확실히 모른 채 당뇨병이라고 하는 사치병에 시달리게 되고 서울 등 대 도시의 큰 병원 입구 부근에는 당뇨식품점 간판이 나붙기 시작했었다. 그에 못지 않게 고혈압 환자들도 늘어나 중풍을 맞기 시작하는 등 여러 가지 질병이 발생하여 처음으로 들어보는 어른만 걸린다는 성인병(成人病)이란 단어가 막 유행하기 시작했을 때였다.
그때 우리 회에서는 무더운 8월 어느 날 회원 중 희망자를 모집하여 서울 근교 시골의 호암 국민학교 교실을 빌려 4박 5일간 밥을 굶고 한천식을 시작하게 되었다. 밥을 안 먹는 것이니 단식인 셈이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아직 교실바닥이 세멘트가 아닌 나무 바닥인 학교가 남아 있어서 퍽 다행이었다. 왜냐하면 자연건강법의 평상 대용으로 안성맞춤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경침도 휴대하거나 현장에서 구입하여 수련에 임하게 하였다.
이 행사는 그 전 해에 이어 두 번째였는데 참석한 회원이 예상 밖으로 많아 50여명이나 되어 모든 임원들(배은성 회장, 고 한학륜총무, 그리고 상무인 나)이 만족해 했다. 남녀 회원들에게 각각 한 개 교실, 본부용으로 또 하나를 배정하여 사용하였다. 당시로는 꽤 좋은 환경에서 실시된 것이다.
사전에 구입한 오리지널 바다풀 한천 한 주먹을 끓는 물에 집어 넣으니 삽시간에 봄눈 녹듯 사라져 버렸는데 거기에 니시의학 건강원리 실천보전에 있는 대로 액체 마그밀과 꿀을 적절하게 혼합하여 한참 더 끓였다.(1인 1식분 : 한천 7.5g을 2홉의 물로 삶아1.8홉쯤 되면 꿀 30g과 마그밀 3g을가미한다) 그 솥단지 채로 교실에 갖다 놓고 둘러 앉아 준비된 식기로 떠서 각자 양껏 먹게 했다. 맛은 없었지만 달짝지근하여 그런 대로 먹을 만 하다고들 하였다.
끓인 한천을 식혀 묵처럼 굳혀서 먹기도 하는 것인데 우리는 따뜻하고 걸죽한 국물채로 먹은 것이다. 혼합시킨 꿀은 5%정도만이 영양으로 흡수되지만 위나 창자를 채워줌으로써 공복감이 비교적 적어 배고품의 고통이 덜 했다.
그러나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것인 만큼 모두들 호기심으로 임했지만 한천에 완화제 마그밀이 들어 있는 데다 단식에 필수요법의 하나인 관장을 의무적으로 실시하게 되니 공복이 되므로 아무래도 배가 고프지 않을 수 없었다.
관장을 처음 해보는 여성 회원에게도 임원들이 시범을 보이면서 전원이 적극 동참하도록 하였다. 한꺼번에 화장실 이용자가 많아졌지만 다행이 초등학교였으므로 무난히 해결될 수가 있었다. 배설을 마친 회원들은 염소 똥처럼 구슬 같은 동그란 변을 봤다느니 하얀 구슬변이 숙변이냐는 둥 하루종일 시끌벅적 하다가 기운도 없이 하루 해가 저물어 가게 되었다. 저녁때가 되니 모두들 기진맥진하는 모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무더운 폭염 속에 잘 먹어도 무기력해 질 터인데 굶고 설사하고 또 꼭 해야 된다는 산책이며 운동을 한다며 땀을 흘리며 그 넓은 운동장을 몇 바퀴씩 도는 수련을 했기 때문이었다. 어지럽고 기운이 빠지니 드러누워 꼼짝도 못하고 날 잡아 잡수 하는 일부 회원들이 속출하게 되었다.
