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5면-음식이 사람이 만든다
- 자연건강
- 2009-12-20 14:4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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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이 사람을 만든다
잘 먹고 잘 사는 길
전 재 근
스트레스와 음식
사람들은 찻집, 술집에서는 애들처럼 떠들어댄다. 술잔을 기울이면서 되는 말, 안 되는 말, 구분 없이 늘어놓는 것도 술과 안주가 바쁘게 입속을 드나들기 때문이다. 그 입이 자잘한 것들을 삼켜버려 보다 깊은 마음으로부터 구원을 받도록 하는 것이다.
옛날 어린 시절을 떠올리는 음식을 먹으면 그때 순수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교통지옥을 무릅쓰고 고향을 찾아가는 것, 엄마의 손맛 떠올리며 어린애 같이 순일한 생각으로 돌아간다. 이런 모든 것들은 생각의 뿌리로 돌아가면 스트레스가 풀린다는 증거가 아닌가!
기왕 고향을 찾는 김에 내가 태어나기 전, 마음의 고향도 찾아가 보면 모든 이름의 스트레스를 잠재울 것이며, 그리고 그곳은 바다보다 깊고 허공보다 넓은 곳임을 알게 될 터인데…!
스트레스도 힘이니 이것을 다스리려면 더 큰 반대 방향의 힘이 있어야 가능하다. 모든 생각을 쉬고 근본 마음으로 돌아감이 스트레스를 다스리고 이기는 마음의 힘이 생기는 것이다. 즉 생각의 방향을 생각을 일으키는 뿌리로 향하게 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 음식 먹으면 몸에 좋을까, 기에 좋을까, 아니면 어디에는 좋고 어디에는 나쁠까, 그 음식의 기능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온갖 생각을 일으키면 결국 생각은 가지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망상은 마음의 힘을 방전시키는 것이다. 마치 건전지를 거꾸로 연결하듯 반짝 불꽃을 튕기며 그만 힘을 잃어버리고 만다.
공연히 밖으로 별미 별식을 찾거나 기 받아 스트레스 풀려고 헤매지 말아야 한다. 오직 빈 마음〔無念〕으로 돌아가 거기에 한 순간이라도 머물러야 힘이 쌓인다. 무념으로 일분, 이분, 잠시라도 생각을 일으키지 않으면 엄청난 마음의 힘을 얻을 수 있다.
건강해야 한다, 오래 살아야 한다는 생각 탁 놓아버리고 주어진 대로 소박하게 먹고, 시간 나는 대로 먼 산, 먼 하늘 자주 바라보고, 바라보는 내 마음의 뿌리를 바라봄이 스트레스를 단숨에 날려보내는 길이다.
무미탕
가끔 먹는 칼국수가 나에게는 별미이다. 오랜만에 먹어볼 생각으로 동네 칼국수 집에 들렀다. 별미, 진미, 일미 등 이름만 들어도 입맛을 돋우는 것 같다. 그러나 별미는 자주 먹으면 별미가 될 수 없다. 진미는 이곳에 없는 희귀한 음식이지만 다른 곳에 흔하면 그곳에서는 진미가 아니다.
아무리 맛이 일품이라 하나 더 맛난 음식이 생겨나면 더 이상 일품이 아니다. 맛의 무상(無常)함이 이러한데 식도락의 낙(樂)이 무상치 않을 수 없다. 어찌하면 변함 없는 참 맛을 즐기며 살 수 있을까? 맛의 근원이 마음이라 하여 마음을 살피려 눈을 감고 찾아 보았다. 마음의 잔가지 숲을 헤치고 마음의 뿌리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곳엔 맛이라는 말도 뜻도 없다. 그러면 무미(無味)가 맛의 본래 맛이란 말인가! 눈을 뜨고 바라보니 식당 아줌마가 나를 한가히 바라보고 있었다.
