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4면-단식이 사람을 구한다
- 자연건강
- 2009-12-21 15:2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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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이 사람을 구한다
하버드 M 쉘튼
이 글은 사람을 건강과 행복으로 인도하는 경이로운, 새로운 길이다. 이론을 논하기에 앞서 사실을 가지고 증거한다.
글쓴이 하버드 M 쉘튼은 3만명 이상의 사람들에게 단식을 지도해 왔으며 단식에 대해서는 첫째가는 권위자이다. 그는 45년간 건강과 불건강의 여러가지 상태의 모든 연령의 사람들에 대해서, 길고 짧은 장단의 단식을 감독 지도했다.
쉘튼 박사는 36년 이상에 걸쳐 자기 병원을 경영하면서, 세계의 모든 여러 곳으로부터 찾아온 사람들의 단식을 지도하고 있다.
충분히 경험을 쌓은 사람이 단식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은 모든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복음이 된다. 그것은 쉘튼 박사가 모든 곳에서 지적인 국민을 새롭게 자극하기 시작하고 있는 중대한 테마에 대해서 권위를 가지고 보고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헌정드리는 글
건강 문제에 단식을 응용하는 것을 수년간 경험한 바에 의하여 생긴 단식과 위생적인 생활법은, 빼어난 건강으로 유도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건강을 추구하면서, 그것을 어디서 어떻게 해서 찾아내면 좋을 것인가를 모르고 일생 동안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이 글을 바친다.
프롤로그
현대의 고칼로리 문명에서는, 인류 역사에 역행하는 문제로써 단식처럼 오해 받고 있는 것은 없다. 단식이 달성하는 혹은 이루어낸 중요한 역할은, 대중들의 마음 속에 많은 곡해를 받거나, 혹은 진실이 아니라 선입견이 된 잘못된 과학적 정보에 의하여 또는 정보를 완전히 결여한 것에 기인하는, 기괴(奇怪)하고 근거가 없는 공포에 의하여 모양새를 일그러뜨리고 있다.
이 글의 목적은 건강법 지도자로서 단식을 지도하기 45년 이상에 이르는 내 자신의 경험, 연구 및 관찰에 근거해서, 건강을 유지 증진하고, 통증을 제거하며 체중을 줄여서 조정하고 생명을 연장하는데, 단식이 이루어내는 진정한 역할에 촛점을 맞추는 일이다.
이 역할은 치료로서가 아니고―단식 자체는 치료는 아니다―다른 어떠한 방법도 미치지 못하는 속도로, 신체 자신의 자원을 접수하고 치유시키며, 체중을 줄이는 일을 수단으로 해서 상세하게 설명하고 논의될 것이다.
이 글의 목적의 하나는 신문 잡지에 체중 문제에 대해서 쓴 사람들의 직장을 무서운 기세로 휩쓴 석권(席捲)한 단식에 관한 질문에 답하는 것이다. 과식과 체중 과다는 미국이나 유럽 여러 나라에서 중요한 건강문제로 되었기 때문에, 안전하게 체중을 줄이는 방법을 알려 주기 바란다는 질문은 근대의 그칠줄 모르는 끝없는 광경이다.
동시에 자연요양을 믿는 사람들에 의해서 부활은 거의 150년 이상에 걸쳐서 발전해 온 건강법 지도자의 이론과 발견에 깊은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다.
의학 관계자는 이들 모든 이론과 강력하게 투쟁했던 일은 스스로 자명한 일이다. 최근 수십년의 진보의 대다수는 견고하게 방어한 의학적 의견에 의한 격렬한 도발 행위와 위협을 받은 후에 겨우 달성되었다.
식(食)과 주(住)의 습관을 합리화하는데 조금씩 진보가 보이게 되었다. 그러나 단식은 건강의 문제 뿐만 아니라 종교상의 의식에서도 수세기나 거슬러 올라가 있다.
근년이 되어서 단식에 크게 공헌한 연구자는 헨리 S 타너 박사, 실붸스타 그래함, 로버트 월터 박사, 죤 M 칠덴 박사 및 죠지 S 웨거 박사이다.
단식 공헌자는 지금 열거한 사람들 외에도 몇 배나 된다. 이들은 19세기와 20세기의 경험 있는 사람들로서, 특히 단식의 역할을 강조하고, 건강법 생활의 기본적 진리의 연구와 실행에 몸을 바친 과학자, 연구자, 학자들이다.
가장 좋은 결과를 구하려면, 우리들의 사고가 지나치게 전문 분화해 버리는 것은 현명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신체는 모든 부분 부분이 상호 관련하고 있는 복잡한 유기체이다.
그러므로 건강이란 육체적 정신적 및 감정적으로 우리들 자신의 모든 상면(相面)을 둘러싸고 포함하고 있는 단일의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생각하고 있는 것은 단순한 문제를 넘어서 있다. 그것은 개인 전체에 관계하고 있다.
이것들은 좋은 생활에 근접하게 하는 일반적 고찰이다. 단식의 전문가만이 건강문제, 특별히 필요한 물질과 목표에 관해서 개인을 지도할 수가 있다. 여기서의 우리들의 목표는 보다 좋은 생활을 하고, 보다 좋게 느끼고, 보다 오래 사는 방법을 처리하는 범위로서 일반 독자 즉 비전문가에게 상세하게 또 때로는 기술적 배경의 지식과 희망에 관해서 광범위한 전망을 밝혀주는 일이다.
