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호-유기농법으로 배운 기쁨
- 자연건강
- 2009-12-19 12:3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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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농법으로 배운
삶의 기쁨
한 성 우
자연건강법을 알게 된 지도 4년이 되었다. 각종 행사와 지도편달 안내로 건강에 관심이 많아졌다. 하고 싶은 일이 많았지만 채소를 재배하고 싶었다.
공허한 도시의 옥상에 고추나 상추 등 채소재배 하는 것을 여러해 전부터 본적이 있지만 왠지 정감이 가지 않았다.
최근 몇년 전부터 자연에 가장 가까운 농작물을 재배하고 싶었지만 뒤늦게 실행에 들어갔다. 이른 봄부터 삽으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90년만의 가뭄으로 조기에 씨앗을 뿌렸지만 40일이 지나도 싹이 나지 않았다. 어수선한 기분이었다. 이제와서 다시 씨앗을 뿌릴 수도 없었다.
5월초 드디어 애타게 기다리던 단비가 대지를 촉촉히 적셨다. 2~3일후 씨앗은 굵은 씨앗부터 싹이나서 제일 작은 씨았까지 신기하게 파릇파릇 싹이 났다.
즐거운 마음으로 하루하루 채소와 더불어 마음도 싱그러웠다. 한달이 되었을까. 산소 빈터에 개간한 땅이라 인간의 온기가 닿지 않은 자연그대로 땅속에는 벌레의 천국이었다.
드디어 채소에 이름 모를 벌레가 발생되었다. 전혀 오염되지 않은 땅이라 처음에는 반가움이 앞섰으나 벌레가 많아질수록 내심 걱정이었다. 사실 벌레와 한판의 승부는 이미 시작된 셈이었다.
늦봄은 수월했으나 초여름부터 시작되어 장마철 이후에 절정에 도달했다. 사흘에 한번은 도시락을 싸들고 벌레를 이쑤시게, 산적꽂이 등으로 조심스럽게 잡아냈다.
상처난 잎 중앙으로 어린 새순이 다시 솟아났다. 처음에는 잎이 적어 소요시간이 적게 걸렸으나 점차 벌레가 맛있고 부드러운 속잎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 일이 많아졌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고생한 것만 해도 엄청난 힘을 소모했는데 해지는 줄 모르고 벌레잡기는 사흘에 한번 계속되었다.
특히 잎이 부드럽고 단맛이 있는 채소는 아주 벌레가 많았다. 돌산갓, 양배추, 브루컬리, 청경채 등이었고 쓴맛이 강한 치커리 종류, 뿌리채소류, 잎이 거친 가지, 호박, 박 등에는 벌레가 거의 없었다.
당근 우엉, 고구마 곡류인 콩, 율무, 수수 기타 등은 자연적으로 수월하게 컸기 때문에 볼때마다 반갑고 여간 고마운게 아니었다. 사실 세계적으로 많은 농작물 중에 자기가 직접 키워서 재배한 작물은 그 어떤 것 하고도 바꿀 수 없는 돈으로 환산이 안되는 귀중한 생명의 근원 그 자체였다.
기쁨과 희망을 주고 미래의 탄탄한대로 허리를 연결하는 녹색의 푸른 채소는 척추에 많은 혈액을 공급하는 심장이었다.
채소를 보면 볼수록 형형색색의 조화로움에 눈이 밝아지고 맑은 산소처럼 신선한 향기에 코가 깨끗해지며 또한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본능, 오묘한 천연의 맛에 얼굴 전체가 수많은 근육운동으로 아름다워지는 일석삼조의 효과뿐이겠는가.
오직 삽으로만 다시 땅을 깊게 파고 또 씨앗을 뿌리는 바쁜 나날이 계속되어 동네 사람들이 볼 때에는 별 대수롭지 않은 일에 시간을 낭비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지만 아무 욕심없이 뿌린대로 거두고 자연에 법칙에 순응하여 겸손을 배우며 꾸밈도 없는 깊은 산속에 억겁을 흐르는 물속에 투영된 바위 같이 물속에 흘러가는 구름처럼 마음이 평화로운 태초의 인간의 모습으로 소생되는 기분이 든다.
도시의 뿌옇게 흩어진 빌딩산맥이 잠시 잊혀지는데 동네 어른신께서 부르신다. 항상 “밭에 가나.” 하는 말 대신에 “열심히 하게.” 하고 격려해 주신다.
연일 계속되는 장마비로 한여름이 성큼 다가와 어린이 팔뚝만한 오이는 꽃피고 5일이면 상큼한 오이냉국으로 시원하고 향긋하다. 이따금씩 살갗을 파고드는 한낮 태양의 강렬한 빛으로 호박잎 오이잎들은 축축늘어졌지만 시련을 견디고 이튿날 아침에 또다른 잎채소류와 함께 싱싱하고 투툼하게 살이 쪄있었다. 수확하고 다시 씨를 뿌리고 벌레잡고 다품종 극소량으로 일은 많았지만 재미가 여간 아니었다.
