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3면-삼가 청암 김흥국 고문 영전에 드립니다.
- 자연건강
- 2009-12-19 15:5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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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 청암 김흥국 고문의 영전에 드립니다
인생이란 무엇입니까! 고희를 넘어서 자주 생각하게 되는 이 즈음, 청암(淸巖) 김흥국 고문께서 유명을 달리하셨다는 부음을 받고 슬픈 마음을 감당하기 어려웠습니다. 돌아가시기 사흘전에 병상을 방문했던 것이 마지막이 될 줄이야 어찌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운명하신 날 아침에 예감이 이상하여 댁에 전화를 걸었지만 받는 이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설마했던 일이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세상사가 모두 무상(無常)하다고는 하지만, 회자정리(會者定離)요 생자필멸(生者必滅)이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허망할 줄은 미쳐 몰랐습니다.
청암 김흥국 고문께서는 본회 초창기에 참여하시어 제5대 회장에 취임하시기까지 수많은 난관을 헤치고 희로애락을 같이 하며 우리 건강회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심혈을 기울이셨습니다. 별칭 우리 삼바가라스(三羽鳥)라고 불리는 청암, 요석, 필자 세 사람이 노변에 걸터 앉아 박주를 기울이며 서로를 위로하고 또 사명감에 불타는 열변을 토하기도 하며 삼심여년을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하루 아침에 이렇게 가시다니 허무하기만 합니다.
청암 고문께서는 일본에도 자주 왕래하시어 서식건강법의 권위라고 할 수 있는 고오다나 와타나베 박사 제씨와 친교를 돈독하게 하시고 우정의 깊이를 더했습니다. 따라서 그들이 한국자연건강회에 기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일본 한남대 스기노 교수 등과 우리측에서는 김흥국 고문, 작가 박경수, 필자 등이 함께 「한일 문화유산보호 보존조약책정 방침」의 기초위원이 되어 활약하기도 했습니다.
생각하면 향년 81세가 짧기만 하고 애석하고 허망하다는 느낌도 듭니다. 그러나 한평생을 법랍(法臘)과 세속으로 나누어 생각하는 불가의 사상을 빌린다면 우리 보통 사람들과 비교할 때 청암 고문께서는 세수(世壽)의 몇배를 누리신 거라고 헤아려 봅니다. 따라서 그 공헌도의 연세로 계산한다면 160세 아니 200세도 넘게 법랍을 누리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가시는 길에 천국의, 극락의 꽃비가 내리기를 간절히 발원하고 기도합니다.
우리 건강회의 발전과 장래를 위하여 마지막으로 청암 고문께서는 당신의 역저서의 저작권을 본회에 기증하셨습니다. 우리 후진들도 그 큰 뜻을 가슴에 새겨 모두 이 길을 따를 것입니다.
인생이란 무엇입니까. 고승의 말씀을 빌리지 않아도 참으로 사는 것이 사는 것이 아니고(生不生), 죽는 것이 죽는 것이 아니라고(死不死) 생각합니다. 청암 고문님의 유지는 우리 한국자연건강회와 더불어 영원히 이 땅위에 전승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는 청암 김흥국 고문의 유지를 높이 받들어 우리 국민의 건강증진을 위하고 본회의 발전을 위하여 혼신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하면서 삼가 명복을 빕니다.
배 성 권
자연의학 서설
서 승 조
쪾니시자연의학의 철학
니시의학은 현재 세상에서 일반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의학과 그 방법이 서로 상반되는 것같이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니시의학은 그 효험을 체험한 적이 없는 사람들, 또는 그 원리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오해를 받고 있다. 적어도 그런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이처럼 종래의 의학상식과 서로 다르기 때문에 니시의학을 실행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반드시 항상 그 본질을 이해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많은 사람들은 오해하고 있거나 다소라도 의문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일반적으로 그 실행을 주저하게 하는 이유이며 참으로 유감스러운 현상이다.
