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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2면-한학륜선생의 회고

  • 자연건강
  • 2009-12-20 14:5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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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학륜 선생을 회고하며

배 은 성


1970년 2월 10일에 한국자연건강회를 정식으로 조직하여 배성권 선생을 초대 회장으로 선출하고, 1971년 8월 15일을 기하여 배성권 선생이 니시식 건강법을 보급하기 위하여 「서의학보」를 처음 창간하였다.
그 후 배성권 선생이 1975년 일본 재일동포 민족 교육을 위해 일본 한인학교로 파견되어 그후 본인이 제 2대 회장으로 취임하여 회를 이끌어 나가게 되었다.
그간 학보를 1차만 발행하였다가 중단되었으나 안타깝게 생각한 나머지 1976년 5월 15일 본인과 한학륜 선생의 노력과 집념으로 서의학보를 계속 발간하기로 하여 제 2호가 나가게 되었다. 한학륜 선생의 노력으로 집필하고 회장인 본인이 경제적 뒷받침을 하여 육필 원고를 프린트 하여 복사판으로 발간하였으며 3개월 후 1976년 8월호 부터 인쇄체 활자를 사용하게 되어 읽기에 편하게 되었다.
초창기부터 회 발전을 위해 월례회 모임을 가졌는데 그리 많이 모이지 않아 고심하였다. 한 때는 박갑성 회원이 정릉에 있는 본인 사무실을 학회 사무실로 사용하라고 하여 정릉에 모였는데 다른 회원은 참석치 않아 한학륜 선생과 본인 둘이서만 모여 회 발전을 위해 상담하고 헤어진 때도 있었다. 그 후 교통이 편리한 시내 중심지에서 모이자고 계획하여 관철동 홍신한의원(배은성 원장 경영)에서 모인 적도 있었으나 불편한 점이 있어 송소문 카톨릭 교육회관 강의실을 빌려 썼던 때도 있었고 또 월례회 장소를 변경 1978년 3월 종로구 효제동 초정약수가족회(배은성 회장 이사) 사무실에서 월례회 모임을 가졌다.
교통도 편리하고 그간 홍보도 되고 하여 20명 정도 모였다. 그 후 1981년 회가 발전하면서 회원이 증가하였고 회원 중에 명동에 건우회관이라고 명명하고 자연식 식당을 경영하는 박상천씨의 호의로 건우회관에 40평 정도의 큰 장소를 제공해 주어 명동에서 모이게 되었다. 그 당시 1981년 이명복 박사와 최석근 천일한의원 원장도 월례회에 열심히 참석하게 되었으며 건우회관 식당에서 월례회 회원 일동 회식을 할 때 국무총리 쫛쫛쫛씨도 동석하여 자연건강회 취지를 설명하고 회식을 같이 하였다. 시일이 지나면서 대외적으로 홍보도 많이 되고 회원도 증가하면서 회도 공고히 되었다. 10년전 초창기를 회고해 보면 격세지감이 있었다. 그간 지나온 세월을 돌이켜 보면 한학륜 선생의 공이 지대하다.
1982년 2월에 정기총회를 하게 되었는데 이제 내가 8년간 연임해 오던 회장직을 사임해야 될 때가 왔다고 생각하고 회장직을 사임하였다. 그간 공로를 생각하면 3대 회장은 한학륜 선생이 해야 되겠다고 생각하였으며 한학륜 선생 자신도 그렇게 되기를 내심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회장 선거에서는 유명한 의학박사 명의로 1급과 2급지도사 수료증을 발급 하는 것이 회의 위상을 높일 것으로 생각이 되어 결국은 이명복 박사가 회장에 당선 선임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한학륜 선생에 대하여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는 바이다.
그 후 회가 발전해 나감에 따라 자연건강회 단독으로 사무실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는데 그때 원효로 소재 천일한의원 2층을 사무실로 사용해 달라고 최석근 원장이 호의로 제공해 주었으며, 이영규(현 명예 회장) 상무가 상임총무로 매일 출근 근무하기에 이르렀다.
한학륜 선생은 자기 지병을 치료 하는데 현대의학의 성과를 보지 못하자 여러가지 민간요법 대체의학을 시도해 보았으나 만족한 효과를 보지 못하다가 다행히 니시의학을 접하게 되었다. 니시의학을 열심히 실행하여 쾌차하게 되자 오로지 니시의학 보급에 혼신의 힘을 쏟게 되었다.
한학륜 선생의 주선으로 경기도 양주군 호암초등학교를 빌려 1979년 7월 5일간의 한천단식 수련회를 회원 20여명을 인솔해 간일, 그 다음 해 1980년에도 8월 1일부터 5일간 한천단식 수련회를 강행한 일, 10여명이 나체로 풍욕을 하는데 이상한 행동을 하는 집단으로 알고 동네 사람이 파출소에 신고하여 경찰관이 조사를 와서 풍욕하는 광경을 보고 간 해프닝, 1979년 3월 효창동 노인회관에서 중앙노인자연건강 교실을 조직하여 니시의학 교육을 시키며 건강관리 실천 운동을 한 일, 1978년 9월 13일 일본 니시의학 회장 니시오스케(西大助) 이하 회원 40여명이 내한하여 5일간 관광을 하고 한국자연건강회 발전상을 돌아보고 모든 안내와 접대를 한 일 등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이 모든 일들을 회고해 볼 때 한학륜 선생은 사리사욕을 초월한 희생적 정신으로 강행하였음을 생각하며 존경심을 갖게 된다.
한학륜 선생은 니시의학 건강원리 실천보전을 비롯하여 니시의학 서적 10여권의 번역 발간을 함으로써 한국에 있어 니시의학 보급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분이다.(고문·한의사)


