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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3면-생채식 수련회 이야기

  • 자연건강
  • 2009-12-21 15: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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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의 생채식 수련 이야기

이 영 규

생식은 음식을 익히지 않고 먹는 것으로 옛날 도인들이나 특정인들이 곡식 대신 나무 열매나 솔잎 등을 날로 먹는다는 벽곡법(隻穀法)을 연상하게 한다. 그런데 우리들이 실행하고 있는 생식은 생채식(生菜食)으로 생야채만 먹는 것을 이르는 것이다. 야생의 토끼나 말처럼 풀만 먹는다고나 할까, 그런 것이다.
우리들의 생채식은 각종 난치병을 다스리고 건강을 유지하기 위하여 한정된 기간만 실시하게 된다. 이 요법은 생명의 근원인 태양의 에너지가 듬뿍 함유되어 있는 엽록소를 이용하고 비타민 C를 공급하는 것인데 오늘날 창궐하고 있는 무수한 질병치료에 획기적인 건강법으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인류가 진화해 오는 기나긴 세월동안 화식생활이 습관화된 오늘날, 생채식은 아무래도 이색적인 음식이라 아니할 수 없다. 따라서 막상 순 생채식을 시작하려면 어려운 결심이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우리 자연건강회에서는 이 생채식 요법을 매년 하절기에 정기수련을 통하여 회원들에게 보급함으로써 건강유지에 자신감을 갖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실은 이 요법을 실천하기 전에 1970년대 말까지는 건강법 실습의 일환으로 계절에 관계없이 실행할 수 있는 한천 단식요법을 하고 있었다. 한천을 끓여서 약간의 꿀과 액체 마그밀을 첨가하여 먹기 때문에 물단식보다 비교적 공복감을 덜 느끼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태어나서 수십 년 간이나 습관이 되어온 식사를 안하는 것이어서 역시 배가 고픈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사람에 따라서는 강렬한 호전반응에 따른 부작용으로 고통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따라서 1980년대 초에는 초창기의 부족된 경험과 적은 수의 임원으로서는 회원들의 관리가 여간 힘드는 것이 아니었다. 때문에 당시 임원들과 선배들에 의하여 야채만 먹는 생채식을 단체 수련행사로 바꾸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순생채식 수련은 식사 때 먹는 약간의 생야채가 아니라 밥은 안 먹고 잎과 뿌리의 다섯 가지 이상의 생야채만을 동등하게 하여 적정량씩을 장기간 먹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시도해 보는 것이어서 과연 사람이 소나 토끼들처럼 풀만 먹고 생명을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염려가 일어나기도 했던 것이다. 생채식에 대한 선진 외국의 문헌이 있긴 했으나 아직 번역 출판 전이어서 임원들은 물론이고 회원들 모두가 이 요법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이 요구되는 시점에 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던 중 마침 한 월간지에 당시 경상도에 풀만 먹고 생활한다는 이색적인 처녀 생식촌 기사가 나 있어서 그곳을 탐방해 보기로 했던 것이다. 장기간 생식을 하고도 생명유지는 물론 건강유지가 가능한 가를 직접 확인하여 순생채식 수련에 참고하기 위해서였다.
지금은 고인들이 되신 김흥국, 한학륜 선생과 그리고 상무일을 보던 필자가 호기심 속에 처녀 생식촌을 찾아간 것은 신록이 막 우거지려는 5월이었다. 땀방울을 닦으며 베트남의 정글 속 같은 숲속을 헤치고 산꼭대기 고원지대에 다다랐을 때는 마침 정오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밭에서 일하던 일단의 처녀들이 손에 들었던 농기구를 놓고 고개를 숙인 채 일제히 서서 합장 기도를 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은 흡사 유명한 그림 낙조(落照)의 ‘만종’을 연상케 하는 것이어서 인상적이었다.
경내를 안내하는 처녀들이 길가에서 발 뿌리에 차이는 산야초로 즉석에서 만들어진 보쌈을 먹어 보고 밥과 김치가 없는 밥상 위에 차려진 각종 산야초 등과 물에 불린 생통밀을 밥대신 억지로 먹고 난 후 우리들은 서로를 이(李)토끼, 김(金)송아지 하며 놀려댔었다.
또한 그들은 왜 무 배추 같은 부드러운 야채를 먹지 않고 씹기 어려운 산야초를 먹느냐는 우리들의 물음에 무 배추같이 병충해에 뜯어 먹히는 생명력의 약한 야채로는 생식을 않는다는 것이어서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당시 20여명의 처녀들은 화장기 없는 건강한 구릿빛 피부색을 뽐내고 있었는데 이웃 지방 여고생들과 배구시합에서 이겼다며 한껏 자랑을 했다.
우리들은 한번의 탐방으로는 미덥지가 않아 며칠 후 다시 그곳을 찾아 몇 가지의 궁금증을 해소함으로써 생채식에 대한 확신을 갖 게 되었고 그해 8월 드디어 희망 회원들을 모아 생채식 수련회를 열 수가 있었다.
마루바닥을 평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서울근교의 호암초등학교 교실 세 칸을 빌려 처음으로 생채식 수련회를 개최하였다. 당시 개혁에 따라 일반의 학교들은 교실바닥을 이미 시멘트로 모두 개축되어 있었다.
그러나 처음의 생채식이어서 시행착오도 없지 않았다. 예컨대 땀을 흘리는 무더운 삼복 더위에 소금이 없는 무염식을 강행하였으므로 맛이 없었음은 물론 모두들 기운이 없어 그로기 상태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먹은 생야채의 소화도 잘되지 않았다. 따라서 그 다음 해부터는 각자가 된장이나 소금을 준비하게 했고 회에서는 볶은 깨소금가루를 준비했다.
또한 그때는 무공해 야채 구하기가 지금보다 훨씬 어려웠다. 더구나 당시는 강력한 식량증산 정책에 따라 농약살포가 절정에 달했던 때였으므로 무공해 야채를 구하느라 풀무원 농장등 당시는 아주 드물었던 유기농으로 재배한 야채를 구하느라 동분서주 할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무공해 야채가 있다는 정보에 따라 수련장소가 경상도 상주 어느 종가의 제실(祭室)도 이용되었고 겨울에 태양빛도 못받은 하우스에서 재배한 시장의 야채를 피하여 제주도 서귀포의 겨울 노지 재배 야채와 바다 생미역을 이용도 하였으며 신갈 지방의 농가에서도 수련을 했었다.
신갈 농가에서는 특별히 서울 시내 여러 중학교에서 그 시절 이미 발생하기 시작했던 문제 학생 여러 명을 일부 모아 수련을 했었는데 그들이 소지했던 사탕과 초코렛을 압수하였더니 얼마 후 그들은 당황해 하면서 교육장을 뛰쳐나가는 등 작은 소동을 부렸던 기억이 난다. 그때 그 학생들의 건강은 어떻게 되었을까 이따금 궁금해진다.
최근에 이르러서는 이 생채식 요법이 거의 자리가 잡혀가고 있는 것 같아 힘들고 땀은 흘렸었지만 보람을 느끼게 한 그때가 이따금 그리워진다. 사회적인 변천에 따라 옛날보다 비교적 환경이 나은 장소로 양평 농협센타나 경주분회, 전라도 담양분회 등 편리한 장소에서 실행하게 되어 나름대로는 격세지감을 금할 수 없게 한다.
끝으로 강조하거와 이 생채식 요법은 현대의 난치병을 예방하고 치유할 수 있는 최선의 건강법으로 자신있게 권하는 바이다.(명예회장)


