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순교」인가 「동면」인가 // 큰 파문을 던진 학조 니시(西勝造)의 죽음
- 자연건강
- 2009-12-03 18: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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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시라고 하는 한 노인이 지난 11월 21일 75세로 사망하였다.
이 노인은 이른바 서양의학에 대하여 정면으로 도전한 니시(NISHI)의학 서식(西式)건강법의 관계자 사이에서는 학조(學祖)로서 교조적인 신뢰와 존경을 받던 사람이다.
“인간은 니시의학을 실천하면 당연히 120세까지 살 수 있다.”
이것은 니시의 신념이라기 보다 니시의학의 상징적인 하나의 공론이며 목적이기도 하다. 75세라는 나이는 보통으로서는 충분히 존경받을 만한 고령이다. 그러나 니시의 경우 그의 죽음은 전국 300만으로 추산되는 회원들에게는 여러가지 의미로 상당한 쇼크를 주었으며 사인의 해석을 싸고 여러가지 설이 일어나고 있다.
하나의 유력한 설로는 “흑인을 차별대우에서 해방시키기 위하여 검은 피부를 희게 하는 특수 인체실험의 희생이 된 것이다.”라고 하는 순교설이다. 또 이것이 니시의학의 한계이다. 120세까지 살 수 있을 리가 없다라고 하는 실망자들, 자신이 가르쳐 준 니시의학을 완전하게 지키지 못한 당연한 결과다라고 하는 이론파 등, 사망진단서에는 ‘과로에 의한 노쇠’라고 적혀 있으나 해부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가 4년후에는 반드시 그리스도처럼 부활한다. 다만 동면하고 있는 것 뿐이다”라고 광신적이라 할 수 있는 니시부활설이 회원중에는 의외로 많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떤 상징적 인간의 죽음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소재를 모아보았다.
흑인을 백인으로 만들고 싶다 차별 대우를 보고 타오른 인간애!
자신을 생체실험대로 극약을 먹다 니시의학의 원리는 예방의학 입장을 취하고 있다. 현재의 의학을 본말전도의 물구나무서기 이론으로 정면에서 반대한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페니실린 등 현대의학(서양의학)의 치료법 모두를 부정하기 때문에 학계로부터는 무시당하고 있는 것이 실정이다. 그 원리의 특징은
① 혈액은 심장의 펌프작용에 의해서 순환하는 것이 아니고 전신의 모세혈관
망의 표면장력 작용을 동력으로 순환한다.
② 글로뮈 즉 동정맥전철로(바이패스)라고 하는 새로운 혈액의 유로(流路)
가 있다는 설.
이것은 니시의학에 의하면 하천의 방수로와 같은 것으로 혈액의 순환
을 조절해서 뇌출혈 등 생각지 않은 증상의 경우에 작용하여 예방하는
역할을 한다. 회원들 사이에서는 글루뮈만 제대로 되어 있으면 모든 병
의 발작을 막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③ 증상이 즉 요법(症狀卽療法)이라는 견지의 자연양능설.
이래서 회원 중의 대부분은 언제나 포켓트에 「뇌출혈이 되어도 나에게
는 강심제를 놓지 말아주시오.」라고 쓰고 서명날인한 명함을 가지고
다닌다고 한다.
여기서 니시의학에서는 건강 보전의 원칙을 생각하여 6개의 건강 증진법
을 고안했다.
니시의학과 서식건강회 즉
① 평상 위에 잔다
② 딱딱한 경침을 사용한다
③ 붕어가 헤엄치는 흉내를 하는 붕어운동
④ 모관법이라고 해서 손발을 수직으로 올려서 미진동시키는 모관운동
⑤ 합장합척
⑥ 등배운동이다.
이외에 생야채, 생수를 많이 마시는 것 등이 특징적 요법. 서식건강회는
수년 전에 사단법인 신청을 제출했는데 의사법과의 관계로 접수한 채로
아직 인가가 나지 않은 단체. 서식건강회관, 서식건강학원 등이 있다.