NISHI의학 입문

보건치병의 길잡이

카시오 타로


태어날 때부터 무균상태로 특수한 탱크 안에 사육되어 멸균된 공기와 음식물로 자라나고 있는 동물을 무균동물이라고 하는데, 그로써 실험한 결과, 충치는 함수탄소(당)와 세균이 없을 때는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함수탄소에서는 유산이 만들어지고 이 유산이 치아의 칼슘을 훑어냄으로써 충치가 만들어진다. 세균이 없으면 유산발효가 안되는 것이다. 충치를 만드는 최대의 원인은 설탕이다. 인유(人乳)의 당분은 유당이지만 가루 밀크의 당분은 백설탕으로 전체의 1할이나 차지하며, 유치가 충치로 되면 영구치 또한 충치가 되기 쉬운 것이다.
더구나 인공영양은 비타민 C가 없으므로 어린이의 이가 나빠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므로 치과대학을 증설하기보다는 국민에게 백설탕 섭취를 제한시키면서 비타민 C를 생야채로 섭취하도록 교육시키는 편이 현명한 것이다. 치조농루(齒槽膿漏)는 이가 근들거리고 이와 잇몸 사이에 고름이 괴는 병이다. 만약 이가 근들거리면, 고무판 같은 것을 이 사이에 끼워 세게 물고, 온냉욕을 하며 감잎차를 마시는 것이 좋다. 또 ‘엷게 입는 사람에게 치통 없다’는 속담도 상기하기를 바란다.
이가 아플 때는 합창합척법을 하면 통증이 가라앉는다. 이가 아플 때는 벌써 일이 끝나버린 때이다. 즉 이가 근들거리고 이와 잇몸 사이에 세균이 번식했었으나 그 세균이 도망쳤기 때문에 이 뿌리의 신경이 되살아나 통증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가 아프다고 하여 신경을 빼면 이는 죽게 되어 조만간 빠지게 되는데, 자기의 이는 하나라도 안 빼는 편이 좋다. 자연히 빠지는 것은 할 수 없다 쳐도 무리하게 빼면, 그곳으로 세균이 들어가 패혈증을 일으키기도 한다. 결국 이를 하나라도 빼면 돌담의 돌 하나를 들어내는 것과 같아 전체가 허물어지게 됨을 알아야 한다.
스이마그 원액을 탈지면에 적셔, 환부에 대고 지그시 물고 있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가 나쁜 사람은 경추 3,4번이 부탈구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니 반달모양의 경침을 머리에 대고 자면서 바로잡아야 한다. 또 치열이 고르지 못함은 자세가 나쁘기 때문이며 어릴 때부터 딱딱한 것을 씹는 습관을 안 붙이면, 잇몸의 발육이나 턱의 발육이 나쁘게 된다.
이가 아직 안 난 갓난아기 때는 생야채즙을 2,3배의 물에 타서 꿀을 조금 섞어 먹이고, 이가 돋아나면 생야채 간 것을 먹이면 이가 튼튼한 어린이로 자라게 된다. 스이마그 수로 양치질한 물을 그대로 마시면 입 안은 개운해지고 평소에 생야채를 씹어먹으면 이에 이물질도 안 끼고 이도 흔들리지 않는다.



