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호-베지테리언 축제
- 자연건강
- 2009-12-19 12: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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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지테리언 축제
-세계 채식주의자 대회-
미야자와 겐지
“그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모두 신의 섭리입니다. 모든 것은 신이 뜻하시는 대로입니다. 지극히 경외할 따름입니다. 천주의 은총을 찬양하옵고 천주께서 뜻하시는 바는 측량할 수 없도다.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빵을 먹고 양모와 마(麻)와 목면을 입고 샐러리와 순무를 먹고 또 돼지고기와 연어를 먹습니다. 모두 이것은 신의 섭리입니다. 천주의 은총이며 선(善)입니다. 어떻습니까? 이의가 있습니까?”
이번에는 박사가 약간 염려스러운 듯이 안색을 어둡게 하면서 슬쩍 식장을 둘러 보았다. 그러고 나서 마치 탈토와 같은 기세로 결론으로 들어갔다.
“나는 시카고 축산조합의 고문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단 신의 정의를 널리 알리기 위해 여기에 왔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신을 믿습니다. 무엇이, 왜, 신에게 복종하지 않는 것입니까? 왜, 신의 은총을 거부하는 것입니까? 하루빨리 이것을 회개하고 순종하는 신의 양들이 되십시오.”
끝으로 박사는 크게 포효를 한번 하고나서 전광과 같이 자기 자리로 돌아가 곁눈으로 지그시 식장을 둘러 보았다. 박수가 나오기도 했지만 동시에 큰 비웃음 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즉 우리는 식장의 신성함을 흐트려 버릴지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여 가능한한 꾹 참고 있었는데 박사의 의론이 너무 우스워 끝에 가서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맨 앞 열에 있던 몸집이 작은 신자 하나가 올라와서 제사 차장에게 무엇인가를 말하였다. 차장은 크게 수긍하였다.
그 사람은 이 마을에 있는 초등학교 선생인 것 같았다. 침착하게 제단에 서서 공손히 좀전의 매튼 박사에게 인사하였다. 확실히 박사는 새파랗게 질려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 신자는 다음에는 식장 전체에 인사하였다. 열렬한 박수가 나왔다. 그 사람은 뉴파운드랜드의 사투리를 약간 넣어 연설하기 시작하였다.
“이교 논란에 대해 저는 프로그램에서 허용하는 대로 종교 연설로써 대답하려고 합니다.
헬시우스 매튼 박사가 하신 연설은 그야말로 전형적인 삼단논법입니다. 우선 박사의 신학을 받들고 이것을 재차 식장에 승인시켜 대전제로 하고 다음에는 베지테리언이 여기에 어긋난다는 것을 말하여 소전제로 하고 끝으로는 베지테리언이 왜 신에게 어긋나는가를 단정하여 채식을 하는 소선(小善)이 왜 신에게 어긋나는 대죄인가를 암시하셨습니다. 과연 간결 명료한 소론(所論)입니다.
그런데 이 전형적인 논리에 다소 의문을 갖는다는 것이 유감스러울 따름입니다. 첫째로 박사님은 1920년대에나 어울릴 크리스트교 구(舊) 신학 중에서 추출된 간결한 신학을 단 이 두 마디로 표현하였는데 이것이 과연 적당할까요?
오늘 여기에 모인 사람들이 반드시 크리스트교인들 뿐인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는 하나 어느 종교에 있어서도 이것을 말하고 싶어 합니다. 단 이것은 박사님의 신학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냥 가장 평범한 것이지요.
둘째는 그 신학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제가 가장 의문점을 갖는다는 점입니다. 특히 섭리를 해석하는 데 있어서 박사님은 도저히 신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섭리의 관념은 크리스트교에 한하지 않고 일반 종교에 공유하는 것인데, 그 해석을 그르치는 일은 우리도 신학박사처럼 어느 종교에 있어서나 또 실지로 많이 저지르고 있습니다.
박사님이 주장하시는 바를 반복한다면, 제가 요점을 필기해 두었으므로 그것을 반복 읽어 보겠습니다. 그 안에서 일어난 사건은 모두 신의 섭리이다. 모든 것은 신이 뜻하시는 대로이다. 지극히 경외할 따름이다. 천주의 은총을 찬양하고 천주께서 뜻하시는 바는 측량할 수 없도다. 이것은 섭리이다. 은총이다. 선이다. 대강 이렇습니다.
