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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 새삶을 찾게 해준 자연건강법

  • 자연건강
  • 2009-12-19 13: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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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삶을 찾게 해준
한국자연건강회

강 혜 숙

절망과 고통 속에서 희망을 발견했을 때의 그 기쁨이란… 39세때, 벌써 17년전의 일이다.
몸이 그 지경이 된 것은 인과응보였다. 몸은 살아온 삶을 정확하게 증명해 주니까.
최선을 다한 것이 어리석게도 지독한 일중독 환자로 산 것이다. 거기서 오는 스트레스와 나쁜 음식만 좋아하고 과식하였다. 늘 생기발랄하고 건강하다고 믿었던 내가 36세의 늦은 출산으로 질병이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임신중독증. 그 고통을 어찌 말로 다할까. 몸은 부었고 고열로 입은 마르고 혈압이 계속 올랐다. 나중엔 내쉬는 숨이 턱턱막혀 할딱대었고 숨은 한번만이라도 편히 쉬어 봤으면 하는 게 소원이었다. 누우면 더욱 심해 기대어 지냈고 고통으로 잠도 못잤다.
목과 머릿속 혈관이 무언가에 꽉막힌 것 같았고 뇌속에서 피도는 소리가 탕탕하고 어찌나 크게 들리는지 사람과의 대화소리 보다 더 컸고 그 압력으로 맥박칠 때마다 머리가 기우뚱 기우뚱 흔들릴 지경이었다.
말도 할 수 없고 움직이는 것도 겁이 났다. 한번만 펑하면 그대로 갈 지경이었다. 병원장이 직접 간호사들을 대동하고 자주 들렀다. 그러나 진료는 내게 고통만 가중시켜 주었다.
혈압을 잴때가 제일 무서웠다. 그들의 긴장된 표정, 그리고 돌아서서 혀를 쏙 내밀고 두려워하던 얼굴들. 질식할 것 같았다. 1분 1초가 어찌될지 모르는 판에 서울의 큰 병원으로 가라니… 생각하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다. 그후 회복도 잘안되고 몸은 온갖 질병의 온상이었다.
감기가 들면 남들은 며칠간 앓으면 나는 몇달을 심하게 앓았다. 저항력이 소진상태라 낫기도 전에 또 다른 병… 또 다른 병… 병마가 꼬리를 물고 괴롭혔다. 쌓이는 약봉지, 병원, 한의원…. 곳곳에 다녔지만 소용이 없었다. ‘암이 아닐까’ 늘 두려웠다. 의학서적도 뒤져보았으나 ‘원인을 모른다’니.
그러던 어느날 강연 안내 문구를 보았다. ‘암도 낫는다’ 귀가 번쩍 띄었다. 자연건강회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어둠 속을 헤매다 발견한 빛이었다.
정보의 홍수속에서도 자연건강회에서는 진보적이고 훌륭한 책들만 골라주셨고 읽을수록 놀라웠고 알고 싶었다. 2급, 1급 교육과 생채식 수련회에도 수차례 참석하였다.
집에서 40여일간 생채식을 해보기도 하였다. 음식의 질이 바뀌었고 현미도시락을 싸들고 다녔다. 처음 아침을 굶을 때는 학교에서 허리가 꺾일듯 기진맥진 하였다. 그래도 버티었다. ‘자연스럽게’ ‘점진적으로’ 하지 못하고 빨리 낫고자 하는 ‘욕심’이 앞섰다.
이틀쯤 굶으면 잠도 안오고 머릿속엔 그 좋아하던 파이빵이 밤새 머릿속에 어른거렸다. 못참고 달려가 잔뜩…, 그리고 후회….
제과점으로 들어가 망설이다가 구경만 하고 나오기도 하고 또 어느땐 사갖고는 갈등하다 이웃에게 주어버리기도 하고…. 수없는 실패를 하면서 나 자신에게 실망하기도 하였다.