E.H.듀이 박사의
아침단식 조식무용론

E.H. Dewey

최초의 식사
듀이 박사는 말하고 있다.
●최초의 식사는 반드시 정오까지 기다렸다가 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건강한 사람이라면 쉽게 정오까지 먹지 않고 해 나갈 수 있지만 그 사람이 허약하다든가 병이 있을 경우에는 그 정도에 따라서 피로가 심하여지면 모든 일을 멈추고 휴식하고 나서 소화력이 회복되기를 기다렸다가 들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피로할 때에 먹는 것은 생체의 모든 에너지에 무거운 짐을 지우는 것이며, 또 그럴 때에 먹었다고 해서 결코 자체의 소모가 되는 것은 아니다.
●가장 높은 수준의 천재적 노력이라든가 예술적인 일이라든가 지극히 정교하거나 간단한 수공업 등의 일을 하기 위해서는 오전중 위속에 아무것도 먹지 않고, 확실히 뇌속에 수적(收積)된 에너지를 가지고 하는 것이 제일 능률이 오르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하면 그만큼 한층 섬세한 에술적 감각이나 정신생활의 정서가 발휘되는 것이다.(중노동이라도 조금도 지장이 없다.)
●이때에 더욱 중대한 것은 이 오전 중이야말로 질병을 치료하는 에너지가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더우기 이들 에너지는 일부러 건강 증진을 위한 특별한 운동 등을 하여, 구태어 활력을 상실하는 일을 하지 않아도 훌륭히 나타나는 것이다.
●오전 중에 일을 중지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은 그 필요가 명백하게 되었을 때의 일이다.
●그러면 식사를 들기 전에 휴식을 하고 소화력을 회복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최초로 식사를 드는 시간은 이와 같이 자연의 법칙에 따라서 결정해야 하며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에 의해서 결정할 일은 아니다.
●이것은 선천적으로 허약하든가 질병에 의하여 쇠약했다든가 하는 사람에게는 특히 중요한 일이다.
조식폐지를 단행했지만 절망적이 된 사람들은 그들이 처음 드는 식사는 정오까지 기다렸다가 들지 않으면 안된다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소화력을 상실하고 마는 궁지에 빠진 것이다.(정오까지 기다리는 것이 원칙이긴 하지만)
●이러한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에 결국 엉뚱한 시각에 점심을 먹게 되고, 그래서 얻은 것은 이익보다는 해독이었던 것이다.
●조식에 대한 욕망은 습관의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아침에 공복을 느끼는 것은 본래 병적인 것으로서 심하게 허기를 느끼는 사람일수록 누구보다도 단식이 꼭 필요한 사람들이다.
●조식이 최상의 식사라고 주장하거나 먹지 않고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하는 사람들은 사실 차를 운전하기 위해서 알콜을 필요로 하는 사람과 같은 부류에 속하는 것이다. 조식을 폐지하면 보다 높은 건강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몇 천명의 체험에 의해서 조식을 완전히 폐지하면, 그것에 대한 욕구가 얼마 안가서 소멸된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만약 이것이 생명의 법칙에 위배되는 것이라면 결코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일단 완전히 폐지한 습관이 다시 반복되는 일은 드문 것이다.
●최초의 어떤 종류의 알콜이나 담배를 사용하는 경우도 이것을 일시 중지하면 그런 진정제에 의하여 침묵하고 있던 병적 분자로부터 맹렬한 반대를 받게 된다. 그러나 이것을 진실한 생리적 필요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조식을 폐지하는 일―혹은 아침술(해장)을 폐지하는 일에서 생기는 고통은, 질병을 없애고 건강을 보전하기 위하여 그것을 폐지하지 않으면 안 될 필요가 크면 클수록 그 고통은 큰 것이다.
[이 게시물은 자연건강님에 의해 2013-06-19 16:00:36 2006년 08월호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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