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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3면-안진단법 입문

  • 자연건강
  • 2009-12-19 16:0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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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 소개


안진단법 입문
-눈을 보고 병을 안다-

칼 샤아데

이 글은 안진단법(眼診斷法)을 소개하고 또 용이하게 습득할 수 있도록 쓴 입문서로서 이 방면의 여러 전문가(예를 들면 벡크에레, 리리엑스트, 슈레겔, 치일, 슈나벨, 마다우스, 안델쇼, 라네쥴야 등)의 본 진단법에 대한 찬부의 의견을 참작함과 함께 최신의 연구 등 필자 독자의 고구(考究)에 준거해서 논술한 것이다.

「부기」―눈의 해부학적 견취도(見取圖) 의사 건강법 연구자 일반인에게 권장한다.
편저 칼 샤아테
캇셀 니다츠에렌시 헥카스이젠가 7번지

홍채막에 나타나는 병징(病徵)의 위치
우반신의 환부는 우안(右眼)에 좌반신의 환부는 좌안에 나타난다. 단 마비의 경우만은 예외이다. 우안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기관, 위의 출구, 간장, 자궁 및 직장부의 질환이며 좌안에 있어서는 심장, 식도 위의 입구, 비장, 자궁부 및 직장의 질환이다.
◎ 우안의 눈어림에 대해서 주의할 일은
0―0。 정점(頂點)을 나타내고 인체의 최고부이다.
180。 저점(底點)을 나타내고 인체의 최하부이다.
0。―8。 뇌수우반부 전로정엽(前筽頂葉)은 개인적 내부 충동력, 기억력, 사고력, 집중력을 나타낸다. 또 이 부분은 관념 연합력에 대한 통찰을 가능하게 하고 또 이것에서 생기는 정신생활에 있어서의 감정 흥분을 가능케 한다.
338。―352。 우홍채막 대신으로 우안에 있어서 뇌수의 다양화력(多樣化力)이 나타난다. 감정과 지각이 어떻게 상상력을 강하게 하고 성생활의 전체에 영향을 주는가를 나타내는 것은 이 부분이다. 안진단의 향상에 의하여 성적도착, 자학, 히스테리의 사실을 판정할 수가 있다.
330。―338。 소뇌부는 자기 보존의 충동과 생식능력을 나타낸다.
8。―22。 전두엽부는 오성(悟性)발달, 자기의식 유의적(有意的) 이해력과 지각과 함께 졸중(卒中), 좌측 마비를 나타낸다.
22。―30。 「관자놀이부」는 사상 결합력(思想結合力), 관념 총괄도와 언어장해를 나타낸다.
◎ 좌안에 대하여
0。 우안과 같이 정점을 나타낸다.
180。 상동 저점을 나타낸다.
0。―8。 우안과 같다.
352。―0。 우안과 같다.
338。―352。 우안과 같다. 단 자학, 히스테리 대신에 히포콘드리, 간질을 나타낸다.
340。 어지러움(眩暈)을 나타낸다.
8。―22。 우안과 같다. 단 우측마비를 나타낸다.
22。―30。 우안과 같다.
기타는 안진단도(眼診斷圖)의 기관명에 의해서 이해하기 바란다.

진찰의 순서
환자의 외적상황, 안색, 손, 동작, 걷는 법, 언어에 주의하고, 다음으로
① 눈색(眼色)이 청색인가 갈색인가, 회색인가를 검사할 것.
② 양눈의 홍채막의 밀도를 검사할 것. 건강한 사람이라면 밀도가 높다. 피로, 쇠약, 이병(罹病)일 때는 홍채막은 이완되고 또 갈라진 틈이 있다.
③ 암색병징(暗色病徵)을 확인하고 그 위치를 안진단도와 비교할 것.
④ 다음으로 명색병징(明色病徵)을 확인하고 그 위치를 안진단도와 비교할 것.
⑤ 다시 그밖의 색채병징(色彩病徵)을 검사하고 그림과 비교할 것.
초심자에게 권고하고 싶은 일은 연필로써 환자의 눈의 견취도(見取圖)를 만들든가 눈의 표지나 표적을 알기 쉽게 적어 놓고 이 약해(略解)와 대조토록 한다.
처음 시작할 때의 어려움(困難)에 기력을 저상(沮喪)하지 말라. 무슨 일이든 처음이 어렵다. 모든 일이 노력없이 공을 획득하기란 어려운 것이다.

