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3면-한학륜 선생님의 추모
- 자연건강
- 2009-12-20 14:5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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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가신 한학륜 선생님을 생각하며
이 영 규
한 선생님은 중증의 질환으로 40세를 넘길 수 없다는 현대의학의 진단을 받았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장장 45일간의 생채식으로 중환을 극복하시고 건강하게 80세를 넘기셨으니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자신의 운명을 고집과 끈기로 개척한 철인이시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서울 명동의 계성 여고 역사 선생님을 정년 퇴임하실 때까지 무난히 소임을 다 하셨다고 생각됩니다. 특히 수업 중에도 다른 반 학생 중에 환자가 발생했다고 하면 양호실로 달려가서 땀을 흘리며 시켜준 붕어운동 하나로 흔히 있는 여학생들의 맹장염을 치료했다는 기적의 사례는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이런 일로 하여 한 선생님은 스스로 자연건강법에 확신을 갖게 되셨고 그래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실천의 열의가 대단하셨다고 생각합니다.
한 선생님 자신이 그렇게 긴 생식을 직접 체험하시고서도 1981년 8월 한천단식 수련 후 회복 중에 처녀 생식촌을 왜 찾으셨나요. 경북 월성의 해발 700미터나 되는 그 이색적인 생식촌을 찾느라 무더운 여름 땀을 뻘뻘 흘리며 베트남 정글 같은 험준한 숲 속을 헤쳐 찾아가지 않았습니까. 인간도처유청산(人間到處有靑山)이라더니 청산이 있으니 사람이 산다고 했지요. 그때 한 선생님은 물론 고인이 되신 김흥국 선생과 필자가 그야말로 악전 고투하지 않았습니까.
거기서 당시 우리들과 처녀들이 서로를 이방인(異邦人)처럼 대하는 가운데 생식촌 경내를 안내 받았지요,. 안내하던 처녀들이 길가에서 뜯어 먼지를 툭툭 털었지만 아직 흙이 묻는 산야초 보쌈을 우리 둘은 사양했지만 한 선생님만은 용감하게 받아 맛보는 시범도 보여주셨지요. 이때 우리들은 처음 생 날풀을 먹었다면서 한 선생님에게는 한 송아지, 필자에게는 이 토끼라 부르며 힘들었던 가운데서도 박장대소 했었지요. 생채식 수련회를 성취시켜야 겠다는 한 선생님의 책임감과 열성 때문이었다고 생각이 되었답니다.
그런데 회에서는 이미 서울 변두리의 호암초등학교 등에서 몇일 전에 끝난 것까지 2~3차례에 걸친 한천단식이라는 것을 실시하지 않았습니까. 그때 참가했던 회원들의 강력한 명현 반응으로 고통스런 모습을 보다 못해 마음이 약해지셨겠지요. 사고가 날까봐 두려우셨던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배성권 선생(현 회장)이 번역 출판한 생채식 건강법으로 생야채라도 먹으면 좀 수월하게 수련을 할까 해서 다음 해부터 생채식수련회를 계획하게 되었던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몇일 후 서울에서 그 머나먼 처녀 생식촌 방문을 왜 또 하자고 하셨습니까. 한차례 방문으로는 도저히 못 믿어웠던 것이었겠죠. 한 선생님은 이미 생식 체험을 해서 자신감이 있으셨지만 많은 사람들은 익힌 화식을 끊었을 때 개인 차가 있을 수 있고 호전반응이 클 수도 있다는 것 때문에 걱정하셨지요? 과연 삼복더위에 동물처럼 풀(생야채)만 먹고도 생명을 부지할 수 있을까. 여러 사람들이 정말 견디어 낼 수 있을까 걱정이 되셨겠지요.
지나고 보면 그때 한 선생님은 처녀 생식촌을 두 번씩이나 사전 답사하여 어려운 판단을 하셨던 것입니다. 비로소 우리나라 생채식건강법 최초로 시작하게 된 것이지요. 이 생채식은 그 후 한국자연건강회의 매년 여름철 수련 행사로 정착 발전되었고 수많은 난치병 환자들에게 유일한 희망의 생식요법이 되었습니다. 중환자들의 배수진 같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제 와서 그 실행자가 누계로 추산해 보면 무려 수천을 헤아리게 된 것이랍니다. 한 선생님의 그 고집 하나로 이루어낸 엄청난 쾌거는 그 공로를 모두 치하들 하고 있답니다. 1976년 종로 5가 백제약국 골목의 초정 약수 보급소에서의 건강법 독보회로부터 시작하면 참으로 장족의 발전이었으며 격세지감을 갖게 합니다. 원주 지학순 주교로부터 선물받은 「서의학 건강원리 실천 보전」이란 긴 제목의 책을 번역하여 역시 오래 전에 고인이 되신 한준명 목사님과 함께 진행했었지요. 덧없는 인생에 무상함도 함께 느끼게 됩니다.