니시 한 사람의 원맨적 경영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사후의 후계자 문제,
상속 재정문제도 상당히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니겠느냐고 건강회의 간부는
말하고 있다.
회원과 잡지 구독자를 포함하면 3백만에서 5백만명이 서식건강법을 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에서의 대논쟁 찬미의 목소리와 엇갈린 비판의 소리 최근
에 하와이와 로스앤젤스의 신문에 이런 기사가 실렸다.
“흑인 해방을 위하여 자신의 생체실험으로 쓰러진 학조(學祖)의 죽음”―흑
인이 차별대우를 받는 최대의 원인은 피부의 색깔때문이라고 생각한 그 의학
도는 자신이 오랫동안 제창해 온 신체단련법으로 이룩한 자신의 몸을 실험대
로 쓰기로 결심했다.
자신이 추출하여 만든 색이 하얗게 되는 ‘극약’을 계속 마셨다. 그 결
과 피부색은 백색이 되었으나 자신의 생명은 끊어졌다.―이런 내용의
기사였다. 동양계의 미국인과 재미교포 사이에서도 이 일로 평판이 자자했
다. 흑인해방의 희생자. 또는 순교자라고 하는 동정심과 찬미론, 다른 한
편으로는 시대착오도 너무 지나치다. 그것이야말로 야만적 기풍외의 아무것
도 아니다.―라는 준렬한 비판의 목소리. 그 죽음을 싸고 크게 2개의 의견
이 있었던 모양이다.
이 현상은 패전직후의 남미에서 일본계 사람들 사이에 심한 트러블을 일으켰
다. ‘이기는 패’ ‘지는 패’ 소동과 잘 닮았다. 그만큼 이 논쟁은 큰 파
문을 던졌다.
그 의학도가 서승조씨. 동경도 스기나마구 고엔지의 니시의학 창설자.
그 회의 회장. 75세의 생애를 마감한 것은 지난 11월 21일 오후 5시 24분.
지난 8월 2일 아침. 서승조씨는 비행기로 하네다 공항에 내렸다. 하와이에
서 돌아온 것이다. 거의 100명에 가까운 환영인파 속에 묻혀 트랩에서 가벼
운 인사를 했다. 스튜디어트 요시다양의 꽃다발을 받고 그녀에게 부축받으
며 터미날의 대합실로 사라졌다. 환영인파들의 만세소리와는 대조적으로 그
발걸음은 무겁고, 피곤해 보이는 것이 묘하게 인상적이었다. 공항에서 곧바
로 자택으로 향했다.
서선생이 하와이로 여행을 떠난 것은 6월 24일. 그것은 하와이의 회원들의
초대여행이었는데 건강회 간부와 가족들은 이것을 기회로 푹 정양을 하고 오
시면 좋겠다고 열심히 권했다. 아주 건강했던 서선생은 이 봄부터 눈에 띄
게 체력이 떨어져 누가 봐도 선생 몸에 이상이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느낄만
큼 약해져 있었다. 일본 사람들 밖에는 이 일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때 그
는 ‘생체실험’에 들어가 있었다. 측근의 한 사람은 월간 니시의학의 편집
장. 호소타니씨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청년시대의 수년을
미국에서 지내온 선생은 입버릇처럼 “나의 눈으로 보고 온 흑인의 차별을
어떻게 없앨 수 없을까”라고 말하곤 했다. 흑인해방에 대한 정의감, 선생
이 그것을 실행에 옮긴 것은 금년 봄 4월경이었다고 생각된다.
그 방법은 선생답게 검은색을 희게 만드는 일이었다. 선생은 자신이 생각한
약(배소, 유황, 수산, 규소, 조토를 배합한 것이라고 한다)을 마시기 시작했
다. 비소나 유황은 독약 또는 거기에 가까운 약이므로 몸에 좋은 영향을 줄
리가 없다. 건강한 선생은 매일 일정량의 약을 먹으면서도 일상적인 일을 계
속했다. 한달의 반은 전국에 강연여행으로 그것도 기차속에서 취침하는 강행
군이었다.
