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인간의 비극은 불건강에서
- 자연건강
- 2009-12-19 13:2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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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비극은 불건강에서
배 성 권
페르샤의 격언에 「건강은 천의 행복을 가진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 이것은 건강보다 더한 행복이 없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대하소설 「전쟁과 평화」 등을 쓴 러시아의 대문호 레오
톨스토이는 자신의 등신대보다도 더 많은 작품을 썼다.
그러나 그는 만년에 이르러 걸작을 쓰기보다는 전쟁과 빈곤을
없애고 평화를 길이 세우려는 의도에서 소책자를 많이 썼다.
그렇지만 그의 생애는 어떠하였던가. 톨스토이가 82세가 되던 해, 1910년 러시아의 어느 추운 겨울날, 눈보라가 쏟아지는 밤에 몰래 집을 나와 어디론가 도망해 버렸다.
일주일 후에야 찾고 보니 어떤 시골 정거장에서 폐렴으로 죽어
있었다.
그의 마지막 유언은 「아내를 못오게 하라」는 것이었는데 이것은 역사적인 큰 비극이었다.
결혼 초년에는 그처럼 행복스러운 가정이 없었다.
톨스토이가 집필한 수 만장의 원고지를 혼자 맡아서 정서해 줄
정도로 그의 아내는 양처였다.
그러나 40여년이 지난 뒤 톨스토이는 그 부인의 그림자도 똑바로 볼 수가 없었다.
그것은 어찌된 일인가.
한 여인의 불건강이 당대의 위대한 문호요 사상가였던 톨스토이를 근본적으로 좌절시켜 버린 것이다.
그 부인의 병상을 진찰한 의사의 진단서가 발굴되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그 여인을 오래 정신적 혼란 속에 살게 한 것은
갑상선증후군이 아니었던가 생각된다.
니시 교수는 내분비선이 인간의 정신생활뿐 아니라 타고난 개성이나 개인의 성격까지도 바꿀 수 있다고 내다 보았다.
또한 도덕의 영역에서도 종래와 같이 개념적 표준으로만 인간 행동을 비판하던 형식주의가 인간의 생리적 내분비선의 과학적 입장에서 비판하는 새로운 도덕적 규준에 의해서 수정될 날이 머지 않았다고 전망했다.
만년에 톨스토이가 정신적으로 크게 전향하여 인류의 정신계와
사상계에 남긴 많은 업적들은 모두 소책자에 적어 전파했기 때문에 오늘날 거의 전하지 않는 안타까움이 있다.
톨스토이의 위대한 사상은 인도의 독립의 아버지로 세기의
성웅으로 추앙받는 마하트마 간디에게 영향을 주어 그로 하여금 톨스토이 농장」을 설립케 했고 비폭력 무저항주의를 실천에 옮기도록 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가. 그의 사생활은 에이브 링컨에 버금갈 정도로 참담했다. 그렇지만 인도적인 면에서는 더욱 거장의 모습을
들어냈으니 다음의 일화에서 그것을 엿볼 수 있다.
톨스토이에게는 앞을 못보는 맹목의 친구가 하나 있었다. 그는 친구의 고통을 이해하고 동참하기 위하여 사흘 동안을 눈을 감고 맹목의 생활을 체험한 일도 있다.
경기도 어느 시골에 이동선이라는 분은 그의 아내가 교통사고로
실명하자 자신도 그 고통을 분담하기 위해 밤에 등불을 켜지 않고 장님같은 생활을 한다고 했다.
처음에는 여기저기 세간살이 등에 부딪혀서 많은 상처를 입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했다는 눈물겨운 이야기이다.
미국 보건성에서 국내 각지에 산재해 있는 수많은 빈민굴에 사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그들 모두가 빈민굴에 빠지게 된 첫째 요인이 불건강 즉 질병이 원인이었다고 한다.
지난번 대구 지하철 방화 사건을 보고 또한번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것은 이 무서운 참사가 한 불건강한 병자의 소행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불건강이 제악(諸惡)의 원인이 된다. 죠지 오사와는 작은 병에서
부터 난치병, 한센병(Hansen病)에 이르기까지 모든 질병은 천형병이라고 규정했다.
그렇다면 건강법의 진수는 무엇인가. 그것은 사랑과 자비의 실천에 있다. 따라서 건강을 위해서 운동을 한다고 생각하기 전에 정신을 위해서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끝으로 한 말씀.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와 같다.―고린도전서’
(회장)
[이 게시물은 자연건강님에 의해 2013-06-19 15:42:10 2003년 04월호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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