〔후기〕
서선생이 질병 진단법으로서 인상이나 수상, 체모관측, 안진단법 등을 이용하게 된 것은 비의자(非醫者)로서 제약을 받지 않기 위해서이다.


생식요법 연구

생채식과 건강

생채식연구회


동양의 채식과 생식
중국에 있어서도 일찍부터 육식의 해를 인정하여 『문견록』에는 「인약교득채근(人若咬得菜根), 즉백사주(則百事做)」라 했으며, 또 주문공(朱文公)의 『검덕첩(儉德帖)』, 사마군실(司馬君實)의 『훈검문(訓檢文)』, 손진인(孫眞人)의 『침상기(枕上記)』 등에도 채식을 칭찬하는 일문이 보인다.
이상과 같이 많은 학자에 의해서 생식의 효능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으나 서선생도 일찍부터 여기에 착안하여 그 연구와 많은 적응례를 세상에 발표했다.
생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야채는 유기수산(有機蓚酸 : 살아 있는 산) 의 보급원이라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생식에 의한 수산의 보급이 체내의 활력을 충분하게 해준다고 하는 것이다. 일본에 있어서도 고대에는 육식이 주였다는 것은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식물사(食物史)가 가르쳐 주는 대로이다.
그런데 농경시대에 들어와서부터는 수육(獸肉)을 싫어하고, 한편 채식주의의 불교 등이 도래하여 살생불희(殺生不喜)의 교외와 자비심에서 육식은 사회 일반으로부터 배척당하게 되었다. 이를 문화연대의 고정양관(高井佯寬)의 「식사계(食事戒)」 등에 의하면 「지금도 심산유곡에 살며, 녹식(鹿食)하고 잘 활동하는 사람은 신체 건강하여 병이 없으며, 바닷가에 살면서 후미(厚味)의 생선을 많이 먹는 사람은 그렇지 못하다. 귀인 고위한 자가 미미(美味)한 것을 먹으면, 반드시 병이 많고 장명하는 자가 드물다. 그러므로 흔히 말하기를 장수하는 사람은 산에 산다고 한다.
옛날 선술(仙術)을 가지고 허공을 비행하며, 기백세의 수를 보존하려는 자는 먼저 입산하여 수업한다. 선(仙)은 천(遷)이라, 인천(人遷)해서 입산(入山)한다는 뜻이다. 곡물을 먹지 않고 열매, 비자나무의 열매를 먹으며 초로 목을 축인다」 등이 있어 그 식생활의 정도를 알 수 있으며, 꼭 이론적이 아니라도 생식이 일반에게 행해지고 있었던 것을 용이하게 상상할 수가 있다. 그러나 막말(幕末)에 외인이 일본에 거주하게 되면서부터는 일반인도 육식의 맛에 유혹되어 육류 수요의 소리가 높아지게 되었다.
그리고 도쿄의 시바노로게쓰죠오에 일본 최초의 푸줏간을 개업하게 된 것은 서기 1867년(慶應 3년)의 일이다. 식물사를 찾아 보면 한 권의 책도 될 것이나, 아무튼 명치(明治), 대정(大正), 소화(昭和)에 있어서 채식과 생식의 발달과정은 다양한 변천을 보였다.
명치시대는 무비판적으로 흘러들어온 구미주의 육식 편식에 떨어져, 마침내는 육식이 금지되어 있는 승원(僧院)에까지 파급되어 서기 1872년(명치 5년) 승려의 육식대처가 허가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이에 항거해서 활발하게 채식주의를 제창하는 사람도 있어 서기 1882년(명치 21년)에는 아오끼데이사브로가 영국의 「채식자협회발행」의 팜플렛을 번역한 『소식론(素食論)』을 내놓기도 했으나, 그 뒤에 강력한 「육식장려회」 등도 나와 확실히 이 시대는 식생활의 혼미시대가 된 것 같았다.

