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3면-조식무용론과 단식요법
- 자연건강
- 2009-12-20 14:5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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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고 삽시다(2)
이 영 규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어떤 것은 보관해 두는 시간부터 처치 곤란한 애물단지가 되어 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고가로 구입한 것인데 버리자니 아깝고 또한 사용은 안 하지만 미련 때문에 도무지 버릴 수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생각없이 하나하나 모이다보니 집집마다 사용하지 않는 생활용품들로 어느새 포화 상태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런 것들의 정리는 결국 다른 집으로 이주할 때나 한꺼번에 힘들여 정리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사를 자주 한 가정들은 살림살이가 비교적 단순한지 모른다.
그동안 건강법 실천에만 열중하느라 몸 속에 정체된 불필요한 노폐물 버리기에만 자나깨나 안간힘을 쏟고 있었으나 내 몸밖의 불필요한 것 버리기는 강건너 불구경하듯 나와는 무관한 일인 것처럼 등한히 했던 게 사실이다. 이제 고희를 넘기고서야 겨우 철이 들어가는가, 삶의 주위를 주의깊게 돌아보게 하고 보잘것 없지만 나름대로 인생정리를 하게 하였으니 한 매스컴에 새삼 감사해야 겠다.
안쓰는 물건 버리기 방법은 각 가정마다 생활환경이 조금씩 다르고 개인의 취향에 따라 사는 방법이 다를 수 있을 것이다. 필자의 경우 평소 비교적 단촐한 생활 덕분에 모아둔 것들이 그리 많지 않아 나름대로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보았다. 그러나 고희를 넘긴 부부의 살림살이 치고는 아직도 많다. 가까운 장래에 누가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
우선 무리없이 서서히 정리하기 위하여 일정계획표를 작성하면서 필자 옆에 있는 서적들부터 정리하기로 했다. 이제는 어언간 나이가 들어 돋보기를 쓰고도 잘 안 보이는 오래 전에 장만해 둔 작은 글씨의 전집류들이나 장식용(?) 책들과 자연건강법 실천에 꼭 필요하지 않은 책들을 과감히 골라내었다. 그중 일부는 고서점에 넘기고 나머지는 재활용으로 분류해 버리니 책장 하나가 쓸모없게 되어 이것마저 정리해 버렸다. 그러나 버리고자 골라 놓은 책에 대한 미련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라 또다시 집어들었다 놓았다 하기를 여러 차례 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 다음은 내자와 의논하여 세일점, 할인점에서 아주 저가로 집어온 옷과 물건들이다. 입지 않으면서 버리기에는 아까워 옷장 속에서 잠자고 있는 옷들과 가까운 친지들의 혼사때 예물로 받아 남아도는 침구류, 그리고 신발장의 많은 신발들을 정리하여 구호기관에도 보내고 재활용으로 분류했다.
젊어서 즐겨들었던 레코드판들도 이제는 CD가 자리를 잡게 되었으니 모두 버려야 했고 오랜 군 생활 모습을 찍어서 차곡차곡 모아둔 십 수개나 되는 사진 앨범들도 꼭 기념될 만한 것만 남기고 과감히 정리해 버렸다. 그 외 각종 상패와 감사패, 족자와 액자, 녹음·녹화 테이프 등등, 살아오는 동안 욕심껏(?) 모아온 나의 발자취라 할 수 있는 남에게는 보잘것 없는 잡동사니들조차도 애지중지 했던 것들, 그 하나하나가 나의 손때 묻은 정든 것들이라 버리기가 참으로 아까웠다. 그러나 세월 앞에는 당할 장사가 없다고 하듯 관리할 수 없는 지금에 와서는 정리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 아닌가. 정량제 쓰레기 봉투가 적지 않게 사용되었다. 하지만 인생 결산 차원에서 내 딴에는 타의 반 자의 반으로 많은 것을 과감히 버리고 나니 무겁게 짓눌러 오던 짐을 내려 놓은 듯 홀가분한 기분이다.