그렇지만 「증상은 요법이다(症狀卽療法)」(The Sympton is the Cure)라는 원리에 입각하여 질환의 원인과 실제의 상황에서 구체적으로 연구하고 체험한다면 니시의학의 주장이 비록 그것이 종래의 개념과 180도 다르다 하더라도 그것이 옳다는 것을 이해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특히 니시의학이 그 방법을 실제의 환자에게 적용하는 경우에는 무릇 이것을 믿든지 믿지 않든지 또는 이해하든지 못하든지 상관없이 자각하든지 여부를 불문하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니시의학의 주장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철학은 참다운 의미를 파악하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인간활동의 일체가 하나의 철학 즉 니시철학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쪾니시 자연의학은 연역적 과학이다
니시의학은 연역적 과학이다. 이들 연역이 입각하고 있는 대전제는 생명이라는 것이 지적(知的)이라는 것, 즉 물질을 창조한 창조주가 존재하고 있어서 물질의 존재 및 그 활동을 관장하고 그 가진 바 일체의 것을 이것에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연역된 많은 이론들은 엄청나게 많은 임상(臨床)에서의 여러 실적으로 입증되어 이제는 실증된 사실이 되어 있다.
니시의학의 이론 및 실제는 이들 실증되고 연역된 이론에 입각하고 있으므로 타당한 것이며 이들 이론은 거의 매년 온갖 방면의 연구에서 계속해서 과학적으로 증명되어 이제는 확실히 과학적 사실이 되어 있다.
쪾용어의 의의
니시의학은 새로 생긴 과학이라는 본질을 감안할 때, 우리들은 니시의학 그 자체의 특유한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연구하는 사람들은 이 점을 잘 알고 있지 않으면 안된다. 종래의 과학에서 정의된 많은 용어는 니시의학에서는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 이 용어들 중에서 약간은 매우 자주 사용되므로 이 책의 첫머리에서 그 의미를 잘 파악해 둘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니시의학에 관한 이론과 실제를 충분히 이해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용어와 명칭은 아래에 주된 것을 들고 나머지는 필요에 따라 본문 속에서 제시할 것이다.
쪾귀납적 추리
논리학에서 부분에서 전체로, 특수에서 일반으로, 개개에서 보편으로의 추리의 동작 혹은 방법, 또는 이렇게 하여 도달한 결과 혹은 추론을 귀납적 추리의 법이라고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귀납법 혹은 에파고게(Epagoge)(주3 참조)는 그 완전한 경우에는 문제의 일반적 취론을 함에 있어서 그 포함하는 모든 사항을 완전히 열거하는 방법에서 성립되는 하나의 종속적 추론의 형식으로서 논의되었다.
그러므로 이것을 단순한 열거에 의한 귀납법이라고 일컫는다. 이 견해를 크게 진전시킨 것이 베이컨의 귀납법 혹은 철학적 귀납법이라고 말하며 부분, 개개, 혹은 종류에 관하여 관측한 혹은 확립한 것을 유추의 근거 위에 그것이 속한 전체에 대하여 확립 혹은 용인된다고 하는 추리의 방법으로 성립된 것이다. 이것을 베이컨(Bacon)의 사변적 귀납법(Speculative induction)이라고 한다.
건강 삼매에
대하여
이 영 규
삼매(三昧)란 말은 불교에서 흔히 도를 수련하는 과정에서 잡념을 버리고 어느 한곳에 정신을 집중할 때 쓰이는 말이라고 한다. 일반인들도 더러 어떤 일에 열중할 때 흔히 들을 수 있는 이야기로서 이를테면 책을 아주 열심히 읽을 때 이를 가리켜 독서삼매경에 들었다고 한다.
필자가 30여년전 투병중에 요양을 위하여 한 사찰에 묵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 사람들은 그 절의 주지스님을 큰스님이라고 했는데 그는 신도들을 향하여 신심이 두터워야 한다며 주로 절을 삼천배씩이나 시키면서 마음속에 신념무적(信念無敵)으로 무장하여 믿음이 철저해지면 어떤 병도 무서울 것이 없다는 가르침을 주었다.
