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6면-특수요법
- 자연건강
- 2009-12-19 16: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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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의학 특수 요법
감잎차와 비타민 C의 보급
서승조선집반포회
(사) 비타민 C의 효과
1. 치아의 정상 발육에
2. 내피 세포 조직의 건전과 보성에
3. 모세혈관 및 글로뮈의 생리적 작용에
4. 세균에 대한 저항력을 증가시키는 데
5. 산소대사상에
6. 혈구재생상에
7. 정상혈액 응고 시간의 유지에
8. 혈압의 정상유지에 절대 필요하다.
(아) 비타민 C 부족의 결과는
1. 혈관 및 모세혈관의 병변(취약성, 출혈성, 피하출혈, 흑반 및 청반을 생함, 출혈성 자반병, 정맥류)
2. 치아변성(괴사, 충치)
3. 치은의 질병(출혈, 이완, 동통. 농루)
4. 관절 및 골격의 변화(탈회 및 취약)
5. 점막 출혈
6. 상피 조직에 병변이 생기기 쉽다(구강, 장에 궤양)
7. 감염에 대한 저항력의 감퇴
8. 성장 장애 및 체중 감소
9. 글로뮈의 경화, 변질, 개방 또는 소실, 연화, 위축
10. 선의 위축 혹은 확대, 부신의 분비 감소
11. 갑상선의 이상 분비(갑상선종)
12. 혈액 변성(흑종의 빈혈이 되기 쉽고, 혈색소 감소, 골수 파괴)
13. 이약(羸弱), 침울 및 격하기 쉽고 혈침증다(血沈增多)
14. 비, 간, 신, 위, 장 등의 자기중량 증가 혹은 확대
15. 호흡 촉박, 심계 항진
16. 혈압 항진
17. 저혈압증
18. 관절염, 신경통, 통풍, 류머티
19. 임신시 태아에 악 영향을 미침(예 유산 등)
20. 체온 상승 경향
21. 사지냉증 증상
22, 부종의 증악(增惡)
23. 생식력 감퇴
24. 백내장, 녹내장 발생
25. 알레르기성 소인
26. 진성 괴혈병
27. 조로 초래
28. 죽음을 빠르게 함
등등 거의 만병의 원인을 이룬다.
무조반(無朝飯) 생활
-조식폐지 2식주의 -
효 능
거의 모든 만성적 질환에 유효하지만 위약, 위산과다, 위궤양, 일반 위장병, 신경통, 류머티, 두통, 견응(肩凝), 변비, 만성 설사, 전신 권태, 기타 꼭 집어서 어디가 나쁘다고 할 수는 없어도 어쩐지 원기가 없고 피로가 빠른 사람 등은 무엇보다도 조식을 폐지한 주석(晝夕)의 2식으로 해야 할 것이다.
젊은 어머니들에게 보내는
모자 보건 메시지
양주는 화학적으로 순수하고 일본주는 불순하다고 한다면, 어떻든 결과가 반대가 되는 것이 당연한 느낌을 일반적인 사람들은 가질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정반대이다. 어째서 그럴까? 그것은 양주는 인공적인데 반해서 일본주의 양조 방법이 자연적이기 때문이다. ‘지혜의 열매를 먹으면 죽으리라’고 한 성서의 정확성은 감탄할 일이다. 되풀이해서 강조하지만, 우리들이 찾는 아름다움, 맛이 좋음, 편리함, 즐거움 등을 추구해본 인위적인 행동은 인류에게 과연 행복을 주었는가? 우리들은 이 시점에서 과학과 문화와 의학이 초래한 결과를 인식치 않으면 안될 최후의 장면에 직면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런 생각에 대해서 여러가지 의견이 있겠지만, 나는 나대로의 보는 눈으로 식품에 관계되는 몇가지를 선정하니 독자들에게 참고되시기 바란다.
1. 백미(白米)
이 쌀밥은 현미쌀에 비해서 보기 좋고 무엇인가 상품인 것 같이 보이는 것이 일반적 견해였다. 그러나 흰 쌀밥 때문에 일본인의 체위가 현저하게 저하되고 잠재성 각기가 만연한 사실은 알려진 일이다. 그것만이 아니라 흰 쌀밥은 먹기 쉽기 때문에 씹지 않고 먹는 악습관을 초래하고 당연한 결과로서 씹는 횟수를 단축시키고 수액(침안에는 바로틴이라고 하는 젊음을 유지하는 작용) 또는 소화액의 분비를 불충분하게 하며 만복 신호를 모르고 과식하는 일이 생기고 소화기의 과로로 인한 병을 초래하는 유력한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그것이 비만→다병(多病)→단명으로 연결되었던 것이다.
