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호-위암을 극복하며(투병기)
- 자연건강
- 2009-12-19 12:3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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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투병 생활기
김 태 만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모두들 건강하게 잘 지내시죠? 저는 경기도 성남에 사는 1948년 2월 15일생인 김태만(당 45세)입니다.
저는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경상남도 복싱 학생대표로 선발된 바 있었고 태권도도 68년도에 국가공인 3단(무덕관 소속) 자격증과 동시에 태권도 사범자격증을 수료받은 신체건강한 대한민국의 씩씩한 남아였습니다. 지금도 저희 집에는 단증과 상패가 걸려 있습니다.
저는 성남시에서 조그마한 가계를 운영한 바도 있고 공직에서도 4~5년간 근무한 바도 있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이상과 현실이 잘맞지 않아 술과 담배를 남보다 조금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술은 하루에 2~3병정도 마셨고 담배는 2갑정도를 피우게 되었습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날에는 술은 기억이 끊길 정도로 마셨으며 담배는 갑절로 피웠습니다. 이런 나날이 점점 더 심해져서 몇년 후에는 365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마실 정도였습니다.(술은 자주 마시니까 점점 더 먹게 되었습니다.)
저의 건강만 믿고 마시고 피워댔으니 오장육부가 배겨내겠습니까. 지금 생각하면 끔찍한 일입니다. 이런 식으로 생활하게 된 햇수가 약 10년정도 지속이 되었습니다.(이것만 보더라도 저의 체력과 건강이 얼마나 좋았나 짐작이 가지 않습니까?) 그러면서도 일은 계속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1999년 4월 어느날 근무중에 갑자기 이마에 땀이 흐르고 위 부위에 통증이 와서 성남 중앙병원에 가서 1차검진을 받게 되었습니다.
진찰결과 위암 2기라는 판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의 귀를 위심하며 혹시 오진이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렇다면 서울 암전문 병원에 가서 다시 진찰을 받아봐야지 생각하면서 집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날 저녁 형제들 하고 처가집 쪽으로 모두가 발칵 뒤집어져서 모두가 어수선하게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다음날 서울삼성병원에서 진찰을 받을 때 형님, 형수님, 누님하고 자형, 저의 처하고 함께 동행하게 되었는데 삼성병원에서도 진찰결과 성남병원에서와 같이 위암이라는 판정을 받게 되어 이제는 정말이구나 하고 시인을 하게 되었습니다.
진찰결과 젊은 의사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이 화를 벌컥내며 이런 상태로 지낼 수 있었느냐며 당장 입원부터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아주 위급한 투로 입원부터 하라고 종용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는 정말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삶을 포기하고픈 실망 그 자체였습니다. 누구의 말도 그때 제 귀에는 위로의 소리건 용기를 북돋아 주는 소리건 멍하는 소리밖에 웅성웅성 하는 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았습니다.
하늘이 까맣게 보인다는 표현을 그때 실감했습니다. 이제는 종착역이구나 이제는 끝이구나 이런 생각을 하니 아무런 의욕도 희망도 없고 삶은 멀어져가는 그런 잿빛처럼 꺼져만 가는 느낌 그 자체였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때 그 심정은 생각조차 떠올리고 싶지 않습니다.
말로서는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당해보지 않고 그런 환자의 가족이 아니면 아마도 이해가 가지 않을 것입니다.
바로 그때 이런 생각이 내 머리를 스치더군요. 짐착하자 그리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이것이 운명이라면, 하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정리가 되는듯 한결 가벼운 마음이 들게 되었습니다. 심신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날 형제들과 의논한 결과 수술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병원측에서 당장은 입원실이 없고 입원실이 비면은 연락을 준다고 해서 그날은 집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정말 비통한 마음으로 집에 오는 버스에 타고 있으니 모든 사물이 하나도 힘이 없어 축늘어져 있는 죽음 그 자체 같이 생동감이 하나도 없어 보였습니다.
집에서 초조하게 며칠을 기다리니 약 3일후엔가 연락이 왔습니다.
다음날 수술을 하기 위해서 삼성병원에 가서 담당의사에게 수술을 하면 살 수 있은 확률은 몇%나 되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의사 선생은 아주 무뚝뚝하고 퉁명하고 사무적인 어조로 희망은 약 30% 밖에 안된다고 했습니다. 조금이라도 희망을 가졌던게 이제는 모두가 끝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앞이 캄캄한게 절망밖에 없었습니다.
그당시 남들이 옆에 있지 않았더라면 통곡이라도 하고 싶은 그런 심정이었습니다. 그때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옆에 있던 형수님의 친정 작은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먼저 경험해 본 분들의 경험담이었습니다. 수술을 할 경우 완전 초기에는 성공률이 높은게 2~3기, 3~4기의 경우에는 수술을 할 경우 암세포가 급속하게 온 몸으로 전이가 되어 생명을 단축시킬 수 있는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저런 가족들의 의견들이었습니다.
이때 저의 누님이 이런 제의를 조심스럽게 해왔습니다. 암은 수술을 받으면 빨리 생명을 잃을 수 있다는 이야기와 또 하나는 자연요법으로 체질을 개선하고 식이요법으로 건강을 다스릴 경우 치료의 가능성은 있다고 했습니다. 수술을 해도 성공확률이 30%밖에 안된다고 하니 어떻게 판단이 서지 않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구요. 그때 저에게 있어서는 자연요법이니 체질개선이니 하는 말은 전혀 생소한 말이었습니다.