더위와 함께 땀은 비오듯 쏟아져 몸은 새털처럼 가볍고 몸안에 독소배출과 혈액순환이 원활하니 곧 샤워하고 저녁식사땐 마음이 넉넉해진다.
채소를 심을 땐 보름사이로 주기적으로 조금씩 심어야 맛있고 부드러운 채소를 수시로 먹을 수 있고, 벌레가 심한 채소는 늦여름에 재배기간이 긴 것은한여름에 각각 파종하여 성장속도도 빠르고 수확기에 작황도 좋은 것 같다.
벌레잡기가 언제나 가능한 집옥상에 일조량과 통풍이 좋으므로 좁은 공간에서 소출이 많은 양배추와 양상추를 심어보았다. 특히 양배추는 큰 시루나 큰 고무통에 심어야 제격이다.
발효퇴비, 음식찌꺼기, 인뇨 등을 사용하였더니 잘자라고 마음도 항상 흐뭇했다. 물론 가지, 오이, 고추도 심었다. 다음해엔 브루컬리를 심어볼 예정이다.
바쁜 현대인들이 식용, 관상용으로 시간을 잘 활용하여 가꾸어 볼 만한 것 같다. 날씨가 조석으로 서늘할 즈음 속이 꽉찬 하얀박과 붉은 홍고추가 구수한 된장찌게나 청국장으로 전통의 얼이 담긴 한국의 대표 음식, 한국인의 힘의 원천, 건강의 척도, 늘 좋은 음식이 철따라 가까이 있다.
어느덧 생명체들이 분주하게 한 해를 마감하고 다음 해를 기약하듯이 그많은 벌레들도 이제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급변하는 이 시대에 수작업으로 채소재배를 한다는 것은 미흡한 점이 너무나 많았다. 전문기관 단체나 유기농법 재배를 체계적으로 하는 곳에서 정확히 배워서 품질향상과 소출면에서 우수한 농작물을 수확하고 같이 동참해서 채소도 가꾸어 나누어 먹고 토론과 연구를 함께하는 동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본회 청년회원)
건강하게 살기 위한
약의 상식
다카하시 고세이
이 글은 1976년 「NHSHI의학」지 3월호부터 6월호에 게재된 전 일본 동경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다카하시 고세이 박사의 강연록을 전문 번역한 것입니다.
다카하시 박사는 「약을 감사하는 국민운동의 회」를 창립했으며 최초로 현대의학의 「의학개론」을 써서 동경대학교 출판부에서 간행한 바 있습니다.
다른 저서로는 「보건약을 진단한다」 「아리나민의 정체」 「사회속의 의학」 「한방의 인식」 「한약의 정체를 알고 싶다」 등의 역저가 있습니다.
늘어난 기형아의 희귀병
지금 소개받은 제가 소속하는 동대병원(東大病院)의 물료내과(物療內科)는 실은 물리 요법이 주인 내과이지만 나는 그다지 물리 요법 쪽은 하지 않습니다. 약간 전기 치료쪽은 하였습니다만 건강법을 포함한 물리 요법에는 아직 손을 못대고, 오로지 현대의학의 중심이 되어 있는 화학요법 쪽의 연구와 비판을 하고 있는 단계입니다.
1941년에 졸업, 전쟁과 더불어 의사생활을 시작한 셈인데 그후 1961년까지의 20년 간에는 약이 아무래도 수상하다는 점에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대단히 멍청하게 지내 온 셈입니다. 또 그간 약의 사용법이 좋지 않아서 환자에게 폐가 된 일도 있었지 않았겠나 하고 반성하고 있습니다만 1961년 무렵까지는 그렇게 나쁜 약이라는 것이 많지 않았던 것입니다.
옛부터 약은 많이 있었습니다만, 전쟁 전의 약이라고 하는 것은 효과도 적은 대신에 해도 적었던 것입니다. 정말로 위험한 약이라는 것은 몇 종류 뿐이어서 그것만 주의하고 있으면, 결코 약으로 환자를 크게 괴롭히는 일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역시 1955년 전후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1950, 1951년 쯤의 전후 조금 자리잡혀 갈 때, 즉 1951년에 구론산이 나왔습니다만 그것을 시작으로 1954년에는 아리나민이 나왔고, 다시 치옥탄, 아스파라 기타 잇달아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대체로 1955년에서 65년의 일로, 지금 우리가 마시고 있는 공기로부터 물, 음식물 등이 극도로 화학 물질로 오염되기 시작한 것이 1955년 쯤부터 입니다.
일본의 젊은이들이 낳는 애기 중에 어쩐지 손발에 장해가 있는 애기가 하나씩 둘씩 늘어나고 있다고 말이 많지만, 확실한 것은 사산계(死産屆) 중에 기재되어 있는 애기의 기형이 1955년까지는 좀 주는 경향이었습니다.