어려서부터 심계항진이 있었으나 수십년 그것이 병인줄도 모르고 지냈는데 없어져 갔고 심하던 빈혈도 사라져 갔다. 부정맥도 통풍증세의 엄지 발가락도 편해져 갔다. 머리 아픈 것은 언제 나았을까? 자연건강법은 느리고 지루하지만 알지 못하는 사이에 차츰 나아갔다.
10년전 쯤엔 관절이 아파 걸을 수 없어 정형외과에 갔더니 ‘앞으로 무용은 할 수 없다’고 절망적인 말을 하였다.
당장 자연건강회에 전화를 했더니 이영규 고문님이 ‘왜 못합니까’ 하시며 방법을 친절하게 일러 주셨다.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것도 나아갔다.
이후 병원을 믿지 않고 자연건강회는 나의 주치의가 되었다. 자신이 생겼다. 이젠 암도 두렵지가 않았다. 그런데 믿는 데가 생기니 나태해졌을까. 바빠지자 느슨해지기 시작하였다.
공연 연습으로 밤늦도록 몰두하였고 휴일도 방학도 없었다. 밤잠 설치는 날도 많았다. 공연이 잘되어 요구가 많아지자 몸은 몇개가 있어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전국을 돌며 숱한 공연, 사회운동, 교육개혁운동, 과로, 과식…. 2년전 급기야는 쓰러지고 말았다. 지칠때면 며칠 단식하고 나면 회복이 되었는데 몇년전부터는 단식하면 탈진해 버렸다. 그리고 회복이 안되어 한동안 고생하였다.
냉온욕후면 몸이 춥고 파랗게 변하여 회복이 안되었다. 소화도 배변도 점점 안되었다. 이젠 자연건강의 약발도 안들으니 꼼짝없이 죽나보다 하고 또다시 절망하였다.
온몸은 누렇게 탁기서린 황달이 깊어갔다. 머릿속이 찌르듯 아팠고 우울증, 비관, 원망…. 정신력은 누구보다 강하다고 믿었는데 계속 무너지니 자신을 잃어갔다. 온몸은 싸늘해져 여름에도 추웠고 또 더위도 못견디었다. 더위에 노인들이 이래서 죽는구나를 실감하였다.
눈에는 총기가 사라지고 깜박이는 것도 힘겨울 지경이고 눈에 거미줄을 친 것처럼 갑갑해 종일 비벼대었다. 깜박일 때마다 왼쪽 눈꺼풀이 먼저 감기고 또 늦게 떠졌다.
온몸에선 식은 땀이 줄줄 흘렀다. 몸은 몹시 괴롭고 아팠다. 간도 아프고 목소리도 안나왔다. 말할 기력이 없어 사람을 보면 피해야 했다. 유연하던 몸은 점점 굳어갔다. 척추가 아팠고 경추 흉추 전체가 굳었고 고개를 돌릴 수도 없었다.
목과 가슴이 꽉막혀 답답했고 머리도 정지해 버린 것 같았다. 건강기 벨트를 온몸에 대면 견딜 수 없을 만큼 가려웠고 피부엔 상처가 났다. 상처는 잘 아물지도않았다.
판단력도 사고력도 굳어갔고 운전중 사거리에서 ‘좌회전을 어떻게 하는 거지?’ 할 지경이었고 졸며 운전하였다. 아무리 졸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고 꼬집고 때려도 소용이 없었다. 이도 약해져 전체가 흔들렸다.
급기야는 밥을 한술도 먹을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 먹으면 소화가 안되고 굶으면 탈진하는, 굶을 수도 먹을 수도 없게 된 것이다. 갈데까지 간 것이었다.
자연건강생활원의 신영호 선생님께 상담을 하니 낫는다고 하셔서 입원을 하였다. 2000년 7월이었다. 8개월간의 입원생활은 정말 하루하루가 사투였다. 풍욕도 하루 7~10회씩 하고 모든 것을 적극적으로 하였다.
몸이 나빠 생채식도 단식도 할 수 없었다. 암환자들도 하는데…. 하긴 나도 암인지도 모른다. 병원은 가지 않았다. 친지들이 큰 병원 가서 정밀검사 해보라는 권고가 제일 듣기 싫었다. 하도 많이 들어 나중엔 짜증을 내었다.
