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6면-현대의학 개혁에 관한 백서
- 자연건강
- 2009-12-21 14:5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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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학 개혁에 관한 백서
니시 가쓰죠
이 글은 서식 자연건강법의 창안자 니시(西勝造)가, 76세 때인 1959년 4월 1일에 일본의 중의원(국회의원)과 각부 대신(장관) 및 의학자와 개업의를 상대로 내놓은 ‘의학 개혁 백서’로서 니시 가쓰죠 최후의 글이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 이 글은 니시의학(NISHI MEDICINE)의 총결산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글이 우리 건강법 보급에 좋은 매체가 되기를 바라며, 회원 여러분 앞에 공개하는 바이다.
현대의료계의 초급(焦急)한 문제
의가(醫家) 여러분은 자기 생계를 영위하는 관계로, 병원이 불명하여도, 또 쾌유시킬 자신이 없어도 환자를 놓치지 않을 계책을 쓰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대체로 그럴 듯한 병명을 붙여, 임기응변의 처치로서, 적당히 처방한 약을 주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의료 과정에 대하여 최근 구미(歐美)의 양심적 인 진보적 의학자들은, 자기 비판의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 결과 등장한 문제는 ② “의사가 만드는 병(Iatrogenic disease)”이며, ② “의사가 주는 약은 일시적으로 안심시키는 것(Placebo is in common use)”의 문제이며, ③ “효력 있는 약은 부작용이 있다.(Potent drugs involve side-effects)”등등의 의료계에 있어서 간과(看過)할 수 없는 초급한 문제인것이다.
의자(醫者)가 만드는 병
“의사가 만드는 병(Iatrogenic disease)”이라고 하는 말은, 작고한 영국의 위궤양의 권위 아더어·허스트 경이 창도한 전문어(專門語)로, 이것에 관한 문헌은 현재 나의 수중에 백수십편 수집되어 있는데, 이 논문들을 하나하나 정성들여 읽어 가면, 함부로 의사에게는 보일 수 없다는 심정이 된다.
의사가 만드는 병이기 때문에 보통 사람의 생각으로는 기껏해야 정신병 정도로 생각될 것이나, 이상의 문헌이 말하는 바에 의하면 암, 뇌일혈, 고혈압, 심장병, 신장병, 결핵증, 당뇨병, 이비인후, 안(眼) 및 치질(齒疾) 관계의 제증, 갑상선 기능쇠퇴, 매독증, 십이지장궤양, 알레르기증, 월경곤란, 스트레스 등등에 이르고 있다.
신도라 박사는 병의 6할까지는 의사가 만들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드레그 박사는 만성병의 거의가 의사가 만든 병이라고 술회하고 있다. 나는 오랜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병이 8할 5부까지는 의사가 만들고 있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일반적으로 안심시키는 약
의사가 환자를 달래기 위하여, 그것이 효과가 없는 것을 알면서도 주는 약이 이른바 “일시적으로 안심시키는 약(Placebo)이다. 이 효과가 없는 약을 먹이거나 주사를 맞고 약가의 9배(?)의 치료비를 내는 것이 환자이다.
미국의 군의단(軍醫團)이 전세계에서 발표되는 매월의 의학잡지의 목록을 집대성하여 방대한 월간 잡지를 발행하고, 그 창간호부터, 나에게도 매월 기증해 오고 있다. (까닭은 나는 『미국공중위생학회원』 Member of the American Public Health Association이다.) 거기에는 매호마다 의사가 내리는 ‘일시적으로 안심시키는 약’에 대한 문헌이 수편씩 게재되어 있다.
구미의 의학계는 지금 한창 이 문제를 중심 과제로 하고 있는데, 이것이 또 가까운 장래에는 약업계에 혁명을 불러 일으키는 일이 될 것이다. 의사는 말한다.“일시적으로 안심시키는 약이 상용되고 있다.(Placebo is in Common use)”라든가 “약리학의 근본적 허망(The basic fallacy of pharmacology)”이라는 등의 말을 하고 있다.
효력이 있는 약에는 부작용이 있다
일본에서는 의약분업으로 의사와 약제사회가 다투거나, 또 의료의 점수나 단가의 문제로, 의사회와 후생성이 추한 논쟁을 전개하고, 생계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옛부터 ‘의는 인술’이라고 한 정신이 헌짚신짝과 같이 땅에 떨어진 감이 있다.