이것을 더욱 언약할 때는 이렇게 됩니다. 현상은 모두 신의 섭리이기 때문에 선(善)이 되면 좋을 것 같지만 극히 위험합니다. 여기서 선이라고 하는 것은 신의 입장에서 보는 선입니다. 이것은 절대 선이지요.
만일 그것을 우리들의 입장에서 본 선이라고 해석할 때 비로소 선각자인 매톤 박사님이 주장하시는 오해를 불러 일으킵니다. 현상은 모두 선이다. 우리가 소를 먹는다. 섭리이고 선이다. 내가 화가 나서 매튼 박사를 때린다. 섭리이고 선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현상이고 섭리 안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신의 위치는 측량할 수 없다. 대충 이렇게 된다.
내가 여러분에게 권총을 들이대고 여러분의 귀국 여비를 모두 거두어 들인다면 아주 좋을 것이다. 내가 누군가에 속아서 여비를 빼앗기고 손해를 보게 되어 한 발을 쏜다. 그 사람이 죽는다. 섭리이고 선이다.
특히 재미있는 것은 여기서 베지테리언이라는 한 부류가 동물을 먹지 않는다고 말하는 점이다. 이것 역시 신의 섭리이고 선이데 왜 매튼 박사님은, 동양식으로 형용해서, 노발충천하여 이것을 반박하는가? 이 점에 있어서 매톤 박사가 주장하는 바는 결국 자가당착으로 끝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 결론은 매우 좋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시카고 축산조합에서 육식을 권장하는 팜플렛에나 나오는 문구입니다. 끝으로 용감한 매톤 박사님에게 심심한 경의를 보냅니다.”
열렬한 박수 갈채가 천막을 뒤집을 듯이 터져 나왔다.
“아주 노골적이군. 그다지 교육가답지도 않은 베지테리언이군”라고 진씨가 큰 비웃음을 지으면서 중얼거렸다.
그런데 그 박수 소리가 채 가라앉기도 전에 벌써 이교도석 중에서 빼빼 마르고 신경질적으로 생긴 사람이 제단으로 뛰어 올라왔다. 그 사람은 손을 부들부들 떨고 눈동자도 희번덕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컵에 있는 물을 한모금 마신 뒤 약간 침착해 진듯 한 발 나아가서 연설하기 시작했다.
“매톤 박사의 신학은 크리스트교 신학입니다. 또한 그 섭리를 해석함에 있어서 조금 유감이 있었던 점은 앞의 연사가 지적한 바와 같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모인 베지테리언 여러분들중 약 1할이 불교 신자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도 사실은 불교 신자입니다.
크리스트교 나라에서 태어나 불교를 믿는 까닭은 아무래도 불교가 심원(深遠)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아미타불의 화신 친향승정(親響僧正)에 의해 계신된 본원사파(本願寺派) 신도입니다.
즉 나는 한 사람의 불교도로서 우리 동포인 베지테리언 불교 신자 여러분에게 한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 세계는 모두 고(苦)이다. 이 세계에서 행하여지는 것 하나도 고(苦)가 아닌 것은 없다. 여기는 모두가 모순이다. 모두 죄악이다.
우리들의 심상중에 있는 미진(微塵)에서도 흔히 선(善)의 흔적을 발견할 수가 없다. 이 세계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선(善)인 것은 뿌리 없는 나무이다. 우리들이 느끼는 정의는 결국 스스로 기분이 좋다고 말하는 것 뿐이다. 이것은 이렇게 되지 않으면 안된다라든가 이것은 이렇게 되면 좋다라든가 모두 그런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동물이 불쌍하기 때문에 먹지 않는다고 한 것은 우리가 말한 것이 아니다. 이 모순된 세계를 떠나 아득히 먼 저 서방의 선각자 구제자 아미타불에게 돌아가야 할 것이다. 그런 다음에야 채식주의도 좋은 것이다. 이 내용은 의론이 아니다.
