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3면-아침단식 조식 무용론
- 자연건강
- 2009-12-21 15: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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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H.듀이 박사의
아침단식 조식무용론
E.H. Dewey
상쾌한 오전의 시간
●나는 조식을 폐지하기 훨씬 이전부터, 병실에서 얻은 경험에 의하여, 기아(飢餓) 때문에 죽는 일은, 실제로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그러므로 나 자신의 경우는, 금방 거대한 효과를 얻음과 동시에,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는 식의 당연한 위세를 가지고서 오전중 ‘비어있는 위대(胃袋)’로써 생활하는 것의 안전성을 주장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누구나 나의 병원에 오기만 하면, 어떤 것이든 치료 방법을 얻어 갈 수 있고, 또 바로 실현되는 것이기 때문에 나의 병원은 점차로 강당―말하자면 보건에 대한 교육을 생도에게 가르치는 학교, 사람들을 친절하게 보다 높은 생활로 유도하는 도장―과 같이 되어 버렸다.
●이때에 필요로 한 것은 내가 말하는 것에 의상을 입히기 위하여, 어떻게 해서든지 숨겨진 반지를 찾아내는 일이었다. 자신을 활기차게 고무하는 것이 충만해 있기 때문에 나는 마치 대자연의 발 아래 앉아 있는 것 같은 기분이어서, 완전히 그 놀라운 이야기에 흥분하고 자신이 어떤 험구나 중상에 부딪힐 경우라도 전혀 그것을 마음에 두지 않았다.
●대자연은 끊임없이 놀라운 기적적 변화를 만들어서 나를 격려하였다. 어떤 청년은 조식을 들면 반드시 토해 냈다. 그는 두 번씩이나 유럽에 가서 베를린의 전문의를 찾았으나 효과가 없었다. 그러나 그 상태는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는 아니고, 위에는 아무런 기능적 질병도 없었다. 그저 몹시 자극되기 쉬웠던 것이다.
●나는 ‘먹어도 뱃속에 머물지 않는 조식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는 ‘아무 소용도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토해버리는 조식이라면, 차라리 그만두면 오전의 일에 좀더 능률이 오를텐데요’라고 말했다. 그는 곧 눈썹을 치켜 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언짢은 기분으로 토하지 않으면 안되는 조반만 먹지 않으면, 오전 중을 더 상쾌하게 지낼 수 있다는 것은 그에게도 쉽게 이해가 되었다. 실제 문제로서 조식을 그만 두면, 거기에 휴식이 있게 되는 것이니까, 아침의 싫증 나는 기억을 되풀이 하지 않고, 점심을 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두번 세번 권하니, 그는 그로부터 조식을 그만두었다. 그랬더니 완전히 위의 장해가 없어져서 ‘당신이 말을 해 줄 때부터 나는 이미 좋아지기 시작한 것입니다.’라고 그는 곧잘 말했던 것이다.
●이 사람은 그 무렵 가족과 함께 이 도시로 이사해 온 사람인데, 그와 아주 친분이 두터웠던 친구가 조식폐지법을 실행한 덕택으로, 지금까지 항상 머리가 뻐개질 것 같은 두통으로 고생했던 것이 씻은 듯이 나았기 때문에―그 사람에게 듣고서 나를 찾아왔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이 조식폐지의 방법은 다음에서 다음으로 번져갔던 것이다.
●오랫동안 나는 아침의 커피나 차는 얼마든지 먹고 싶은만큼 마셔도 좋고, 점심은 얼마든지 많이 먹어도 좋다는 식으로 하고 있었다. 실제로 이런 새로운 방법을 시작하려면 그렇게 할 수 밖에 도리가 없었다. 아침에 무엇인가를 위속에 채워 주고, 살아 있는 차를 운전시키지 않았더라면, 아마 이 방법은 최초에 이미 실패로 돌아갔을 것이다. 아침에는 커피만으로 해서 상쾌한 원기를 발생시키고, 그리고 정오나 정오전에 음식물을 먹는다는 것은, 의사들로부터는 비난을 받게 되고, 악담의 대상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많이 번져갔다. 그러나 조식폐지론자가 된 사람들의 경험담을 들어 보면, 탐식(貪食)을 하면, 어쨌든간에 그 천벌은 즉시 자기에게 되돌아와 자신의 몸을 헤치고, 혼이 나게 되므로 음식물의 질이나 양이나 종류 등에 대해서는 너무 잡다하게 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던 것이다.
●완전히 조식을 폐지하면 오전 중은 힘과 쾌감이 넘치고, 그 다음은 이제까지 맛볼 수 없었던 만큼의 점심을 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나의 직업적 성공으로서의 긍지와 자랑스러움을 만족시켰을 뿐만 아니라, 탐식의 천벌을 자기 탓이라고 말하는 것은 드문 일이었기 때문이다. 감추어진 구슬을 발견해서, 사슬에 꿰어 보고, 나는 비로소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달았다. 결국 맛에 끌려서 신체의 실제적 요구 이상으로 먹는 것이, 얼마나 막대한 정력의 낭비이며 또 정신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얼마나 심한 타락을 의미하는가 하는 것이 그것이다. 생각해 보라! 과도의 음식물에서 생긴 오물이 부패 상태가 되어 있는 것을, 정신력에 의하여 위장에서 배설하고 10미터 이상이나 되는 장내를 통과하여 밀어내 보내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그것을 하기 위해서 얼마나 막대한 정신력이 소모되는가는 말하지 않아도 자명한 일이다.
●‘아아! 아아! 탐식! 그것의 턱은 죽음이요, 그것이 통과하는 인후는 위의 고문소로 통하는 개방된 대문이다!!라고. 이렇게 6장을 맺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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