그런데 인도주의가 기반 위에 자라서 기본적 인권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는 구미 의학 계는 일찍이 인명을 구하기 위한 약제에 부작용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광욕이 건강에
주는 유익
A. Brachule
어떤 복장으로 하면 좋은가
옷을 입은 채로 일광욕을 하라는 것은 당치도 않은 말이다. 일찍이 나는 발트해의 해변에서 옷을 입은 채로, 더구나 칼라의 깃을 세운 채로 일광욕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목격한 적이 있는데, 그와 같은 답답한 인상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조깅 도로에 가까이 인접한 해변에서는 해수욕 차림을 금지했기 때문이겠지만, 이것은 건강에 민감한 사람에게는 정말 엄청난 모욕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그릇된 조심성은 옛날에 바뀌게 되었다. 당시 나도 남성이나 여성의 해수욕복을 고쳐 입도록 요구했는데, 이 요구가 통한 것이다. 자외선욕(紫外線浴)과 공기욕 및 일광욕을 할 경우에는 가능한 한 반드시 나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고 지켜야 한다.
자연요양소(自然療養所)에서는 나체로 하는 것(남성과 여성이 분리된 경우)이, 삼림의 공기욕을 할 때나 일광욕을 할 때나 모두 당연한 것으로 되어 있다. 단 머리만은 간편한 모자를 쓰거나 마른 헝겊 또는 천을 쓰고 보호하지 않으면 안된다. 발은 맨 발로 대지와 직접 접촉을 갖도록 한다. 정교하게 갈라져 있는 발의 신경조직은 다종다양 하고 또 극히 현저한 자극 작용에 대하여 아주 민감한 것이며, 이들의 제작용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일반 사람들 사이에서도, 맨발이 되면 지자기(地磁氣)를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하며, 또 시원한 이슬을 머금은 초원이나 수림 속을 스스로 맨발로 거닐며, 뛰어 돌아다닌 경험을 가진 의사들도 그들이 전문으로 하는 학문의 설명에 구애됨이 없이 이러한 영묘한 힘, 기적을 굳게 믿고 있음을 고백하고 있다.
일광욕을 하면서 책을 읽는 경우에는 검은 안경을 쓰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종이에 반사한 광선이 눈의 망막에 여러가지 자극 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목덜미는 특히 엷은 천 등으로 보호하고, 척수(脊髓)가 펴짐으로써 생기는 여러가지의 자극 작용을 피하도록 주의한다.
일광욕에 대한 준비
본격적인 준비로서 나는 앞에서 공기욕과 자외선욕이 가장 좋다고 서술했다. 흐린 날의 공기와 빛의 자극을 받는 것만으로도 피부는 곧 생기를 띠고, 저항력을 증가시켜서 이내 태양광선에 쬐어 새로운 작용을 받더라도 그 빛에 견딜 수 있게 된다. 손바닥으로 피부를 문지르거나 거친 천이나 수세미, 또는 솔로 마찰하면 할수록 피부는 더욱 일광욕에 대한 준비가 된다.
피부에 기름을 이용하는 경우는 그에 상응한 주의가 필요하다. 일광욕을 하기 전에는 반드시 소량의 순식물성 기름을, 손바닥으로 문질러 피부에 바르도록 한다. 그때 겨드랑이나 생식기에도 잊지 말고 바르도록 한다.
또 발 전체에 즉 발바닥이나 발가락 사이, 그리고 발등 같은 데도 바르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순수한 식물성 기름이 태양의 영향을 받아 그 기름 자체가 태양의 작용을 반영하고, 반조(反照)되어 작용한다는 것은 사실 생각할 수 있는 일이다. 하여튼 규칙적으로 피부에 기름을 바름으로써, 태양, 물, 공기의 자극이나 마찰로 인해 피부에 주름이 가거나 피부가 거칠어 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싱싱하고 완전한 기능을 갖춘 피부는 당연히 탄력성이 있어서 어떠한 신체운동에도 손쉽게 적응해 갈 수 있는 것이다. 기름을 바르고 손질하면, 피부는 색소를 형성하는 능력도 불어나는 것이다.