또 잊을 수 없었던 것은 1979년에 회원들의 학술적인 실력을 향상토록 해야 한다며 자연건강법 초급 과정인 2급지도사 교육을 처음으로 실시하였고 이어서 그 해 7월에는 중급 과정인 1급지도사 과정 교육이 개최되었던 것입니다. 현재 2급지도사 4,930명 1급지도사 2,610명이 전국적으로 양성되었고 건강사를 만들기 위해 시험 문제를 출제하여 1985, 1986년 2차에 걸친 엄격한 고시를 거쳐 13명의 상급 지도사 즉 건강사(健康師)를 배출했습니다. 그것을 기초로 하여 건강사, 1급 지도사, 2급 지도사 명단을 첨부하여 정부 요로에 건의했었지요. 공공기관이나 각 사회단체에 건강사 제도를 채택하도록 하자고. 그에 따라 정부측에서는 보건부, 체육부, 문교부, 농림부, 국회 등에서 회신을 각각 접수한 바도 있었습니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정부측의 회신이었지요. 한 선생님 평생의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아 참으로 유감입니다.
이제 한 선생님이 가신 이 세상은 한 귀퉁이가 비워져 버린 것처럼 허전하답니다. 뒤에 남은 우리들은 한 선생님의 무병사회를 이룩해야 겠다는 고집스런 그 뜻을 꼭 이어갈 수 있도록 보살펴 주시기 바랍니다. 삼가 명복을 빌어마지 않습니다.(명예 회장)
한학륜 선생님께 올리는 글
이 화 종
선생님이 육신의 옷을 벗으신지도 몇 달이 지났군요. 금방 깨어난 나방이 하늘을 날으는 연습에 골몰하듯 이제 선생님도 카톨릭 동방정토로 비상하실 준비로 바쁘시겠군요.
생전에 거동이 불편하시단 소식을 듣고 찾아뵙지 못해 죄송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일생을 조용히 마감하시려는 분께는 문병이 번거롭기도 할꺼고요.
생로병사가 고통스럽다는 말은 어쩌면 어리석은 저희들의 넋두리가 아닐런지요. 생(生)은 태어남이니 즐겁고, 노(老)는 자신의 연륜이 쌓여가니 풍요로운 경사이고, 병(病)은 불편한 곳을 적시에 일러주니 고맙고, 사(死)는 생전의 결실을 마감하고 졸업장을 받으며 상급학교 입학을 기다리니 설레이는 일 입니다.
경기도 양주군에서 호구지책으로 요양원을 시작할 때 처음 선생님을 보았답니다. 처음은 선생님의 필체에 반했다가 차차 건강책을 읽으면서 선생님의 정성에 감복되어 갈쯤, 요양원에도 환자들이 몰려왔는데 그들을 돈으로 보고 자비심을 망각한 탓에 교도소 신세를 지게 됐었지요. 감옥에서 젊은이들에게 붕어·모관운동을 일러주었더니 신참들이 고참들의 팔다리를 흔들어 주느라고 혼이 났습니다. 싫컷 먹고 누워 있다가 누가 몸을 떨어준다고 건강해 질 수는 없지요. 건강 기계가 잠시 흔들어 준들 환자는 그것을 믿고 잘못된 습관을 못버릴 것예요. 그래서 제 스스로 하는 육대법칙을 고수하시던 선생님이 생각나더군요.
요양원을 거쳐 갔으나 뒷 소식이 않 좋은 분들이 떠오르는데, 전화기 옆에 앉아 계속 집안 걱정하시던 분, 건강규칙을 철저히 지키면서도 기운이 쇠약해지던 분, 원장의 지도를 의심하고 계속 고통만 호소하던 분… 이들의 짜증스런 요구를 받아주다가 파김치가 되었던 제 몸이 비록 비좁은 감옥에 있지만 새털같이 가벼워 졌답니다.
마음이 홀가분해지니 육신이 피곤한 것 쯤은 참아낼 수 있더군요. 선생님은 늘 편안한 마음으로 급하게 화내시는 것을 본적이 없었어요. 사업이 망하고 몸이 아픈 이유도 바쁘게 단번에 해치우려는 성격 때문인듯 합니다.