언제나, 누구나 할 수 있는 간단한 건강법
대정(大正)시대에 들어와서는 겨우 식생활도 안정기를 맞아 학문적으로 상당히 진보·발달하게 되어 우노사네히꼬가 미국의 채식론자의 생식론을 소개하였고, 의학박사 미야이리게이노스께는 『식사법문제』의 저서를 내놓았으며, 생식의 필요성과 먹는 법을 소개하여 식생활에 대하여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대정시대의 채식 및 생식을 보면, 어느 것이나 건강 증진을 위한 생식이며, 채식이어서 이것이 소위 요법으로 이용되기 시작한 것은 소화시대가 되어서이다.
소화 초기에 있어서는 많은 의학자, 약학자 등에 의해서 생식요법의 문헌도 상당히 많이 소개되고, 서기 1935년(소화 10년) 이후가 되면서부터 임상에 응용되어 요법으로서의 생식이 세상에서 각광을 받게 되었다.

-생채식을 하면서 운동을 권하지 않으면 사람을
죽이는 것과 같다.(「NISHI의학」 VOL17. NO7)-

삼가 계남 이명복 명예회장의 영전에 드립니다

세월이 빠르고 덧없음을 이제와서 무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언제나 학처럼 맑고 부드러운 미소를 잃지 않으시고 담소하시던 그 모습이 엊그제 같은데 세월도 가고 인사도 가고 또 박사님도 가셨습니다.
일평생을 교육에 헌신하신 박사님께서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정년을 마치시고 명예교수로서 후진들을 격려하고 이끌어 오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연건강법에 깊은 이해와 확신을 가지시고 국민보건증진의 길을 넓히는데 진력해 오셨습니다. 그리하여 1982년부터 1993년까지는 우리 건강회의 회장으로서 어려운 길을 개척하는데 선두에 서계셨습니다.
박사님께서는 평생을 높고 깊은 학문의 상아탑에서 지내오셨음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현학적(衒學的)이거나 어렵게 대하는 일이 없으시고 오히려 촌로(村老)와 같이 소탈하고 다정다감한 인품으로 다가오셨습니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것은 노구에도 불구하시고 카메라 앞에서 손수 건강법의 실기를 실연해 주시던 그 모습이 우리들 후진들에게 깊은 감개와 교훈을 남겨주셨습니다.
사석에 앉으시면 담소를 즐기시고 박주의 순배라도 돌 때면 항상 두세잔의 절주로 절도를 넘는 일이 없으셨으니 이와 같은 노변정담에 얽힌 일화가 어디 한두 가지겠습니까.
박사님의 평생의 업적을 말로 하면 하늘에 수놓은 기라성과 같을 것이요, 정겨운 이야기로 엮어 나가자면 강변에 수많은 모래알에 비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 생각하면 사람의 생사라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생이란 일편부운기(一片浮雲起)요, 사란 일편부운멸(一片浮雲滅)이라. 한 목숨 태어남은 한 조각 뜬 구름 생겨남과 같고 한 목숨 스러짐은 한 조각 뜬 구름 스러짐과 같으니 생불생(生不生) 사불사(死不死)라. 애닯다 할 것도 없고 슬퍼할 것도 없다고 했습니다.
이제 박사님께서는 피안(彼岸)에 이르시더라도 이 세상의 고해 바다에서 나고 죽고 병들고 고생하는 중생들을 모두 건져주는 구원의 손이 되어 주시기를 발원합니다.
고려때 나옹선사의 선시를 적어 만장(晩章)을 대신하고자 하오니 부디 열반하시어 영생 복락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 하네
탐욕도 벗어 놓고 성냄도 벗어 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삼가 계남 이명복 박사님의 명복을 빕니다.

배 성 권
[이 게시물은 자연건강님에 의해 2013-06-19 15:54:07 2004년 09월호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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