전쟁 중에는 이상한 것을 먹든가 하였지만, 겨우 해방이 되어서 그럭저럭 일반적인 것을 먹을 수 있는 상태가 된 때문인지, 1950년에서 55년에 걸쳐서 사산계 중의 기형아는 도리어 좋아져 있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1955년부터 강세로 늘어나서, 55년 쯤에는 300명에 1명 정도였던 기형아(뇌가 없는 애기든가 등뼈가 갈라져 있는 애기)가 지금에는 50명에 1명까지 늘어나 있습니다.
이것은 4개월 이후의 사산의 이야기인데, 8개월이 되어서 사산하는 애기는 더 기형율이 높습니다. 그때까지는 기형이 보다 더 완성되기 때문인데, 이 임신 8개월 이후의 사산계를 보고 있으며 55년에는 30명에 하나 정도였던 것이 지금은 10명에 하나라는 식으로 늘고 있습니다.
그것이 늘어나는 정도가 아니라 곧바로 몇배로도 신장되어 있습니다. 이대로 가면 21세기 초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소름이 끼칠 듯한 곧바른 커어브입니다. 그런 상황도 모두 55년 초부터 시작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약이라는 것이 어쩐지 이상하다는 점에 주의가 가지 않은 것도 어떤 의미에 있어서는 부득이한 일이였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때에는 그다지 나쁜 약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55년 무렵부터 심한 상태가 일어났는데 58년에 허가되어 59년부터 사용된 약 살리드마이드, 저 임신부가 마신 입덧 정지의 약이 흡수되어 태반을 통하여 바로 애기의 손발이 자랄 시기에 그 곳을 때려서 손발이 자라지 못하게 되어 버렸습니다.
이런 애기가 일본에는 4,5천 명이나 5,6천 명 태어나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신고되어 있는 것은 1천 명 정도, 현재까지 부자유스러우면서도 지금 소학교 상급생이거나 중학교에 들어 있을 아이들은 200명 정도입니다.
또 키노포름, 위장약 중에 아무렇게나 넣어졌던 세균을 죽이는 약, 세균도 생물이므로 그렇게 마구 죽여서 좋을 리는 없습니다. 하물며 자기 몸 속에 있는 세균을 죽이려고 하면 사람도 당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지 않느냐 하고 부처님이라면 꼭 말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만, 일본에서는 되도록 약을 세게 하려고 하여, 모든 소화제, 캬베진 기타 백 몇 십 종류의 위장약 속에 외국(특히 미국)에서는 아미바 적리(赤痢)라는 가장 흉악한 질병 이외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것같은 키노포름이라는 강력한 약을 넣어버린 셈입니다. 와카마쯔인가 하는 것 중에도 들어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그것을 구하여 마신 사람, 혹은 의사에게서 받아 마신 사람들이 창자 속의 세균은 죽었지만, 그 독물이 몸속에 흡수되어 신경을 치는 바람에 척수(脊髓)가 마비되고, 눈이 보이지 않게 되어, 심한 사람들은 죽게 되는 스몬병에 걸려 버렸습니다.
스몬병 환자는 공칭(公稱) 1만 명이라고 하지만 어쩌면 가벼운 사람까지 합하면 2만 명 정도로 되어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의약품의 문제만이 아니고 마침 같은 때에 미즈마타 질소 회사가 흘려버린 수은으로 미즈마타 병이 생겨나고, 혹은 욧가이찌의 공장의 굴뚝에서 나오는 가스 때문에 욧가이찌 천식이 일어나고, 혹은 키미오카 광산에서 흘려내리는 카드미움으로 이타이이타병이 일어나고 하는 이런 일들과 거의 함께 일어나고 있습니다.
약해에 의한 일본의 침몰
이런 점에 있어서 일본의 우리들이 건강하게 사는 기초라는 것이, 의약품 편으로도 일상 생활 속에서도 함께 붕괴에 임박하게 되었다는 것은 55년부터라는 것으로 됩니다.
특히 식품에 관하여서는 PCB든가 수은 등도 여러 가지로 운운되고 있지만, 재작년부터 문제가 된 햄(돼지고기의 넓적다리 살 등을 소금에 절여 훈제한 것), 소시지(소나 돼지 창자에 여러 가지 재료를 다져 넣어 만든 식품), 카마보꼬(생선의 살을 으깨어 조미료를 섞어 쪄서 굳힌 식품), 한벤(다진 생선살에 마, 쌀가루를 섞어서 찐 말랑말랑한 식품), 치꾸와(으깬 생선살을 동그랗게 빚어 대나무 꼬챙이에 꿰어서 구운 것), 두부 등을 썩지 않도록 하기 위해 첨가되고 있던 AF2라는 합성살균제, 이것이 또 대단히 무서운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만, 저와 같은 마치 원수폭(原水爆)의 죽음의 재 비슷한 것을 연간 10t 정도나 우리들은 음식물에 발라서 먹고 있었던 셈입니다.
[이 게시물은 자연건강님에 의해 2013-06-19 15:37:33 2002년 04월호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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