앉은 채로 일광욕을 하지 말 것
건강한 사람이든 환자든 그저 꼼짝 않고 햇빛을 쬐기보다는 정지와 운동, 양지와 그늘을 상호 교대로 번갈아 가며 하는 편이 좋다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레저나 스포츠나 체조를 하여 호흡이 심해지면 일광욕의 혜택은 더욱 높아지며 나아가서 유해한 여러가지 자극 작용도 방지할 수 있다. 태양의 강한 직사광선을 받은 뒤에 나무 그늘로 들어가는 일은 실로 상쾌한 것이다.
투 병 기
심신증을 앓으며
생각나는 것(3)
H.Y(69세)
다행히 필자는 고다요법 덕분에 30년 동안의 병상에서 겨우 해방되어 건강하고 충실한 매일매일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건강이라는 것은 이러한 것인가. 행복이라는 것은 이러한 것인가. 살아 있는 것이 이러한 것이며, 이렇게 즐거운 것인가. 지금 절실하게 실감하고 있는 때이다.
「서쪽 창에 한줄기 연한 달빛
정토같은 세상에서 조용히 살고 싶다.
나가서 매일 밭을 갈고
들어와서는 책상에서 글을 쓴다」
밤 9시 취침, 아침 3시 기상, 그후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야채 가꾸는 데 힘을 쓰고 있는 요즈음의 일과이다.
소원은 강하게 생각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했다. 필자도 30년간 건강하게 되고 싶다. 되고 싶다고 생각해 온 끝에 간신히 이루어낼 수가 있었다. 그렇지만 30년이라면 너무 긴 세월이 아니냐 하는 감개가 없지도 않다.
저 우울했던 취생몽사와도 같았던 30년과 현재의 생활은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 것일까. 이것을 코페르니쿠스적 회전이라고 해도, 적어도 필자의 인생에 있어서 지나친 말은 아니라 생각한다.
기나긴 길을 거친 마당에 간신히 고다 선생과의 만남으로 뜻을 이루게 되었다.
이제 다시 한번 선생님께 경의와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고다 박사의 코멘트
지금 H.Y 선생의 체험 발표는 여러분께 대단히 훌륭한 참고가 될 것으로 믿습니다.
30년 동안 큰 병을 가지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여러가지 요법을 하셨다. 단식의료도 몇 곳에서 하셨으므로 각 단식의료에서 어떠한 일을 하고 있는가도 잘 알고 있다. 같은 단식을 해도 낫는 경우와 낫지 않는 경우가 있는 것은 왜일까. 왜 실패하는가. 그 이유를 잘 파악했다고 생각한다.
나도 1950년부터 1955년까지 몇번이나 단식을 했다. 여러가지 단식요법을 전부 했다. 그리고 얻은 것은 「단식도장이라는 것은, 즉 결국 기아제조소구나」라는 것을 절실하게 느낀 것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따분하다. 우리처럼 풍욕법을 하루에 몇번 한다거나 냉온욕을 한다든가, 6대원칙의 붕어·모관운동을 한다든가 하면 대단히 바쁘다. 그런데 일반 단식도장에서는 할 일이 없어서 따분하고 무료하기 때문에 모두 오락실에서 장기를 두기도 하고, 바둑을 두기도 하며 논다. 그 정도라면 차라리 괜찮다. 빙 둘러앉아서 아침부터 밤까지 쓸데없는 이야기를 한다. 더구나 그 내용이라는 것이 먹는 것 뿐이다.
「우리 고향의 명물은 ××. 축제 때 맛있는 떡에 으깬 팥고물을 묻혀 먹는 것인데, 그것이 매우 맛있다」등. 그것도 농담이 아니고 진심으로 서로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하면 음식물의 잠재의식이라는 것은 확실하게 뇌에 입력되어 버린다.
특히 배가 고플 때의 일이므로 강렬한 기억이 되어 버린다. 그 잠재의식은 집에 돌아가면 동시에 폭발해 버린다. 마치 기아를 제조하고 있는 듯한 것, 그래서 나는 기대한 바 있어 조례를 시작했던 것이다.
여러분에게는 절대 이러한 실패를 시키지 않는다. 성공해서 기쁘게 돌아가실 수 있도록 말이다.들어가서 지독한 일을 겪었다…라고 하면 미안하다는 동기에서 시작한 것이 조례이다. 그리고 괴로운 단식은 가능한 한 시키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고다 박사 추천)
[이 게시물은 자연건강님에 의해 2013-06-19 15:59:15 2006년 03월호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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