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커뮤니티 > 건강매거진

건강매거진

6월2면-의학과 의료의 한계와 맹점

  • 자연건강
  • 2009-12-19 15:52:33
  • hit591
  • vote0
  • 118.223.45.178
인간의 생명을 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의학과 의료의 한계와 맹점-

김 흥 국

의학은 진보하고 병은 불어난다
의학이라고 하면 서양의학을 의미할 정도로 현대를 지배하고 있는 서양의학은 역사는 짧지만 눈부신 과학의 발달과 함께 검사방법 등 진단 면에 있어 서는 물론 치료 면에 있어서도, 특히 항생물질이나 외과적 분야에서의 발전에는 획기적인 것이 있다. 그 중에서도 항생물질의 덕택으로 결핵, 티푸스, 폐렴 기타에 의한 사망률이 격감하여 평균수명이 늘어난 공적은 크다.
그러나 병원이 점점 늘어나고 새로운 약이 연달아 등장하는데도 불구하고 뇌일혈, 암, 심근경색, 당뇨병, 신경통, 류머티즘, 위장병, 근시 기타 여러 가지 병이 해를 거듭할수록 증가하는 추세에 있는 것은 어째서일까. 거기에다 나이든 사람에게만 볼 수 있었던 고혈압이나 암을 비롯한 여러가지 성인병이 젊은 층에도 다발하게 되고, 여기에 대하여 별다른 대책이 없는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또 치료 면에서는 축농증과 같이 수술로 일단 고통이 줄거나 기관지천식과 같이 일시적으로 진정되었다가도 왕왕 재발을 면할 수가 없는 일이 많다. 또 어느 안과의 교수가 근시는 숙명적으로 막을 수가 없다고 한탄하고 있는 바와 같이, 예방할 수도 없고 고칠 방법도 없는 병이 결코 적지 않다. 거기에다 섣불리 증상을 완화하려고 대증요법을 쓰면, 어느 정도 증상은 경감되어도 몸 전체적으로 오히려 마이너스를 초래하여 탈리도마이드(thalidmide)화, 스몬(SMON)병(아급성척수시신경증), 스테로이드(steroid) 병, 항생물질병, 기타 여러 가지 의원병까지도 일으킬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단기간의 동물실험으로 부작용이 없었다고 해서 인체에 해가 없다는 보장이 될 수는 없다. 현재 범람하고 있는 약도 몇 년 뒤에는 해로운 부작용을 일으킨다는 것을 알게 될지도 모르고, 그때에 가서 제조를 중지해도 소용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현재 고통을 받고 있는 병자를 앞에 두고 현 단계에서는 이 병은 고칠 수 없다고 그대로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거기에 위험한 신약의 등장에 기대를 걸어 보는 풍조도 생길 것이고, 민간약, 한방약, 식이요법, 침구, 녹즙, 단식 등과 같은 여러 가지 요법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현대의학에서 생각하고 있는 방법이나 치료법에는 거기에 어딘지 결함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대증요법만이 있고 원인요법이 없다
현대의학에서는 병자를 앞에 두고 먼저 병명을 정하는 것이 선결문제로 되어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검사방법으로 병리조직학적인 변화를 중심으로 병명을 정하고, 그런 다음 치료에 들어가는 것이 순서다. 그러나 병명은 병든 결과를 해명하는 것으로 외견상의 일부는 나타낼지 모르지만 왜 병이 되었는가 하는 근본 원인을 알아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눈의 다래끼(麥粒腫)를 예로 들면, 화농균이 원인이라는 것을 알아도 어째서 균의 번식을 허용하게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아무런 표시도 없는 것이다. 따라서 째거나 항생물질의 사용으로 일시적으로 는 나아도 그 근본 원인으로 소급하여 시정하지 않으면 재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환자가 다래끼의 뿌리가 남아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할 정도로 재발을 되풀이 하는 사람도 있다.
또 만성기관지염과 같이 원인불명의 것에 대해서는 예르 들면 부산피질 호르몬을 사용해서 일시적으로 증상은 좋아져도 호르몬은 다른 호르몬과의 균형상태를 유지하면서 생명을 다스리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외부로부터의 투여는 도리어 전신상태에 균형을 잃게 하는 결과가 되기 쉽다. 하물며 병의 근본 원인에 소급하여 근치를 기대하기는 어림도 없다.
당뇨병을 예를 들어도 탄수화물의 섭취를 줄이고 그 대신 단백질로 보급하고, 그래도 혈당치가 내리지 않으면 인슐린 같은 것을 투여하여 혈당치의 하강을 꾀하지만 옛날의 당뇨병과 달라 최근에는 동물식의 영향인지 동맥경화를 합병하는 악성인 것이 많아지고 있다. 그리고 탄수화물의 부족분을 산성식인 동물성식을 포함한 단백질로 대행할 수 있다는 생각에 대해서 이미 의문점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거기다 인슐린을 투여하여 일시저으로 혈당치만을 내려가지고는 근치는커녕 전신의 호르몬의 균형에 이상을 초래하여 피 속에 항인슐린 물질이 생기는 결과가 되어서는 부자연이라고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이 현대의학에서는 어떤 부분적인 증상의 완해(緩解)나 일시적인 치료에 중점을 두기 쉽고, 원인요법이라고 생각되고 있는 항생물질의 투여조차도 다시 병원체(病原體)에 지지 않는 근본요법이 되기는 어려운 것이다.