우리들의 대교사(大敎師)로 삼아 부처의 화신인 친향승정이 직접 육식을 하고, 그 후 우리 본원사는 대대로 이것을 실행해 오고 있다. 일본 신자의 형용을 빌린다면 한 항아리로 옮기는 것과 같이 육식을 계승하고 있다. 그 다음에는 불교 창설자인 석가모니를 보십시오. 석가는 출가의 길을 걷기 위해 단특산(檀特山)이라고 하는 숲속에서 6년간을 정진 고행하였습니다. 하루에 쌀알 하나와 아마(亞麻) 열매 하나를 먹었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그 고행이 무익(無益)함을 깨닫고 산을 내려와 강에 몸을 씻고 마을 아가씨에게 크림을 얻어 먹고 마침내 해탈을 하였다고 합니다.
오늘날에는 우유나 계란, 치즈, 버터조차 얻지 못하는 베지테리언이 있습니다.이들이 만일 불교도라면 논할 여지도 없고 불교도가 아닌 자도 크게 참고로 하면 좋을 것입니다. 더욱이 석가는 몰려드는 많은 신자들에게 결코 육식을 금하지는 않았습니다.
오종정육(五種淨肉)이라고 명명하여 그다지 잔인한 행위에 의하지 않고 얻은 동물 고기는 먹어도 된다고 하였습니다. 오늘날의 베지테리언은 사실 인도의 옛성자들 보다도 음식물의 어떤 점에 대해서는 아주 엄격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국 불비한 기형이다. 음식물에 대해서만 엄격했지 석가가 제정한 다른 법률에 대해서는 하나도 따르고 있지 않다. 특히 베지테리언 여러분은 이것을 잘 명심하시오. 석가는 만년에 가서는 그의 사상이 원숙해짐에 따라 전혀 채식주의자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보십시오. 석가는 최후에 단공(鍛工, Chainger)라는 것을 받드는 음식물을 받았다. 그 음식물은 돼지고기를 주(主)로 하고 있는데, 석가는 이 돼지고기를 위해 미리 해(害)가 되는 위장을 완전히 구제해서는 안된다는 사상을 가졌던 것 같다. 그 덕에 마침내 81세를 일기로 쿠시나가라라는 곳에서 적멸(寂滅)하였다.
불교 신자 여러분, 석가의 행위를 모범으로 하여 그를 본받읍시다. 석가와 닮은 꼴이 되어 석가의 모든 덕을 그것의 이만분의 일, 오만분의 일, 혹은 이십만분의 일일지라도 답습합시다. 그런 후라면 채식주의도 용납될 것입니다. 여러분과 같이 기형인 신자는 아마 지하에 있는 석가도 귀찮아 할 것입니다.”
박수 갈채가 천막을 뒤엎을 정도로 터져 나왔다.
그때 나는 방금 한 말이 너무 심해 머리가 핑 돌았다. 그리고 비틀비틀 거리며 나갔다. 무엇을 말해야 좋은가를 생각하고 있을 때 나는 이미 연단에 서서 모두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진씨가 바로 정면에서 자꾸만 박수를 보냈다. 모두는 마치 들판에 핀 꽃처럼 보였다. 나는 말하였다.
“앞의 연사는 불교도로서 채식주의를 부정하고 육식론을 제창하였는데 유감스럽지만 나 역시 경건한 석존(釋尊)의 제자로서 앞의 연사가 주장하는 바의 오류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선 미리 말해 두고 싶은 것은, 앞의 연사는 요컨대 불교 특히 부패된 일본 교권에 대해 일종의 골동품적 호기심을 가졌을 뿐 결코 불제자도 아니고 불교도도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것은 연설을 하는 중에 여래정편지(如來正偏知)에 대해 해서는 안될 언사를 번번히 즐김으로써 분명해졌습니다.
특히 끝에 한 말을 들어 보시오. 지하에 있는 석가도 아마 귀찮아 할 것이라고, 이것은 무슨 말입니까? 몇 사람인가를 여래를 믿는 자로 삼고 이것이 지하에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결코 이와 같이 불제자라는 겉 가죽을 씌워 공고사곡(貢高邪曲)의 내심(內心)을 지닌 악마의 사도를 허용할 수는 없습니다.
보시오. 그는 겨자씨 정도의 지식을 갖고 그런 무상토(無上土)를 측정하려고 하는, 그러한 견해를 다시 내가 반복한다는 것조차도 부끄러워 해야 할 터이나 실증을 하기 위해 그것을 지적한다면 그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크리스트교 나라에서 태어나 불교를 믿는 까닭은 아무래도 불교가 심원(深遠)하기 때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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