옛 도인이 이르기를 한 소식 깨닫고저 하면 성의도 개공(聖意皆空 : 성스러운 마음까지도 모두 비우기) 해야한다고 하였거늘 하물며 범정탈락(凡情脫落 : 사사로운 정 떼어버리기)쯤 당연하지 않겠는가.
필자는 오래 전 투병할 때부터 나름대로 마음을 비워오고 있었지만 이제 내 주위에서 보이는 물질마저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으니 이만하면 니시건강법에서 강조하는 (+)+(-)=0의 수식에 가까워지지 않았을까. 그러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런 생각조차도 역시 버려야 할 군더더기 같은 욕심덩어리인 이기심이 아닌가 싶다.
따라서 나의 심신이 1=0가 되기까지는 앞으로 남은 여생 다하도록 정진(精進)하는 방법 밖에 없을 것 같다. 의식하는 곳에 병이 있다고 하였으니 내가 여기 있어도 없는 것처럼 심신 공히 완전 건강체가 되어야 한다. 그것은 즉 1=0라는 철학적 수식이다. 누가 말했듯이 필요한 만큼만 가지고 사는 것이 분수껏 사는 것이라고 했는데 안쓰는 물건을 얼마나 많이 버리고 필요한 것만 갖고 사느냐가 분수를 지키며 행복하게 사는 방법인 것 같다.(명예회장)
듀이 박사의
조식무용론과 단식요법
E.H. Dewey
반대의 폭풍우 속에 서다
현재 미국에서는 조식은 1일의 식사중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즉 조식은 오전중의 노동력을 양성(釀成)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또 주간의 노동보다도 야간의 수면이 모든 활력에 대하여 소모적이라는 논의가 끈질기게 믿어지고 있는 것이다.
신선한 공기 속에서 비어있는 위장을 가지고 무엇인가를 하게 되면, 도중에 쓰러지고 말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신념이다. 그러나 조식을 폐지했지만 조금도 효능이 없어서 또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가서 많은 양의 조식을 들지 않으면 안되었다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이다.
이 조식폐지요법은 의사인 나, 즉 보통의 뇌수 기능을 가진 의사로서의 명성에 어떤 영향을 끼쳤던 것인가? 동업자 중에서 변설에 능한 자들은 즉시 미친 짓이라고 비방하면서, 나의 위험한 이설(異說)을 배격하려고 했다. 물론 그들의 옹호자들은 이 문제를 열심히 들추어 냈다. 따라서 거기에는 떠들썩한 대논의가 쏟아져 나오게 되었으며, 그 공격의 대상은 항상 나 자신이었고, 별난 총장이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이것은 결코 과장된 말이 아니다. 법률과 근대문명이 허락하는 한에서의 모든 언어를 동원하여 수 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나를 의업계에서 추방하려고 기습해 온 것이다. 그리고 이 싸움의 결과는 의업계의 사람들 중에서 새로 나의 이설에 가담하는 사람이 생겨서, 그들이 또 열성적으로 조식폐지를 주장했기 때문에 더욱 분규는 재미있게 되어 갔던 것이다.(마치 오늘날의 서의학의 형편과 같이)
이것에 의하여 나는 직업적으로 무엇을 얻었는가. 최초의 수년간은 이단자로서 나에 대한 증오 뿐이었다. 그러나 의학적으로는 지금까지 치료하지 못했던 질병을 치료하여, 이 결과로 빛나는 눈동자나 행복한 얼굴이 늘어가게 되고, 그것이 어느때 나의 이익이 되는 수도 있고 하여, 대단한 만족을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질병이 무엇이든 또 어떤 것이든간에 나의 조식폐지요법은 건강 증진의 방법으로서 무한한 적용 범위를 갖는 것이며, 그 만능약으로서의 효능은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처음에 나는 위장병의 치료와 그 후에 오는 전반적인 쾌감 이외의 것은 생각하지 않았다. 이러한 간단한 방법에 의해서 위장병 이외의 병을 치료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조식을 폐지하니까 다른 각종의 국부적 질환이 좋아졌기 때문에 나는 드디어 본격적으로 이 문제를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나의 환자의 대부분은 조식폐지의 치료 중에 야위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활력이 증진되었다. 그래서 환자의 몸을 걱정하는 친구들이 놀라서 그런 일은 좋지 않으니까 그만두라고 권하여도 그런 충고 때문에 환자가 본래의 생활방식으로 되돌아가는 일은 결코 없었던 것이다.