한학륜 선생과 니시 건강법

신 영 호


니시건강법 보급에 한학륜 선생님 같이 열심인 분도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교등학교 교사시절에도 특활시간을 만들어 학생들에게 니시건강법을 가르치고 각종 관련 서적을 편역하여 국민건강에 일조하시는 노력도 대단하셨다.
정년 퇴임 후에도 이러한 노력은 계속되었는데 간혹 예전에 가르치시던 50대의 제자가 건강문제로 선생님을 찾을 때는 예전의 가르침이 헛된 것이 아니였구나 하는 보람을 느끼시는 것 같았다. 필자와는 니시건강법에 관한 의견이 일치되어서 선생님을 존경하였고, 선생님은 필자를 아껴주시어 주위에서 서로가 가장 가까운 관계로 인정하였는데 필자에게는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선생님은 평생 준비된 계획을 진행시키다 떠나신 분이시다. 너무 근시안적으로 살아가는 필자가 염려스러우셨던지 신선생도 언젠가는 세상을 떠날텐데 그럴 경우 신선생의 임상경험이 단절되는 것에 대비하여 후진들에게 물려주어야 하지 않겠소 하는 말씀을 가끔 하셨으나 현재까지 별다른 대책을 세우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고 죄송한 생각이 든다.
때로는 주위에서 하필이면 국민감정이 좋지 않은 일본 사람이 개발한 건강법을 보급하는데 그렇게 열성을 기울이느냐고 핀잔하는 듯한 의견을 보이는 경우도 있지만 필자의 생각에는 니시건강법이 자연의 이치와 과학적 이론이 정립되었고, 순수하며 오랜 세월을 두고 안전성과 효능이 입증되고 누구나 스스로 실천할 수 있고, 좋은 결과를 볼 수 있으며 자연이란 가르쳐 주는 사람의 권위나 신분에 따라 본질과 위치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데 있다.
선생님의 생각도 필자와 다르지 않다고 본다. 선생님은 약속도 철저히 지키시는 분이시다. 1993년 필자가 대단한 곤경에 처한 적이 있었다. 선생님과 만나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자연건강법을 가르쳐 주어 건강에 도움을 줄 수 있을까 하는 많은 의견을 나누었는데 그와 같은 꿈을 접을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을 때 선생님께서 절대 포기해서는 안된다고 장소를 마련해 주시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쓰셨을 때이다.
그러던 차에 당시 경기도 강화군 석모도에 마땅한 장소를 제공하겠다는 제안을 받은 선생님과 신촌 시외버스 정류장에서 만날 약속을 하였는데 하필이면 그날 아침 날씨가 좋지 않아 광풍이 불고 폭우가 쏟아지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날씨에는 배가 운행하지 못한다는 말도 있었고 연세 많은 선생님이 나오시는 것도 죄송스러워 약속을 다음으로 미루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댁으로 전화를 드렸더니 벌써 나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서둘러 나간 적이 있었다.
필자도 약속을 하면 지키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선생님과 몇차례 약속한 적이 있으나 단 한번도 선생님과의 약속 장소에 필자가 먼저 도착해 본 적이 없어 지금도 생각하면 죄송하고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필자가 초라한 농가를 개조한 현재의 장소를 마련했을 때 필자보다 더욱 좋아하시고 어느 한 해 무더운 여름날 선생님의 체중보다 무거워 보이는 수박을 들고 들어오시는 모습이 또렷이 기억된다.
기회를 봐서 꼭 한번 가겠노라는 말씀을 여러번 하시면서도 오시지 못한 것을, 그렇게건강이 나빠져 오시지 못한 것도 모르고 돌아가시기 얼마전에야 찾아 뵙고 그러한 사실을 알았을 때 필자는 죄인과 같은 심정이 되었다. 이제까지 몸이 편치 않아 그렇게 좋아하시던 술도 끊었는데 오늘은 신선생이 왔으니 기분이 좋아 한잔하시겠다고 술잔을 기울이시던 모습을 뵈온지 얼마 되지 않아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게 될 줄이야.
영안실을 찾았을 때 위독하신 중에도 나를 신선생 있는 곳에 데려다 주었으면 좋겠다고 아드님에게 말씀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흐르는 눈물을 감출 수가 없었다. 선생님의 건강문제로 니시건강법을 아셨고 생전에 보급에 열정을 보이셨던 선생님, 그리고 계획 실천과 약속에 철저하셨던 선생님은 자연의 계획과 순종하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세상을 떠나셨겠지만 필자에게는 그렇게 아쉽고도 그리울 수가 없으나 약속된 곳에서 안식을 누리신다고 생각하니 위로가 된다.(청원자연생활분회장)
[이 게시물은 자연건강님에 의해 2013-06-19 15:58:06 2005년 12월호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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