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2면-자연의학 서설
- 자연건강
- 2009-12-21 15: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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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학 개설
- NISHI의학의 원리와 응용-
서 승 조
정신과 육체에 대하여
그러나 가장 명확한 이원론을 제창한 자는 근대 프랑스의 철학자 데카르트이다. 그는 자기의 존재를 위해 자기 이외의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으로서〔실체〕를 정의하고, 정신이나 물체(육체) 모두 독립된 실체로 그것들은 서로 의존관계를 갖지 않고 전혀 관계가 없는 별개의 존재이다라고 했다.
그는 정신의 속성을 사유, 물체의 속성을 연장(넓은 힘을 갖는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서로 다른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 실체가 서로 무관계 하게 두 개 있다고 하는 것은 모순이며, 또 경험적으로는 정신과 육체의 상관관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것은 그의 주장으로는 설명할 수가 없다. 그 때문에 데카르트는 초월적인 신을 끄집어 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 데카르트의 이원론을 철저히 비판했던 것은 스피노자(Spinoza, Baruch, 1632~1677)였다.
‘기하학적 질서에 따라 증명하여 5부로 나누어진다(ordine geometrico demonstrata et in quinque partes)’고 전제한 그의 주저 『윤리학』(Ethica, 1677)에서 정신과 육체는 결국은 같은 것으로 모두 신의 양태(모습)이며, 어떤 때는 정신이 되고 어떤 때는 육체가 되어 나타나는 것이다라고 했다. 스피노자의 사상은 물심(物心) 이원론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고 분명한 일원론이다. 그는 ‘신즉자연’이라고 생각하여 자연 자체가 모든 현상의 원인이다라고 생각한다.
정신과 물질에 관한 이렇게 많은 생각들을 보면서 독자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이 같이 수많은 설이 세워진 사실이 다른 학문에는 별로 예가 없다. 여기에 철학의 특질이 있음과 동시에 곤란이 있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어떻든 우리의 사상이나 생활에 중대한 의의를 갖고 있는 정신과 물체(육체)의 문제에 대해서 조급하게 결론을 내리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러한 중요한 문제의 고찰은 이 절 만으로 끝마칠 것이 아니라 앞으로 전 장에 걸쳐서 서술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앞절에서 서술했던 과거의 철학과 우리들의 철학 사이의 사고 방식의 차이에 관한 극히 적절한 예를 제공하고 있다.
필자가 이 절에 부여한 과제는 이러한 철학설들을 개괄적으로 비판하여,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그리하여 우리의 철학을 어떻게 세워 나갈 것인가를 독자와 함께 생각하는 것이다. 이하 각 장의 설명에 따라 독자 스스로가 자기의 철학을 세울 수 있도록 희망하는 바이다. 정신과 물체에 관한 과거의 철학설에 대해서 문제가 되는 점은 많이 있지만 필자는 우선 여기에서 다음 3가지 점을 확인해 두고자 한다.
첫째, 철학에 있어서 ‘정신’ 또는 ‘물체’, 혹은 ‘육체’라고 할 때 그것이 과연 우리가 보통 경험하는 마음이라든가 신체를 의미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예를 들면 유심론자가 ‘의식’이라고 할 때, 생리적 심리적으로 이해되는 의식작용을 가르키고 그것을 말하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의 수많은 능력 중의 하나인 의식작용에 의해서 이 현실 세계의 모든 사물이 창조된다고 생각하는 철학자는 아마 없을 것이다.
라이프니쯔가 제창한 모나드에 이르러서는 그것을 우리가 체험한다고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단지 하나의 철학 개념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도 좋다. 마찬가지로 유물론자가 정신이나 육체를 형성하는 것으로서 극히 작은 분할 가능한 미립자를 생각할 때, 그것은 이미 물질이라고 할 수 있는지 조차 의심스러운 것이다.
정신과 물질의 본질을 문제로해서 출발한 철학이 분석이 진행됨에 따라 처음에 생각했던 물질과 정신과는 전혀 다른 개념으로 논의하게 된 것을 보면 우리는 유물론과 유심론이 과연 공통된 문제를 논하고 있는가. 그것들은 서로 대립해서 싸워야 하는가 조차 의심스러워진다.
사무실 이전 유감(有感)
- 니시식 독보회 -
이 영 규
한국자연건강회가 오랜만에 사무실을 이전하였다.
내가 처음 서울 종로 5가 백제약국 골목이란 곳에 있는 어느 목욕탕 3층을 찾은 것은 1977년 여름경이었다. 한국니시회(韓國西會)가 배성권 회장에 의하여 창립 된지 6~7년이 지났을 때였나 보다.
배은성 2대 회장과 지금은 고인이 되신 한학륜 총무에 의하여 목욕탕 3층의 초정 약수 사무실을 빌려 매월 1회 토요일 오후에만 니시 건강법 독보회겸 니시식 동호인 모임을 갖고있었다.
자연건강회는 그때까지 일정한 사무실을 갖추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곳을 나에게 안내해 준 분은 90대의 노인 김민 선생이었다. 김민 옹은 당시 요가의 대가로서 달인(達人)이라 할 수 있는 요기(腰技)였으며 독립유공자라고도 했다.