한참 망설이던 끝에 누님의 말씀을 따르기로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수술해도 30%밖에 되지 않으니 자연요법을 따르더라도 30%는 되지않느냐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누님은 자연건강에 대해서 많은 날들을 실천하고 연구를 하고 있었던 때였습니다. 그것은 내가 건강요법을 시작하고 난후에 안 일이었습니다.
아무려면 동생을 잘못 인도할리가 있겠냐는 생각이 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의 주위 사람들은 수술할 것을 은근히 종용하였습니다.(저의 집사람을 포함해서 젊은 층의 사람들. 참고로 저의 처제되는 사람은 병원 수간호사로 현재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다들 자연건강요법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런 이후부터 자연건강으로 암을 이기기 위한 본격적인 방법을 연구하고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당장 실천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날부터 약 20일정도 자연건강원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자연건강원에서 배운 식이요법과 체질개선, 정신요법 등을 집에서 실천해 보려니 정말 어려웠습니다.
집에서는 실패하고 나서 산좋고 물좋은 곳에서 나혼자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로 결심을 하고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설곡리라는 유명산 발치에 구옥 한채를 운좋게 구입을 하게 되었습니다. 가평에 들어오고 난후부터는 본격적으로 자연건강원에서 배우고 익힌 요법을 하루의 일과표를 작성해 놓고 엄격하게 실천했습니다. 지금도 실천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내가 생활하고 있는 곳은 낮에는 사람의 그림자라고는 볼 수도 없고 밤에는 바람소리, 밤에 우는 새소리, 개짖는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는 아주 무아지경에 빠질 수 있는 그런 조용한 화전민들이 살던 곳이었습니다. 여름에는 각종 벌레소리, 부엉이소리, 개똥벌레, 두견새 울음 소리, 개구리 소리, 정말 조용한 곳입니다.
식이요법과 건강운동을 엄격히 실천한 기간이 약 26개월 정도였습니다. 지금의 상태는 건강을 거의 회복하고 있으며 자동차도 손수 운전해서 다닐 수 있을만큼 건강을 되찾았습니다.
보시다시피 저는 99년도 진료이전과 비교해서 체중이 약 5~6kg 감량되었을 뿐 힘이 약해졌거나 식욕이 없거나 위부위에 통증이 있다거나 하는 증상은 전혀 없습니다. 식욕이 너무 왕성해서 지금 절제하기가 힘들정도 입니다.특히 술과 담배를 끊고나니 나의 건강은 위암진단 이전보다 더욱더 좋아진 그런 느낌입니다.
여러분! 현대의학에서도 확실하게 정복하지 못하는 암이라던가 각종 질병으로 걱정하시는 가족들이나 환자분들은 절대로 포기하지 말고 자연건강회에서 가르치는 각종 요법을 제대로 실천만한다면 반드시 저와 같이 좋은 결과가 반드시 올 것을 확신합니다.
사실 저는 오늘날까지 환자라는 생각을 추호도 해본 적이 없으며 다만 자신감을 가지고 열심히 살겠다는 생각만 했을 뿐입니다.
자연건강회에서 배운대로만 실천을 하다보니까 점점 좋아진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뿐더러 위의 불쾌감이나 통증을 한번도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좋아졌다는 것입니다.
항상 근심 걱정을 하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모든 사물이나 자연환경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마음을 비우고 생활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말입니다.
다음은 식습관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루 2식은 말할 것도 없고 지금 저같은 경우 요즈음에는 생식을 하고 있습니다.(쌀, 현미쌀, 기장쌀, 수수, 찹쌀, 검정콩, 검정쌀, 다시마국물)
다음은 녹즙을 마시는데요. 야생하는 우리우리가 먹을 수 있는 풀,가령 민들레,쑥,미나리,돈나물,냉이 등 지금은 그렇게 녹즙을 만들어 복용합니다.식사 시간은 오전 10시 오후 5시입니다.지금 녹즙에는 미네랄,비타미느철분,인같은 우리몸에 필요한 영양소가 많이 들어잇어서 허기를 느끼지 않습니다.배가 고프지 않아요.그리고 풍욕은 하루에 7~8회는 꼭 실천하고 족탕도 수시로 실천하고 있습니다. 물론 관장도 중간 중간 실시합니다. 기상과 동시에 합장합척, 붕어운동 등 6대법칙을 매일합니다. 겨울철에는 녹즙거리가 마땅치 않을 경우에는 고구마,당근,감자,사과,배추, 우엉 등을 갈아서 먹되 먹기가 조금 힘들면 여름에 만들어 놓은 엑기스(먹을 수 있는 풀+설탕 1:1)을 섞어서 마시고 건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야기는 어제 들은 이야기인데요. 우리 아파트 101동에서 살고 있으며 위암환자(59세)였는데 저와 증세가 같은 환자였습니다. 나도 잘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분 자녀들은 모두 성장해서 집에 모셔놓고 좋다는 약은 다 써 봤는데 3일전에 타계하셨답니다.
꼭 나같은 환자였는데 벌써 죽었다니 정말 안타깝네요. 그래서 이 세상의 모든 좋다는 약보다 더 좋은 약은 좋은 물, 좋은 공기, 좋은 환경보다 더 좋은 치료제가 없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끝으로 꼭 부탁드리고 싶은 말은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면 병마는 반드시 물러가게 될 것이라는 것을 저는 확신합니다.(회원)
[이 게시물은 자연건강님에 의해 2013-06-19 15:37:00 2002년 03월호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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