현대 의료제도의 본질적 결함
현대의 의료 제도를 살펴 보면, 현행의 건강보험 제도하에서는 병에 걸리지 않게 하는 방책에 대해서는 전연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수술을 하는 기술에 대하여 많은 점수를 주고 있다. 또 병을 단기간에 치료하는 것보다는 병을 오래 끌게 하고 투약이 많을수록 점수를 많이 받을 수 있도록 짜여 있다.
한편 일본의 제약회사 같은 경우는 어떤 병에는 어떤 약을 얼마나 쓰고, 보험점수가 몇 점이 된다는 친절한 안내서를 배부하고, 많은 약을 사용하거나 일정한 양을 초과하여 구입하면, 여행에 초대하거나 현금이나 물품으로 의사에게 환원하기도 하는 등의 상술을 취하고, 의사 쪽에서도 이것을 기꺼이 받는 경향도 있어서 부지불식 간에 의료의 타락을 가져오는 큰 원인의 하나로 되어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이렇게 대학이나 공립병원이 신약의 효능실험소화하고, 제약회사의 선전에 협조하는 경향조차 있다는 것은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는 현실이다. 진단만 내려지면 그 다음 단계는 제약회사의 지시에 따라 투약만 하면 된다는 상태로까지 빠지게 된 원인은 병명중심의 현대의학의 질병과 그 치료에 관한 잘못된 사고방식과 건강 보험제도의 본질적인 결함에 그 원인이 대부분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의학·의술·의도와 미신
치료란 다른 데서부터의 힘을 보태 도와주는 것이고, 병에 걸린 근본 원인을 없애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재발을 면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병의 근본원인이 잘못된 생활방식을 시정하여 스스로의 힘으로 낫게 하고 예방하고 건강을 증진하며 진화하는 근본책이 필요하게 된다.
현재의 동서의 의학과 의술은 모두 다만 생명에 관한 자연법칙 속의 상대계와 절대계의 경우 일부분만을 취급하는데 지나지 않는다. 앞으로는 생명에 관한 상대계와 절대계의 모든 법칙까지도 그 속에 받아들여 내용을 넓혀나가지 않으면 안 될 성질의 것이다. 거기까지 가면 더욱 심신의 행복을 가져오는 의학과 의술과 의도(醫道)가 확립될 것이다.
상대계의 법칙에만 준거할 수 있었다고 해서 그것만으로는 마음의 면을 구제하는 안심입명을 비롯한 마음의 건강의 확립은 불가능하다. 이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려고 하는 데서 기적, 신비, 미신 등에 매달리려고 하는 풍조가 생기기 쉽다.
이런 관점에서 니시의학 자연건강법 내지는 특수요법이 우리에게 건강증진과 질병치유의 광명의 길을 제시하게 될 것이다. 이런 시대적 필요에 니시자연의학의 독특한 질병관인 증상즉요법을 믿고 혈액순환 모세관원동력설에 입각한 글로뮈(Glomus)의 부활 활성화를 도와 심신일자의 길을 열어 나갈 때 질병의 고통에서 시달리는 인류에게 광명의 빛을 비추게 될 것이다.(고문·전회장)



