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커뮤니티 > 건강매거진

건강매거진

10월-5면(설탕의 해독)

  • 자연건강
  • 2009-12-19 14:56:24
  • hit535
  • vote0
  • 118.223.45.178
슈거 블루스 설탕병-달콤한 마약의 정체
총명한 어린 소년 마아크의 이야기

-무쌍원리-

윌리엄 더프티

필자 윌리엄 더프티는 미국의 저널리스트로서 세계적인 채식주의자요 일본의 국제적 동양의학자인 죠오지 오자와의 「당신들은 모두 삼백이다」와 「설탕의 독 육식의 해」 등을 읽은 것이 계기가 되어 설탕 중독의 중증 상태에서 스스로 탈출했다.
그 후 설탕 문제, 자연식 문제 등을 연구하는 한편 그 동안에 자연식주의의 개척자적인 존재인 여배우 글로리아 스완슨과 결혼했다. 그 후 윌리엄 더프티는 죠오지 오자와의 동양의학적인 치료법의 원리인 음양철학의 「무쌍원리」 등을 탐독하고 현미 곡채식을 실천하여 스스로 설탕 중독에서 헤어나 설탕의 유해성을 널리 홍보하는데 힘쓰고 있다.

나의 어머니는 곧 아흔 살이 된다. 이번에 멕시코에서 뉴욕에 비행기로 돌아오는 도중에 나는 일부러 시카고와 디트로이트를 경유해서 돌아오는 원거리 코스를 택했는데 그것은 어머니와 함께 몇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그날 오후 어머니를 방문한 사람이 또 한 분 있었다. 어머니의 증손 중에서도 가장 어린 남자 아이 마아크였다. 그 날 두 살의 마아크, 마아크의 어머니, 또 그의 할머니 그리고 그의 증조모와 4대가 한 방안에서 얼굴을 맞대었다.
아둔한 백부 빌과 나는 카메라를 가지고 오는 것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그대로 발을 구를 정도로 안타까웠다.
이 날과 같이 4대의 가족이 한 자리에 모인 것은 지금까지 없었던 일이다. 앞으로도 이런 일은 두 번 다시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날이 잊을 수 없는 날이 된 것은 그 때문은 아니었다.
우리 가족 중에서 증손자는 드문 존재는 아니다. 마아크는 열두째가 되는 증손이었다. 마아크는 귀여운 형과 누나가 있으며 많은 사촌 형제 자매가 있다.
그런데 이 마아크에게는 그들에게 없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었다. 나는 이 아이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이 아이에게는 무언가 저항하기 어려운 절대적인 매력이 있었던 것이다.
그의 할머니가 홍차를 만들어 주어서 우리는 즐거운 대화를 가졌다. 그러나 우리들의 대화는 모두가 이 매력 있는 아이의 침묵 앞에서는 평범하고 별볼일 없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마아크가 어머니를 따라서 돌아간 뒤에도 나는 오랫동안 그 아이의 마력에서 빠져 나올 수가 없었다. 그리고 대화는 잘 모르는 이 아이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 버렸던 것이다. 제3종에 접근 조우한 사람과 같이 나는 경외하고는 있지만 막연하게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를 열심히 이해하려고 하고 있었다.
이것은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나는 시대의 격동 속에서 뒤쳐져 버린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이것은 컬츄어 쇽크란 말인가. 아무리 해도 생각이 미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2세대의 할머니들께서도 나처럼 느꼈는가 어떤가, 어째서 그 아이는 지구인이 아닌 다른 별나라 사람과 같이 보이는 것인가라고 물어 보았다.
그랬더니 마아크의 할머니가 아이들을 대하듯이 대답을 했다.
“설탕은 먹지 않는단다.”
저런 왜 남자들은 여자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발견하는데 머리를 싸매고 생각에 골몰하거나 실험을 하면서 많은 고생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인가.
그 할머니는 계속했다.
“마아크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설탕을 먹은 일이 없다네. 우리들 가족 중에서 이런 아이는 처음이지. 그라시는 마아크를 갖기 이전에도 오랫동안 설탕을 전혀 먹지 않았고 임신 중에도 젖을 먹이는 동안에도 설탕을 전혀 입에 대지 않았다네. 자네는 모르고 있었나?”
