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1면(해진도와 이순신 각서)
- 자연건강
- 2009-12-19 15: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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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진도와 이순신 각서
배 성 권
일본을 대표하는 월간지 「분케이순쥬」가 기획한 세계의 위인 50인선이 있었다. 그 속에 한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단 한 분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올라 있었다.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일본 해군사령관 토고 헤이하치로는 동해해전에서 러시아의 막강한 빨틱함대를 격파함으로써 그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당시 일본 해군 전함의 갑판 위에는 젊은 사관들이 승선하고 있었는데 그들 중에는 두 손을 합장하고 하늘을 우러러 ‘바다를 관장하는 군신(軍神) 이순신 장군이시여! 이번 해전에서 기필코 승리할 수 있게 가피(加被)하여 주십시오’ 하고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다른 분도 아닌 저희 나라 해군을 격파하여 패전에 이르게 한 조선의 명장 이순신 장군을 군신으로 우러러 가피해 달라고 기원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그들 해군사관학교에서 세계의 해전사(海戰史)를 얼마나 정확하고 바르게 가르쳤는가를 짐작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충무공의 전술에서부터 정치적 환경, 인품 인격의 측면에 이르기까지 사실 그대로를 순수하게 가르침으로써 그들 젊은 사관들에게 용맹심을 불러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로써 동해해전은 러시아의 함대를 물리치고 일본 함대가 승리를 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
전승을 축하하기 위하여 그들 조정에서는 토고를 중심으로 축하연을 갖게 되었다. 그러자 대신들 사이에서는 동해해전을 승리로 이끈 토고의 지략과 용맹을 격찬하는 축사가 쏟아져 나왔다.
그 중 한 사람이 “토고 장군은 영국의 넬슨 제독이나 조선의 이순신 장군에 버금가는 훌륭한 장군이십니다.”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토고는 답사에서 “나를 영국의 넬슨 제독에 비겨 주신다면 모르지만 조선의 이순신 장군과 비교를 한다는 것은 가당치도 않습니다.”라고 말하고 “나는 조정과 국민이 하나가 되어 밀어 주었기 때문에 승전할 수 있었지만 조선의 이순신 장군은 많은 박해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끝내는 백의종군으로 나라를 지킨 위대한 장군이요, 군신이며 추앙받아야 마땅한 분으로서 나는 이순신 장군과 비길 바가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후지모의 「이순신 각서」에 의하면 이순신 장군에게는 세계 최초의 철갑선이 있었고 휘하의 장병들이 공에게 귀일하는 인격이 있었으며, 때로는 눈부신 태양과 같이 혹은 활화산과 같이 독전(督戰)을 했고, 어느 때는 촌로와 같은 따뜻한 손길로 전쟁에 시달리는 부하들의 피패하고 상한 마음을 어루만져 주기도 했다.
따라서 충무공이 승전하게 된 것은 정밀기계와 같은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훌륭한 참모진을 휘하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재래의 해전에서는 주로 일자진(一字陣)이나 학익진(鶴翼陣)의 전술을 썼던 해군, 그러나 충무공께서는 새로운 전술을 개발하여 첨자진(尖字陣)을 썼다. 이 첨자진의 특징은 군선이 첩첩으로 대진하고 있어 아무리 강한 적이라도 방어망을 뚫고 들어올 수 없도록 겹겹이 차단하는 전술로 철통같은 작전법이다.
1970년대초 충무공의 「해진도(海陣圖)」가 일본의 고서사(古書肆)에서 발견되어 충무공의 첨자진법이 사실로 확인되었다. 이것을 당시 고베에 살고 있던 동포 박모씨가 수천만원의 거액을 주고 사들여 고국의 해군사관학교에 기증했다.
이 해진도가 지금도 해사 본관에 걸려 있어 충무공의 얼이 우리 젊은 해군사관들로 하여금 용맹충천하여 하늘을 찌르고도 남을 기백을 기르는데 정신적 지주가 되어 있다.
음식이 전쟁의 승패도 좌우한다는 격언이 있다. 식양이 개개인의 건강뿐 아니라 역사의 방향까지도 돌려 놓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무서운 식양의 힘이다.
니시교수는 망간(mg)을 고루 섭취하면 애정이 가득한 온화한 인품을 만든다고 했다. 그 예로서 토고를 들고 있다. 그 반면교사로서 빨틱함대의 사령관인 로진스키를 들었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으로는 그 대표적 인품이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라고 생각한다. 서양의 속담에 망간은 ‘사랑의 묘약’이라고 했다. 이 망간에 대해서는 다음에 언급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한편 문학가(文學街)의 일각에서는 충무공을 제재로 한 소설을 놓고 충무공을 폄훼(貶毁)했다는 논쟁이 일고 있다. 아무리 소설이 흥미로부터 시작한다 해도 민족의 태양으로서 우러르는 충무공 같은 분을 조금이라도 폄훼하는 작품을 쓴다면 그것은 독자의 준엄한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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