식양 인생론-사람의 ‘인생의 설계’

사랑과 애정에
대하여
Georges Ohsawa


사랑 연애 이성을 추구하는 힘, 색의 욕망은 양성(남자다움), 음성(여자다움)이 강하면 강할수록 큰 것이다. 이성을 끌어들이고 이성에게 끌려가는 힘이 크면 클수록 남자로서 혹은 여자로서 완전히 성숙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나이가 되어서도 이성에의 사모가 생기지 않는다면 소년기와 청년 제1기의 식양(食養)에 결점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랑(연애)은 식욕과 같은 자연의 요구다. 이것을 죽이는 것은 부자연이다. 이것을 신성시 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해서 죄악시 하는 것도 이상하다. 자연스런 현상인 것이다.
양성은 끌어들이는 구심력, 음성은 원심력으로 사랑에 있어서는 양성(남자)이 항상 적극적으로 나서서 음성의 여자가 받아들이는 쪽이 되는 것이 본래인 것이다. 청년의 제2기에 들어가면 남자는 마침내 양성의 경향을 나타내고 물직욕, 사업욕, 점유력(占有力)이 왕성해져서 현실주의자가 된다. 여자는 반대로 정신욕, 이상(理想)에의 동경이 왕성해져서 공상주의자가 된다. 그러므로 같은 이성을 추구한다하더라도 남과 여는 역시 그 취향을 달리 하고 있다.
이 애욕시대의 남자는 포획물을 쫓는 사냥꾼과 같이, 사냥개와 같이 산이나 골짜기도 안중에 없고 여자는 달아나는 토끼와 같이 평지보다도 산(음성)에 뛰어오르는 것이 빠르고 또 장기이다. 사냥개는 멀리를 보지 않고 빨리 뛸수록 좋고, 토끼는 빨리 달아날수록 좋은 토끼인 것이다. 토끼를 보아도 쫓지 않는 사냥개나 개를 보아도 달아나지 않는 토끼는 문제다. 병이다. 하물며 개를 보고 꼬리를 치거나 곁으로 다가가는 토끼는 정신이상이 된 토끼든가 토끼의 가죽을 쓴 승냥이다. 눈으로 만든 토끼인지도 모른다. 결혼하면 녹아(죽을) 버릴지도 모른다. 혹은 남자를 잡아먹는다. 이 비밀을 알고 있는 자만이 사랑에, 연애에 성공하게 된다.
이성을 찾는 힘은 완전히 맹목적이다. ‘사랑(연애)은 맹목적이다’ ‘사랑에는 위아래가 없다’ ‘먼것 같으면서 가까운 것이 남녀간의 사이’ ‘반해서 가는 길은 천리도 단숨에’ ‘사랑은 도둑놈’ ‘사랑은 마마자국도 보조개로 보인다’와 같은 말은 그것을 증명한다.
이성을 구하는 힘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인생은 그 지평선을 단숨에 전개시킨다. 점점 복잡 심각한 장면의 막이 열리게 된다. 인간이 이 지구상에 처음으로 나타난 옛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에 이 애욕, 이성을 찾는 힘이 펼치는 즐거운, 슬픈, 굉장한, 아름다운 혹은 추한 그림책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명작, 세계명작 등에 나타나 있는 남녀 애욕의 고통, 고뇌, 탄식, 흐느낌, 통곡 등은 지금도 더욱 그것을 읽는 사람의 마음을 격렬하게, 심하게, 위태롭게 교란시키는 것이 아닌가.