최신의 연구에 의하면 침액 안에는 어떠한 성분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불분명하지만 식물안에 출입하는 발암성(發癌性)을 가지고 있는 물질, 말하자면 불에 태운 반찬의 부분에 있는 발암 능력을 약화시키는 것이 확인되었다고는 하나 충분하게 음식을 씹어서 먹어야 하는 중요성은 앞으로 연구가 진행됨에 따라 더욱 중요하게 여겨질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씹을 때 일어나는 진동 등은 이것은 대뇌에 대해서 유력한 자극이 되고 그 발육을 촉진시킬 뿐만 아니라 충분히 씹는 행위는 강인한 의지를 단련시키는 원동력이 되는 힘이 된다. 이런 좋은 영향이 있는 현미를 먹지 않고 흰 쌀밥을 계속적으로 먹어왔기 때문에 좋은 것을 말살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유럽의 어느 노벨상 수상자가 “나는 세계에서 일본인을 가장 현명한 인종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일본인들은 발명, 발견을 교묘하게 흉내를 내지만 결론은 그것을 개량하고 전혀 다른 좋은 것을 만든다. 그 위에 그들의 독자적인 것을 다수 발명하여 왔다. 그러나 그 일본인이 왜 흰 쌀밥과 나쁜 것을 주식으로 하여 그것을 개량하려고 하지 않을까? 이 점에 한하여 일본인은 세계에서 가장 우둔한 민족”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오호, 백미식 때문에 일본인은 얼마나 귀중한 것을 상실하였는지?…
양배추의 가장 영양분이 많은 녹색의 껍질을 벗겨 버리거나 잠시동안 무표백의 빵이 팔려도 보았지만 결국은 돼지까지도 먹지 않으려고 하는 흰빵을 먹기도 해보고 근채류의 푸른 잎을 짤라버리는 일은 모두가 같은 생각에서 기인한 것이다.
2. 식품 착색제(食品着色劑)
이것 역시 식품의 겉모양만 보기좋게 장식하려고 한 천박한 생각에서 생긴 일이다. 단지 겉보기에 장식만 하려고 한다면 모르지만 유해한 색소를 태연하게 사용한다는 것은 문제가 된다. 새삼스럽게 설명할 것까지는 없지만, 겉보기가 좋지 않으면 잘 팔리지 않기 때문에 야채나 과일에 농약을 사용하고 상하면 안된다고 하여, 특히 곰팡이가 끼면 평판이 좋지 않다고 하여 술, 된장, 간장 등에 방부제를 잔뜩 혼입시키고 이래 저래 생각하여 여러가지로 연구하니 답답한 일이다. 우리들은 표면적으로 보기 좋다고 하여 그 본질을 잘 규명하고 음식물 선택의 수단과 목적에 틀리는 일이 없도록 하고 싶은 것이다.
<마태복음 23장 27절>에 “화 있을 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라고 기록하였다. 예수님의 유명한 말씀이다. 인간은 외형을 보나 하느님은 마음 속을 보신다. 이러한 마음의 눈을 우리는 가지고 살아야 한다. 그러나 겉모양을 장식하는 마음 속에는 팔아야지, 돈을 모아야지 하는 인간의 욕심이 도사리고 있다.
<요한 1서 2장 16~17절>에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소유의 욕심은 아버지께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은 것이라. 이제 세상의 욕정은 지나가되 오직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무엇인가 해서 인간의 한계를 초월해 보려는 마음이 지나친 것에 주의하여야 한다.
이상의 사례는 모두가 행복한 인생을 갈망하여 오랜 세월 동안 사색하여 정밀 정교한 과학적 연구의 소산이지만, 결과는 역으로 불행과 불안을 초래하였던 것이다. 무엇인가 잘못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면 잘못된 것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경제적인 욕심의 결과라고 애매한 지적을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구체적으로 자연을 창조하시고 자연을 사랑하는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것, 즉 인간의 천박한 욕심을 버리지 않는 한 결국은 파멸의 길로 간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 글을 집필하면서 나는 어느 탄광의 사진을 생각해 본다. 한 사람의 광부가 갱내에서 잠들었을 때에 요란한 벨소리에 잠이 깨어났다. 순간 머리속에 번개같이 스쳐간 것은 앗차! 끝장이로구나! 폭파 대피의 신호이다! 그는 캄캄한 갱내를 뛰기 시작하였다. 당황한 그는 전력 질주하여 빨리 안전한 곳을 향해 뛰어갔을 때 앞에서 돌연히 귀를 멀게하듯 요란한 폭음과 함께 거대한 불꽃이 눈앞에서 깜빡하는 순간, 폭풍에 날려 갱도 바닥에 뒤로 넘어져 실신하였다. 그 불빛이야말로 자신의 눈으로 볼 수 있었던 최후의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가 향해서 질주한 곳이 폭약을 장치한 방향이었다. 다행히 목숨은 구했지만 그로부터 그의 일생은 눈먼 사람으로서 마치게 되었던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의 스피드가 좀더 빨랐다면 아마 가루가 되었을 것이다.