내가 대천 해수욕장에서 어느 겨울철에 요양을 하고 있을 때 나의 중병이 치료될 수 있도록 결정적인 역할을 해준 분이었다. 그때 이 니시건강법 모임이 있음을 자세히 알려주면서 꼭 찾아가 보라는 당부까지 해주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때 김민 옹의 작은 책꽂이에서 니시건강법(西式健康法)이란 책을 본 기억이 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 건강모임에서 “니시의학 건강원리 실천보전”이란 긴 제목 빨간 표지의 작은 책으로 독보회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후에 안 일이지만 이 책은 천주교 원주교구청에 있는 지학순 주교로부터 같은 종교인이었던 한학륜 선생이 일본어 책을 선물 받아 우리말로 번역한 것이라고 하였다.
나는 그 날 모임에 처음 참가하느라 좀 늦었는데 벌써 많은 회원들이 좁은 사무실 공간을 빈틈없이 메우고 있었다. 우선 책 한권을 사서 일행들과 같이 독보회 강의를 들었다. 한 총무가 책 내용 몇 줄을 읽으면 옆에 앉아 있던 지금은 뉴욕으로 이민 가서 역시 고인이 되신 한준명 목사가 세밀히 해설하는 방법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나는 당시 수년 째 만성간염으로 투병 중이었는데 당시만 해도 약을 먹지 않고 병원에 가지 않으면서 병을 자기가 스스로 고친다는 것은 난생 처음 들어보는 것이었다. 내 나름으로는 아주 신기한 공부를 하게 된 것이었다. 따라서 집에 돌아와서도 그 책을 또 읽고 또 읽으면서 밤을 지새다시피 했다. 책을 읽으며 하나하나 깨우치는 동안 과연 그렇구나 하며 나 홀로 탄성을 지르곤 했었다. 그러므로 그 책을 보면 볼수록 재미가 있고 실증이 나지 않으니 책을 놔두고 잠을 잘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 책에 써 있는 대로 실천만 한다면 내 병을 고칠 수 있다는 희망에 차다 못해 희열(喜悅)과 흥분까지 되었던 것이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를 잡은 심정이었던 것 같다. 필자는 그 후 회원들에게 그때 내가 경험한 것처럼 병 고치려면 마음을 단순하게 먹으라고 강조하게 되었다. 복잡하게 따지면 병을 못 고친다고.
그 책 속에서 나에게 해당되는 중요한 부분은 붉은 색연필로 밑줄을 쳐가며 읽었는데 20여 년이 지난 뒤 그 책을 다시 보는 순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 책 속에 많은 부분이 나에게 중요한 내용이었던지 거의 모든 문항에 붉은 색 밑줄을 치는 바람에 너무 지저분하여 남에게 보이기가 부끄러울 정도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하루는 독보회 가 끝나고 담화 중에 회가 일정한 사무실도 없고 연락 담당 업무를 전담할 사람도 없어서 애로가 많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모임이 활발하지 못하다면서 봉사할 사람을 애타게 찾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당시만 해도 누가 보수도 없이 봉사하겠다며 나설 수가 있겠는가 생각되었다. 한참 생각 끝에 필자가 선뜻 무료봉사 하겠다며 나서게 된 것이다.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의아해들 했으나 필자가 이 건강법으로 내 병이 거의 완쾌되었고 나라에서 주는 혜택으로 생활할 수 있으니 사회에 보답하고 싶다고 하니 그제 서야 모두 수긍하고 긍정적인 모습들이었다.
그러자 맞은 편에 앉아 있던 최석근 박사가 내가 무보수로 봉사하겠다는 말에 감동한 듯 그렇다면 일 할 수 있는 사무실이 문제가 되겠는데 하더니 뜻 밖에 “사무실은 내가 책임지겠오.” 하는 것이었다. 그는 용산 원효로 에 당시로는 꽤 큰 5층 빌딩에 한의원을 개업하고 있는 한의사였다. 육사 8기 출신으로 나의 군 선배였음으로 협조도 잘 이루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최 박사는 더욱 고맙게도 우리들이 스스로 자립할 때까지 사무실은 물론이고 테이블 등의 집기며 심지어 전화기까지 무료로 제공해 주는 것이었다. 모두들 파격적인 지원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이 모임은 천군만마를 얻은 듯 모두들 기뻐서 박수를 치게 되었다.
마침내 자연건강회는 1978년 여름부터 천일한의원 2층을 사무실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로부터 2년, 최 박사와 처음 약속한대로 부족하지만 우리 회가 능력이 갖추어지게 되었음으로 1980년대 초 종로 6가로 옮기게 되었다.
그곳에서 두 번 옮긴 후 무려 20여 년이 지난 이번에 서울시내 군자교 부근으로 옮기게 되었다. 다섯 번째의 사무실이다. 감개가 무량하다. 그렇기에 지난 세월이 나에게는 감회가 남다를 수 밖에 없었던 만큼 그야말로 격세지감을 금할 수 없게 한다.
아무쪼록 이곳에서 한국자연건강회가 배 성권 회장을 중심으로 일취월장(日就月將)하여 무병사회 건설에 일로 매진하게 되기를 기원한다.(명예회장)
[이 게시물은 자연건강님에 의해 2013-06-19 16:00:53 2006년 09월호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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