단식 중에 특히 빼놓을 수 없는 요법으로 풍욕을 오전 오후 각각 두 번 씩 네 번 실시했는데 창문을 활짝 열어 놓고 녹음 테이프에 따라 실시케 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니 여러 사람의 몸에서 나는 불쾌하고 야릇한 악취가 산들바람에 풍기어 코를 막아야 했다. 또 한가지 단식 중엔 냉온욕을 실시하도록 되어 있지만 당시 목욕시설이 없으니 할 수 없이 도봉산 기슭에서 흐르는 시원한 개울물에서 아침 목욕들을 했다. 그런데 그 당시 만성간장염 환자인 내가 눈 뭉클뭉클한 소변에서 약 냄새가, 또 수년 전 연탄가스 중독 경력의 다른 회원에게서는 소변에서 연탄 타는 냄새가 난다고 하여 모두들 단식 효과를 톡톡히 본다며 벌거 벗은 그 와중에 축하의 박수를 치는 것이었다. 필자는 불안한 가운데 효과가 있는 것인지 그저 그런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날 저녁부터 나에게 밤잠을 설쳐야하는 힘든 일이 닥쳐오고 있었다.
여성 회원들의 명현현상(瞑眩現狀) 때문이었다. 자연건강법으로 질병이 나으려면 좋아지는 과정에 호전반응이라고 하는 명현 현상이 일어나야 한다. 그 명현현상이 그날 저녁부터 본격적으로 엄습해 오는 것이었다.
그날 따라 열대야에 온 몸은 무력해지고 잠은 안 오는데 이 오밤 중에 여성들 방에서 이상무! 이상무! 하며 필자를 부르는 소리가 적막을 깨트린다. 단식 중에 혹시 사고가 발생하지나 않았나 하는 걱정을 하며 달려가 보니 예상대로 S대학교의 약대 학장인 K여사가 중태였다. 평소 위장질환으로 시달리다가 단식하면 나을 거라는 믿음으로 이번 수련에 참여하여 처음 단식을 하게 되었는데 어지러움과 극심한 구토 증세 등 명현 현상이 강렬하게 일어났던 것이었다. 토한 오물은 누렇고 혐오스럽기까지 하였다. 못 견디겠다면서 나 좀 살려달란다. 비상용으로 준비한 꿀을 따뜻한 물에 타서 마시게 하니 곧 진정이 되었다. 내가 그까짓 것도 못 참는 아줌마가 학장을 어떻게 하시냐고 농담을 하며 잠만 설쳤다고 불평을 하자 이상무 단식 끝나고 회복된 다음에 봅시다. 내 복수하고 말 터이니까 하며 화장실 갈 때 와 올 때가 다르다더니 전혀 딴 판이었다. 그러나 나도 이에 질세라 “나중에 보자는 사람 무섭지 않지요” 하며 그 방에서 나와 잠을 청하였다.
그러나 막 잠이 들락 말락 하는 잠시 후 또 K여사가 나를 부른다. 이번에는 꿀물대신 복부에 촉수를 하였더니 5분 여만에 진정이 되었는데 이상무의 손이 약손인가 속이 다 시원하단다. 그러나 그 소리를 들었는지 이번에는 속이 메스껍고 불편한 것을 그냥 저냥 잘 참고 있던 다른 여성들이 자기도 해 달라며 여기도 여기도하며 야단들이었다. 할 수 없이 3~4명을 더 진정시켜 주고는 새벽녘에 잠시 눈을 붙이게 되었다.
다음날 더 이상 못 참겠다는 K학장은 수련을 중지시키고 가족들을 불러서 귀가시키고 말았다.
그런데 당시는 집회를 하려면 당국의 사전허가를 받아야 했는데 그렇지 않은 관계로 주민들의 신고를 받은 경찰이 찾아와 해산케 하여 나머지 1박은 원효로 자연건강회 사무실로 철수하여 채워야 했었다. 그 날 오후 쌀미음 한 공기로 회복식 을 끝내고 모두들 귀가하게 되었다.
그래도 먹는 단식이니까 아주 수월할 것으로 방심했다가 모두들 혼줄이 난 다음 해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회의 단체수련은 한천단식 대신에 순 생야채식으로만 여름 수련을 실시하게 되었다.(명예회장)
[이 게시물은 자연건강님에 의해 2013-06-19 16:01:40 2006년 12월호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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