얼떨결에 “아줌마, 무미탕 한 그릇 주세요.”하니, 아줌마는 “네?” 하고 되묻는다.
“…….”
나는 한참 뒤 다시 말했다.
“네, 칼국수 하나 주시오.”
“예! 바로 나갑니다” 하고 말하는 아줌마와 눈길이 마주쳤다. 아줌마도 나도 웃었다.
이렇게 먹자
나는 식품 전문가이니 남보다 식품에 대해서 아는 것이 꽤 많다.
사람들이, “무엇을 먹으면 좋습니까?”라고 물으면 “음식이라고 하는 것이면 아무거나 골고루 먹으면 좋습니다”라고 대답한다. 또 어떻게 먹는 게 좋으냐고 물으면, “마음 편한대로 드세요”라고 답한다.
그것이 무슨 전문가다운 대답이냐고 항의를 받을 때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정색을 하고, “그것이 전문가가 할 수 있는 최상의 대답이다”라고 말한다. 건전한 상식이 전문지식의 뼈대이니까 말이다.
전문가는 식품의 종류, 성분, 기능에 관하여 아는 것이 많은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지식이란 것은 주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쪾몸을 유지하기 위한 알맞은 성분이 무엇인가 알아내는 것.
쪾식품의 성분이 어떤 것이 있는지를 검색하는 것.
쪾식품의 성분이 몸 속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아는 것.
쪾활동하는데 필요한 영양분을 알맞게 공급하는 것.
쪾맛있는 음식을 개발하고 공급하는 것.
쪾음식이 상하지 않도록 잘 보관하는 것.
그런데 아는 것과 생활 속에서 부딪치며 살아가는 것과의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본다. 나는 지금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한다. 밥상엔 시금치와 김치가 있다. 내가 아무리 전문가라도 밥상에서 지금 당장 시금치의 성분을 잴 수는 없다. 그리고 혹시 농약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도 알 수가 없다. 김치 한 조각 속에 있는 미생물의 수와 종류, 그리고 이들의 유해성 여부도 알 수 없다.
또 나는 콩나물에 고춧가루 한 스푼 집어넣었다. 수만 마리의 균이 국 속으로 들어간다. 이 놈들이 탈을 일으키면 별도리 없이 나는 당한다. 일상생활 속에서 많은 사람과 사물을 만난다. 모든 것을 다 알고 살기는 너무 벅차고 모르는 것도 엄청나게 많다. 식품을 현대 과학으로 못 밝힐 게 없다고 하지만 그것도 개략적으로만 알 뿐이지 상세하게는 모른다. 마치 끝없이 광활한 우주 속의 ‘나의 몸’의 존재만큼 초라하다.
우리의 지식은 식품을 선택하고 입으로 먹는 과정까지만 챙길 수 있는 것이다. 먹고 난 다음의 소화단계, 흡수단계, 배출단계는 장기들이 갖고 있는 프로그램에 따라 모든 일이 벌어진다. 생선 가시만 잘못 삼켜도 야단법석이다. 이렇게 먹는 것이 잘못되면 기껏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토해 내는 것이나 강제로 배출시키는 일 밖에 다른 일은 하지 못한다. 아니면 프로그램의 일부를 차단하기 위해 약물을 투여하는 정도다. 이런 경우에도 그 후의 반응결과는 기다려 보는 수밖에 없다.
우리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깊은 의식작용이 있다. 좋은 음식, 나쁜 음식을 따지는 것도 그렇다. 우리 모두 밥 세끼 먹고 활동하는 사람들인데, 어떤 이는 자기 앉은 자리도 못 치우고, 또 어떤 이는 세상이 좁다고 맹렬히 뛴다. 예를 들어서 음식의 기능을 자동차의 휘발유처럼 주행거리로 따져서 재보기는 힘든 것이다.(서울대학교 식품공학 교수)
[이 게시물은 자연건강님에 의해 2013-06-19 15:57:05 2005년 08월호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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