우리들 인간의 지식이나 감각은 참으로 불충분하고 불확실한 것이다. 그것은 하느님의 저주를 내포하고 있는 금단의 열매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은 어떠한 한 점을 향해서 전력 질주한다. 그 목표는 인간의 행복이나 즐거움이라고 할 수 있으나 그 결과는 꼭 그렇다고 해도 좋을만큼 반대 방향으로 전력 질주한다. 그 질주가 불가사의 한 것은 역경에 처하였을 때보다 오히려 순풍, 만폭(滿幅)이었을 때 발생하기 쉽다. 그것은 단지 지식이나 기술, 인식의 세계에서만 아니라 역사의 흐름을 좌우하는 경우에도 예외는 아닌 것이다. 우리들이 이 시점에서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무엇인가 영감적으로 깨달음이 있어야 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인간은 과학의 진보를 구가하고 기술의 진보에도 취하고 있을 때, 지금 말한 것에 대하여 두려움을 품지 않으면 그 과학과 기술은 인류의 멸망으로 인도하게 될 것이다. 하느님이 없는 문명, 하느님을 망각하고 자기를 만능으로 하는 과학이, 그리고 그것을 구별없이 이용하고, 마치 자기가 자연을 정복한 것 같은 착각에 취하고 있는 인류가 지금 빠지려고 하는 함정이 눈앞에 다가온 것을 생각하여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그것을 취하여 먹으면(선악을 아는 나무의 열매) 반드시 죽으리라고 하신 말씀 앞에 조용히 반성해 볼 때이리라!
The Resume of the
Nishi Medicine〔XIII〕
Prof. Katsuzo Nishi
The mind (1)
“No matter can exist without Spirit, nor spirit can exist without matter.” -Goethe-
So far the writer has discussed and analyzed the physical phase of the human being, i. e. the skin, the nutrition, and limb, leaving untouched on the mental phase, namely the mind.
Now it is time we have to approach this topic of the mind which is indispensable to understand the reality of the human being as it is.
Let us begin with a definition. The writer would like to define the mind as the soul, the spirit, the emotions, the mental faculties and functions. In short, the mind as used in the Nishi Medicine, implies the “psycho” as opposed to the “soma”.
It is plain and obvious that without mind there can be no matter : without matter no mind. Man is an entity of what the mind and the matter(or to be more precise, the skin, the nutrition and the limb) combine into a whole.
Descartes once remarked, “Cogito, ergo sum”, (I think, therefore I am.) It may well be said that he has, from the mental side, grasped the focal point of the reality. But the writer would assert that the opposite is also true : from the physical side one may say “I am, therefore I think.”
Here on, the writer intend to discuss and criticize neither idealism nor materialism : because this is out of the scope of the present essay. However, it should be stressed that either of them tells us the story only by halves. On the contrary, the complete story can only be told by the theory which values the mind and the matter on a par. This is the fundamental theory, upon which the Nishi Medicine stands. It is undisputable that the mind and the matter (or the body) condition each other ; there is a interrelation between them.
니시 자연의학 요설〔XIII〕
니시 가쓰조 교수
정 신(1)
“정신이 없이 실체가 있을 수 없으며 실체가 없이는 정신이 있을 수 없다.” - 괴 테-
지금까지 필자는 이른바 인간의 형이하학적 상면(形而下學的相面) 즉 피부 영양 사지에 대해서 논구(論究) 하고 형이상학적 상면 즉 정신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제는 그 정신의 문제 즉 인간의 실존(實存)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데 절대적으로 없어서는 인될 문제를 다루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우리는 먼저 그 정의(定義)로부터 시작하기로 한다. 필자는 정신을 정의해서 영혼 심령 감정 정신적 능력이라고 하고 싶다. 요컨대 니시의학에서 사용되는 정신이라는 말은 “신체(身體)”에 대척(大蹠)하는 “정신(精神)”을 의미한다.
정신이 없고서는 물질은 있을 수 없고 물질 없이는 정신은 있을 수 없다는 명백한 사실이다. 인간은 정신과 물질(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피부 영양 및 사지)이 결합하여 전체를 만들어내고 있는 실재자인 것이다.
데칼트는 일찍이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갈파했다. 그는 형이상학적 측면에서 현실의 초점을 파악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 반대도 역시 진리라고 단언할 것이다. 형이하학적 측면(形而下學的側面)에서 “나는 있다. 그러므로 나는 생각한다.”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여기서 필자는 유심론 또는 유물론에 대해서 논술하고 또 비판할 생각은 없다. 왜냐하면 이것은 이 논문의 범위 밖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어느 쪽도 진상을 우리들에게 제시하지 않는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과 반대로 완전한 진상은 정신과 물질을 동격(同格)으로 평가하는 이론에 의해서만 제시되는데 지나지 않는다. 이것은 니시의학에 의해서 성립된 근본이론이다. 정신과 물질(또는 身體)이 상호 의존하는 것은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다. 이것을 양자의 사이에는 근밀(近密)한 상관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 게시물은 자연건강님에 의해 2013-06-19 15:54:53 2004년 12월호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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