우리 이웃에 나보다도 증상이 훨씬 덜한 분도 내말을 듣지 않고 병원에 의존해 죽어가는 것을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죽을 오래 먹었고 차츰 현미밥으로 바꾸었다. 기지개만 켜도 간이 쪼개지는 것 같았고 탈진해 버렸다. 입에선 썩은 내가 났고 몸에서도 악취가 났다. 방귀나 대변도 악취가 났다.
몸은 35kg까지 갔는데 또 천근으로 무거워서 축늘어져 고개들 힘도 없어 벽에 기대어 앉았다. 너무 힘들어 친지들의 병문안도 받을 수 없었다.
손톱 발톱도 얇아져 꺾이고 부러지고…. 머리카락은 우수수 빠졌고 머릿속이 훤히 들여다 보였다. 남은 머리카락도 너무 가늘고 힘이 없어 뚝뚝 끊어졌다. 윤기도 없었다. 명현으로 괴로워 밤을 지샌적도 많았다.
온몸이 가려워 피가 나도록 긁었다. 얼굴 절반이 붓고 일그러져 흉한 모습일 때도 있었고 심계항진이 심해져 불안 초조를 견디기 어려워 화를 잘내었다. 참으로 해도 소용이 없었다.
장마비가 심하여 가스는 계속 차는데 아무리 힘을 주어도 가스가 안나왔다. 악몽에 시달렸다. 자연건강법에 확신이 있는데도 죽음이 자꾸 엄습하여 두려웠다. 한때는 사고력이 마비되어 죽음조차 아무런 느낌이 없이 다가온 때가 있었다. 그때에 비하면 진일보 했다고 위안삼을까.
‘정말 나을 수 있을까요?’ 자꾸 확인하였고 ‘그럼요’ 하시는 선생님의 넉넉한 웃음은 많은 위안이 되었다.
귀가하여 1년 넘게 섭생하였다. 지난 8월엔 본회에서의 예산수련회에 참가하였다. 재충전도 할겸 고오다의원 식사를 구체적으로 체험해 보고 싶어서였다. 주변분들께도 권하여 우리 세자매와 이웃 한 분 등 넷이 갔다. 자연건강회 선생님들을 만나면 언제나 푸근하고 좋다. 봉사하는 자세로 모두들 따뜻하고 친절하시다.
생현미가루식이 처음엔 먹기 힘들었으나 먹을수록 맛이 있었다. 차츰 모두들 활력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귀가해서도 하루 한끼 또는 두끼를 생현미가루식을 했다.
두부는 있을 때만 먹었다. 시중의 두부는 거의 수입콩이므로 믿을 수 없어서였다. 대신 반찬을 함께 먹었다. 될수록 자연의 것을 날로 먹으려 노력하였다.
추석이란 복병을 만나 과식과 사식에 빠지기도 하고 사람들을 만날땐 반가움이 앞서 마음이 풀어지기도 하였다.
생현미가루식은 현미 잡곡밥을 능가하였다. 회복의 속도가 빨랐다. 이젠 냉온욕에도 지치지 않고 피부색도 나아간다. 소화와 배변도 좋아져 간다. 하늘은 내게 두번이나 기회를 주셨다.
이젠 정말 겸허한 자세로 제2의 삶을 살아가고자 한다. 마음에서 욕심을 빼내는 것이 제일 어렵다. 부패하고 병든 인간이 만든 오만한 문명사회 속에서 우리는 모두 병들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 살고 있다. 이에 대한 근본적 반성과 문명사적 전환없이 나와 우리, 그리고 인류의 참다운 미래는 없다.
대우주 속에서 보면 나는 티끌보다 작고 자연의 일부라는 것, 그래서 그 순리대로 삶을 살고자 할 때 비로소 제2의 삶의 출발점에 선 것이다. 자! 이제 새 출발이다.
자연은 최대의 스승이다. 그 실천적 삶의 길로 인도해 주신 자연건강회의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청주대학교 교수)
[이 게시물은 자연건강님에 의해 2013-06-19 15:40:16 2002년 12월호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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