그래서 그 절의 법당에는 절을 할 때마다 수를 헤아리는 아주 긴 염주를 담은 바구니가 절하는 신도 옆에 놓여있는 것을 흔히 볼 수가 있었다. 어느 날 그 절에는 오래 전에 고관을 지냈다는 노신사와 그의 부인이 올라왔다. 관광차 온 것 같지는 않았는데 젊은이가 부인을 부축하는 것으로 보아 건강이 몹시 안좋은 모양이었다. 그래서 나처럼 요양을 위해 그곳에 올라온 것 같았다.
잠시 후 법당 안을 들여다보니 그 부인이 부축을 받으면서 아주 힘겹게 절을 하고 있었다. 아마 주지스님의 권유를 받아 병을 고치려고 삼천 배를 시작한 모양이었다. 걸음도 제대로 못 걷던 부인이 아니었던가.
무리라고 생각이 되었지만 절하는 회수가 거듭되더니 이제는 일배 일배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 합장한 채로 엎드렸다 일어섰다를 잘하는 것이었다. 옆에서 보는 이들로 하여금 안스러움과 함께 기적이라며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하였다. 자율훈련이 잘되고 있다고나 할까. 뿐만 아니라 다음날은 처음부터 부인이 혼자서 절을 잘 해내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어제 이곳에 올라올 때보다 건강이 많이 좋아진 듯 땀 흘리는 얼굴빛은 홍조마저 띠고 있었고 절하는 속도는 건강한 사람 못지 않게 빨라져 가고 있었다.
그것은 정신적 의지가 굳지 않고는 불가능한 힘든 노동이었다. 절 삼매에 흠뻑 바졌다고나 할까. 정신없이 절만 하며 주위에는 눈길하나 주지 않는 무아의 상태에 빠져 있는 듯이 보였다.
바로 그 무렵, 출가한 여식과 며느리가 부인을 문병하기 위해 막 도착했다고 했다. 그들이 도착해 보니 누워 있을 것으로 믿었던 어머니가 절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뿐만 아니라 건강한 사람도 힘든 절을 그것도 빨리빨리 하며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것이었다. 심지어 자기들이 도착한 것도 모른 채 정신 나간 사람처럼 옆도 돌아보지 않고 꾸벅꾸벅 절만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아이구 엄마, 하고 소리를 치며 달려들어 양팔을 붙들고 여인을 주저앉히려 했다. 자식으로서 그 처절한 모습에 안스러움이 북받쳤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절 삼매경에 푹빠져 있던 그 부인은 그 순간 긴장이 한꺼번에 풀린 듯 그 자리에서 기절을 하여 쓰러지고 말았다. 그후 그는 끝내 깨어나지 못했다. 주위에서는 그 부인이 완전 삼매경에 몰입되어 있었다고들 했다.
그후 필자가 건강회복을 위하여 수년동안 계속했을 때의 일이었다.
풍욕을 할 때 돌아가는 테이프가 너무 지루하게 느껴져서 나체로 있는 동안에 경혈 마찰법(달마조신법)을 순서에 따라 실천했더니 지루한 감이 없어졌을 뿐 아니라 오히려 시간이 짧게 느껴져서 풍욕 삼매경에 빠졌다고 스스로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지난 30여년간 자연건강법의 각종 요법에 정신을 집중하여 지속적으로 실천하여 나 자신의 건강을 회복했던 것도 건강삼매에 빠져 있었다고 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되어지기도 했다. 왜냐하면 길고 길었던 세월이 꿈결같이 훌쩍 지나갔기 때문이다.
따라서 건강법 실천에는 의심하지 말고 자신의 병은 반드시 자신이 고칠 수 있다는 신념 속에서 도를 닦는 심정으로 건강삼매에 들 정도에 이르게 되면 틀림없이 빛을 볼 수 있을 것이다.(상임고문)
[이 게시물은 자연건강님에 의해 2013-06-19 15:53:06 2004년 06월호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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