과식은 미국에서 현재 큰 생리학적 및 심리학적 문제의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나는 이 글의 처음의 몇 장에서 과식의 이 면을 특히 중요시 하기로 한다. 체중을 줄이는 것만으로는 구상(構想)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적당한 체중과 적당한 신체조건을 유지하기 위해서 우리들 많은 사람들은, 우리들의 식습관, 노동습관, 휴식과 이완(弛緩)에 대한 참으로 필요한 이해를 전면적으로 고칠 것이 요구된다. 이것들의 모든 것은 이 글의각 장에 서술한 광범위한 사고방식의 일부이다.
체중 과다가 될 필요도 없으며,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파괴적 생활습관의 전체가 초래하는 자업자득(自業自得)의 병으로 불구자가 될 필요도 없다. 그러므로 나는 단지 식사, 운동, 휴식, 바른 습관 및 관례에 대해서의 위생적 개념을 제공하려는 것은 아니다. 실제 나는 여기에서 아주 새로운 생활법을 거론하고자 하는 것이다.
제 1부 단식과 체중의 감소
제1장 단식과 사람
단식은 다만 먹지 않는다는 것만은 아니다. 단식은 과학이기도 예술이기도 하다. 단식은 복리(福利) 전반에 걸쳐서 뜻이 있으며, 우리 생활의 심리학적 및 정서적 상면(相面)에 영향을 준다.
우리가 여기서 말하는 단식은 일정 기간 일체의 식물(食物)을 완전히 단절하는 것을 말한다. 단식 fasting이라고 하는 것은 고대 영어의 fasten에 유래하는데, 이것은 firm(確固한) 혹은 fixed(固定한)라는 의미이다. 바꾸어 말하면 단식이란 컨트롤 된 확고한 조건하에서 확실한 기초 위에 지켜지는 그 무엇을 말한다.
종교적인 말로서는 어떤 성스러운 날에 음식을 단절하는 것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전체적인 것보다는 오히려 부위적으로 단절하는 것이다. 나는 사순절(Ash Wednesday) 에서 Easter Eve까지의 40일간, 황야의 그리스도를 기념하기 위해서 단식이나 참회를 하는 것) 동안에 「단식(斷食)을 하고서」 체중이 빠진 사람보다는, 실제로는 체중이 불어난 사람을 나는 알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식을 하는 사람들이 식사를 하지 않은 대신에 체중을 더 불리는 음식을 섭취했기 때문이다.
건강 엣세이
속이는 마음은 실패의 근본
옛날 동경의 전차에는 갈아타는 표가 있던 시대가 있었는데, 전차표 값을 속이고, 속였다고 자만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 사람은 반드시 어디선가에서 3배로부터 10배의 손해를 보는 것이다.
담배를 속여서, 잘 속여 먹었다고 생각하던 찰나에 3천엔을 손해본 사람을 나는 알고 있다. 남의 말을 하는 것은 좋지 않지만, 지금부터 30년 전 일이다. 규우슈에서 알게 된 사나이가 상경할 테니 신바시까지 마중을 나와 달라는 전보였다. 그 때는 지금의 도쿄역은 없었다. 그 사나이는 신바시역에 내리자, 곧 역전의 담배가게에 들어가서 「시카시마」 한 갑을 샀다. 그런데 거스름돈을 받기가 무섭게 주머니 속에 집어 넣고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가 ‘이봐, 지금 그 돈은 10엔짜리가 아니었나” 하고 물으니, “아니 그럴 리가…”라고 하면서 더욱 급하게 걸음을 재촉했다. 담배가게 주인이 1엔짜리와 10엔짜리를 착각하고 거스름 돈으로 내 놓은 것을, 그냥 가지고 가려는 것이다. 그때 마침 그 사나이의 동생이 늦게 마중을 나왔다. 지금은 모전력회사의 중역이 되어 있는데, 그 때는 게이오대학의 학생이었다.
그 동안에 나도 생각이 나서, “당신 가방을 어떻게 했오.”라고 말했더니 “아이고! 내 가방…” 하면서, 아까 그 담배 가게에 달려 갔다.
“여기 가방 하나 없었습니까.”
“가방이라면 밑에 있어요.”
“아, 여기 있다. 다행이군.” 하면서 속을 열어 보니, 가방 속에 넣어 두었던 3천엔이 없어졌던 것이다.
“알았나, 나는 이로써 그대와 일체의 교제를 끊겠다.”
지금 같으면 좀더 좋은 말로써 했을 것이나, 그 때만 해도 젊었던 시절이라, 정의감에 흥분되어 있었기 때문에, 생각한 대로 말해 버렸던 것이다. 이 사나이는 동경대학 출신의 법학사였는데 그 후 실패를 거듭하여 나중에는 일일 고용인부가 되었다가 죽었다는 것이다. 후년에 그 동생이 “선생님께는 형이 많은 폐를 끼쳤다는데…”라는 말을 하고 있었다.
그 때까지는 선량한 사나이였는데, 한번 마(魔)에 걸렸다고 할까, 그런 일이 있고 나서부터는 점점 영락하여 가난 속에 살았다. 그 뿐만 아니라 몸까지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이 게시물은 자연건강님에 의해 2013-06-19 16:01:24 2006년 11월호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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