아니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일시적으로 건망증에 걸렸던 것을 감사하게 생각했다. 왜냐하면 내가 그와 같은 관찰을 했다고 해도 크게 의미는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아크의 할머니가 그렇게 관찰하는 데는 전혀 다른 의미가 있었다. 나와 달라서 그 할머니는 서양의학의 교육과 훈련을 받았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결혼전부터 간호사로 일하였고 지금은 간호사를 가르치는 선생이다. 할머니의 딸도 간호사가 되었다. 남편도 의사였으나 그는 오랜 투병 끝에 죽었다.
할머니는 어떤 의미에서는 자기의 일생을 바친 만능약의 대증요법(對症療法)에 독을 입은 서양 의료 체제의 희생자라고 할 것이다.
그들은 우리들의 친척 중에서 정통적인 의료를 대표하는 일가라고 할 것이다. 나로 말하면 대학도 만족하게 졸업하지 못한 무뢰한의 반역자이며 자신을 ‘명예 퇴직한 설탕 중독자’로서 선전하며 돌아다니면서 기묘한 명성을 얻고 있으며, 이 지구라는 혹성이 슈가 부르스의 위기에 놓여 있다고 경고하려고 하는 광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나에게 그들은 배울 수가 있다. 그리고 우리들은 모두 그래서 잘했다고 생각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물론 미국에서도 생물학적 쇠퇴가 더 진행되고 있으며 표면화 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생물학적 재생도 상당히 진행하고 있다. 우리들의 가족도 다른 많은 가족과 함께 그 운동을 추진하고 있는 일가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은 모두 그렇게 해서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때때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할 필요에 직면하게 되는데 이것은 언제나 어려운 일이다. 내가 우리 가족의 기쁨에 넘치는 원만하고 단란한 모습을 이야기한 것은 이 기쁨을 많은 모든 사람과 나누어 갖고 싶다는 생각에서이며 또 내가 특별히 도움을 받은 죠오지 오사와씨에게 마음 속으로 감사하는 표시이기도 하다.
전세기초 그가 아직 소년이었을 때 그의 모친은 간호사였다. 그 때 마침 역사의 큰 전환기에 서양의 과학과 의학 지식에 의해서 바야흐로 서양의 지적 식민지가 되고 있었다. 그의 모친은 이런 상황에서 서양의학의 교육과 훈련을 받았다.
그러나 그후 얼마 가지 않아서 그녀와 그녀의 세 아이들은 죽고 말았다. 그녀가 믿고 있던 서양의학에 불치의 병으로서 버려진 것이다. 살아남은 10세가 되는 그녀의 아들은 자신도 불치라고 선고받았으나 서양의학에 반기를 들고 근대화의 거친 파도 밑에 공적으로 버림받은 전통적인 동양의학적 치료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고심해서 자기 병을 고친 후 그는 자기의 목숨을 구한 전통적인 의학의 연구에 여생을 바쳤다. 또 한편으로는 제1 차대전 후 그는 파리의 소로본느대학과 파스텔연구소에서 서양의학의 공부를 시작했다.
그가 병에 걸린 덕택으로 세계의 몇백만이라는 사람들이 건강의 문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쉬지 않고 쓰고 여행하고 강연하는 일로 인해서 만물은 어떻게 해서 그 대립물에 변이(變異)하는가 하는 음양의 무쌍원리를 우리들에게 이해시키려고 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처음에 이 무쌍원리가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책이 처음 출판되고 그가 필연적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서 간단히 의견을 말했을 때 그것은 예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의 예언은 모두가 적중한 것이다.
이 압도적인 정확함이 이 무쌍원리의 재검토와 이해를 우리들에게 재촉한 것이다.
[이 게시물은 자연건강님에 의해 2013-06-19 15:50:56 2003년 10월호에서 이동 됨]
게시글 공유 URL복사
댓글[0]

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