아무리 시간이 많아도 마음이 급하면 정신없이 실수를 계속하지만 태풍이 몰려와도 마음에 여유가 있으면 맑은 물을 바라보듯 침착해 지니까요. 비바람이 칠 때 우리는 뛰지만 선비는 태연히 맞는 답니다. 우리는 뛰면서 더 숨을 몰아 쉬지만 선비는 무더운 심신을 소나기로 식히면서 맑아진답니다. 삶에 조우하는 장애물이 우리에게는 고통스러워 피할 궁리를 찾게 되지만 선생님은 고맙게 맞으면서 더 연단되고 중화된 심신을 바라 보십니다. 삼복지경에 소나기는 고통이 아니듯 방만하던 생활 중에 다가오는 질병은 고통이 아닌 것입니다.
선생님이 백수회를 만드셨을 때, 저도 동참했던 이유도 그랬습니다. 덕업상권이란 좋은 일은 서로 나누고, 나쁜 행동은 서로 일러주자. 삼성·금성이 같은 길을 가면서도 경쟁 보완 관계이듯이…
세종 임금 시절에 백성들은 좋은 듯하지만 방심하여 나태해질 위험이 있으므로 세조·중종 같은 분이 등장하여 백성이 정신차리고 스스로 챙겨가는 것입니다. 아들을 내쫓는 부모가 매정한 것이 아니라 대범한 사랑이 있는 것이며, 아들도 세파에 시달리는 고생이 사실 인생을 가르치는 스승인 것입니다.
저는 선생님 말씀을 요즘 새롭게 해석해 봅니다. 요즘 젊은이 실업자가 휴대폰처럼 증가하는데 본인들은 고통스러워도 돈의 소중함, 근검 절약을 몸으로 학습하는 중이므로 십여년 후 세상이 바뀌어 그들이 주도해 갈 때는 사회가 희망스럽게 변할 것입니다.
이러하니 선생님은 세상 일, 가족, 건강회… 등은 모두 잊으시고 생전에 우화등선을 바라셨듯이 이제는 기화입선계(氣化入仙界) 하소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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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오다 요법을 알기까지
몸의 상태도 안 좋아졌고, 곧바로 숨이 차오르며 심한 동계(動悸)가 생겼습니다. 목욕 중에 죽는 것은 아닐까 하는 공포감을 느낀 적도 종종 있었습니다. 단백질의 지나친 섭취에 의해 폐해의 하나로 갱년기장애(更年期障碍)가 있으며 저는 어쩌면 남성갱년기에 들어섰는지도 모릅니다. 불과 5~6년 안에 저는 피곤해지기 쉽고 언제나 몸의 상태를 호소하는 그런 사람이 되었습니다.
1988년, 저는 데뷔 당시의 체중으로 낮추기로 결심하고 식사량을 줄이고 다이어트를 했습니다. 당시의 체중은 82kg정도 였는데 처음 4개월 동안에 20kg을 줄이고 그후 3개월에 걸쳐 4kg을 줄였습니다. 그 전년도에 저의 아버지는 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런 일도 있고 해서 건강에 대해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가지 건강법을 취하고 실천해 나가던 중에 5년전 고다 미츠오 선생님의 책 「소식이 건강의 원점(少食이 健康의 原点)」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조식(朝食) 거르기의 소식(少食), 단식(斷食), 야채 쥬스, 현미가루, 온냉욕(溫冷浴) 등의 서식(西食) 건강법. 그 때까지 읽었던 책들보다 충격이 강해서 저의 마음 속에 남았습니다. 그때부터 조식을 거르고 현미가루를 먹고 손수 만든 청즙(靑汁)을 마시게 되었습니다. 또한 냉수와 온수를 교대로 목욕하는 온냉욕을 매일 아침 실행한 것이 4년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완전히 냉성(冷性)을 치료하고 건강을 되찼았습니다. 저는 건강과 행복을 손에 얻기 위한 건행도(健幸道)를 제창하고 있습니다. 고다 선생님은 건행도(健幸道)에 있어서 저에게 마음의 스승입니다.
이 글은 마음의 스승으로서 존경하는 고다 미츠오 선생님에게 병(病)과 식사 방법을 중심으로 평소부터 의문스러웠던 것들을 질문하여 답을 듣는 문답(問答)형식의 책으로 되어 있습니다.
오사카의 고다 병원에서 처음 만나뵌 고다 선생님은 상당히 활기찬 의사 선생님이셨습니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기력이 정정해서 저의 변변찮은 질문에도 정중하고 상냥하게 대답해 주셨습니다.
이 책이 건강과 행복을 동시에 손에 넣고 싶어하는 독자 여러분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무엇보다도 기쁠 것입니다.
[이 게시물은 자연건강님에 의해 2013-06-19 15:58:06 2005년 12월호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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