어디 그뿐이겠는가. 작가들이 묘사해내는 애욕뿐만의 세계의 참을 수 없는 절절한 생각, 숨막히는 장면에 이르러서는 독자로 하여금 인생의 의의조차도 의심을 갖게 하는 것이 아닌가. 이들 작품에 묘사된 애욕의 격렬함, 이성을 찾는 힘의 격렬함은 마치 격렬한 전광의 먹구름을 뚫는 것과 같이 큰 대암석을 폭파하는 다이너마이트와 같이 무엇이나 불태우고 작열시키고 폭파하지 않고는 놓아두지 않을 것 같이 보이지만 별이 흐르고 해가 지난 오늘에 와서 보면 얼마나 덧없는 일들이 아니었던가. 그것들은 마치 물의 흐름 속에 꺼져 버렸다가 다시 살아났다가 하는 물버금과 같이 형적조차 없다. 인간의 덧없음, 왜소함, 가없음!
그렇지만 사랑(연애)은 기적이다. 애욕이 없는 인생은 사막과 같은 것이다. 그것은 색채가 없는 평면의 세계일 것이다. 애욕은 점유욕이다. 사랑과 연정 인생에 색채를 주고 깊이를 주고 예술을 만들며 번뇌와 기쁨이 있는 입체의 세계를 전개하는 것이다.
우리들은 이 애욕을 바르게 유도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이 애욕의 핸들을 잘못쓰면 인생은 비참한 것이 된다. 바른 애욕의 생활을 보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애욕, 색욕의 근본, 바른 식양(食養)이 필요하다. 바른 애욕, 광란이나 방탕에 떨어지지 않는 애욕, 즐거운 인생의 첫걸음인 애욕, 강력하고 그러나 자연스럽고 온화하고 봄과 같은 애욕을 기르는 데는 「소년시대의 바른 식양」이 유일한 조건이다. 소년시대에 단것(설탕)을 과다섭취하거나 육류(특히 수육, 계란)를 계속 먹이면 애욕이 없는 가엾은 김이 빠진 맥주와 같은 청년이나 또는 비참한 색욕의 노예와 같은 청년이 되는데 이것은 다음에 소년시대의 식양에 대해서에서 말하기로 한다.
나는 여기서 애욕의 본질이 식욕에 다음가는 자연스런 본능적인 요구로 신성하다고는 않더라도 죄악도 아니라는 것과 그것이 일어나지 않는 인간이나 너무 지나치게 일어나서 그것에 탐닉해 버리는 인간은 어느 것이나 소년시대의 식양이 바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바꾸어 말하면 소년시대에 바른 식양을 한 사람들은 가장 강력한 가장 바른 애욕을 받게 된다. 그것을 증명하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대단히 길어지므로 여기서는 생략한다. 그 증명이 필요한 사람은 옛부터 지금까지 서양이나 동양이나 모든 국토, 민족 사이에서 탄생한 문예적인 작품, 시 소설 극과 영화, 모든 역사, 전기를 읽고 거기에 묘사된 인물의 과거의 「식생활」을 따라서 찾아볼 것이다. 사실에 충실한 뛰어난 작자의 작품이나 역사, 전기는 주인공의 음식물에 대한 기호에 대해서도 충실하고 정확하게 기술하고 있으므로 바로 식양과 애욕의 관계가 어떻게 순치(脣齒, 이와 입술) 의 밀접한 관계가 있는가를 증명해 준다.
[이 게시물은 자연건강님에 의해 2013-06-19 15:53:06 2004년 06월호에서 이동 됨]
게시글 공유 URL복사
댓글[0]

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