대 담
건강하고 행복한
식생활 문답
고오다 박사와 산프라자
프로로그 : 산프라자 나카노
고오다 요법을 알기까지
어렸을 때, 저는 뚱뚱해서 학급에서 돼지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키도 컷고 우량아였음에도 건강 상태는 변비와 설사가 있었습니다. 음식물은 고기, 유유, 단 음식물을 매우 좋아했습니다. 또한 햄버거, 돈까스, 구운고기 등 육식을 좋아했고 고기라면 무엇이든 좋아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이유로 인해 매년 감기에 걸렸던 것 같습니다.
또 어렸을 때부터 상당히 심한 냉성(冷性) 체질이었습니다. 겨울이면 발이 아파 잘 수가 없어 잠이 들때까지 매일 밤 어머니가 문질러 주셨습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심한 냉성은 계속되었고, 나무 바닥에서는 여름에도 양말을 신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무릎 아래 부분은 한기(寒氣)로 통증이 있었고, 소화도 잘 안됐습니다. 여름날 저녁은 항상 이런식이었습니다.
뮤지션으로 데뷔한 1984년, 34세 때의 체중은 58kg, 신장은 180.5cm 이었으므로 상당히 마른편이었습니다. 그러나 고기, 단 음식을 좋아하고 야채를 싫어하는 것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고기라면 죽을 수 있을 정도였지만 야채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습니다.
1990년경부터 살이 찌기 시작했습니다. ‘슈왈츠제네거와 같은 파워맨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당시는 일이 상당히 바빴고 그런 부담감도 상당해서 마음속으로만 갖고 있었습니다. 정신적으로 지쳐 있었습니다. 그런 탓일까. 나는 내 자신을 싫어하게 되어 자신의 결점을 찾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울증’의 시작이었습니다.
가장 처음으로 비판의 눈을 보낸 것이 스스로의 육체였습니다. 가늘고 자신없는 몸이어서 육체 개조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몸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이 단지 근육질을 동경했습니다. 파워맨으로 강하게 되는 것을 동경했던 것 자체도 그렇지만 지금 되돌아보면 제가 생각해도 몸매 개선에 매진한 노력, 실행력은 정상이 아니었습니다.
어쨌든 단백질(단백질의 영양보급 식품)을 한 그릇 먹은 것 이외에 근육을 키워준다고 하는 광고의 알약을 통신판매로 상당히 사 먹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서서히 근육이 붙기 시작했고 체중도 불어났습니다. 근육 운동기계를 구입해서 방안에서 꼬박꼬박 사용하였으며 처음 시작할 때는 부풀어 오른 근육을 거울에 비추어 보며 기뻐하고, 줄자로 재보고는 미소를 지었습니다.
65kg 정도였던 체중이 2년 정도에 순식간에 늘어 80kg을 넘었습니다. 그러나 근육이 붙은 것과 보조를 맞추듯이 정신적으로도 뭔가 여유가 생기기 시작한 듯 했습니다.
반사신경도 감각도 점점 둔하게 된 것입니다. 감(勘)이라는 것은 번뜩임이며, 이런 번뜩이는 힘이 예술가에게는 둔해지면 안됩니다. 그런 둔한 감이 자신도 모를 정도가 되면 최악이며 그것에 대해 안달 나 버립니다. 음악 작업을 해도 금방 적당하게 해버리며 사물을 깊게 생각할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이 게시물은 자연건강님에 의해 2013-06-19 15:57:51 2005년 11월호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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