동경으로 돌아오면 니시건강학원에서 강의·강연 그외에 건강회의 책임자로
서 자금 걱정까지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외에 밤에는 거의 철야상태로 저
술에 전념했다. 이것만으로도 보통사람이면 쓰러졌을 것이다. 아무리 뛰어
난 건강을 가진 선생이라 하지만 무리에 무리를 겹쳐진 피로에다가 그러한
강한 약을 먹었으니 견딜 수가 없었을 것이리라. 선생의 체력이 눈에 띄게
약해져 왔다.
“언제까지나 그런 일을 하고 있어선 위험하다”라는 의견이 주위 사람들로부
터 나온 것은 당연하다. 그것은 선생이 주창한 서식건강법과는 관계없는 행
위인 것이다. 그 분의 주의가 의사에게는 가지 않는 선생이니 “우리들이
판단하여 충고하지 않으면 안된다”라고 약을 먹는 것을 중지하라고 권했었
다. 차남인 오스케씨의 충고도 있고 하여 처음에는 75일 예정이었던 것을
40여일로 일단 마쳤다. 그때 선생은 피부를 희게 만드는데 대한 어떤 확신
을 갖고 있었다.
“초기의 목적을 달성했으니까 우선 휴식하기로 한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원래 피부색이 흰 분이었으나 자세히 보면 그 약 때문에 색이 더 희어져 있
었던 것 같다. 그 무렵에 하와이에서 초청이 왔다. 3개월 예정이었다. 우리
들은 “정양을 위해”라고 그 여행을 권했던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나쁜 결과가 되고 말았다. 활동적인 선생은 일본에서의 일이 출발부
터 더 피로해 있었던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당분간 자택에서 휴양을 하
고 있었는데 갑자기 행방불명이 되고 말았다. 두 아들 외에는 거처를 알려
주지 않았다. 니시씨는 그때 동경 히비야에 있는 제국호텔의 별실을 빌려
서 단식요법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것은 16일간 계속됐다. 9월초에 서식건
강회관에 다시 모습을 나타내셨다. 전처럼 건강해 보이지는 않았다고 한
다. 그때부터 2개월동안 본래대로의 일과가 시작됐다.
10월 23일 오사카에 출장을 간 것이 나빴던 것 같았다. 귀경후에는 자택에
묻혀 있는 생활이었다. 차남인 오스케씨가 데려온 친척 의사가 진찰을 했
다. 용태는 날이 갈수록 악화되었다. “이번에는 정말 위험한 것 같다”라
고 측근에게 말하며 유언장까지 검토한 니시씨는 11월 21일 서거했다. 축지
본원사에서 성대한 장례가 치뤄졌다. 자민당의 이시이씨를 장의위원장으로
하며 植竹참의위원 우정상, 마에다 참의원, 이토츄혜미씨 등 서회회원과 지
인 수천명이 장례에 참석했다.
니시씨의 유해는 해부는 커녕 화장을 원하는 가족들의 희망도 들어주지 않
고 매장된 채 多磨 묘지에 묻혔다. 선생은 선생이 항상 말씀하신 “동물은
몸을 조절하기 위해 동면한다. 그것은 인간에게도 가능한 것이다”라고 하
는 지론에서 정양을 위해 동면하고 있다. 반드시 다시 건강한 모습을 우리
들 앞에 보여주실 것을 확신한다.
―니시 팬들의(전부는 아니지만) 신념을 지키면서 수수께끼를 감춘 채
多磨 묘지의 지하 10자의 땅밑에 조용히 잠들고 있다.(협찬 : 양경집)
〔주〕 이 글은 1959년 12월 7일자 일본 유수의 일간지인 「산케이신문」에
게재된 기사를 발체하여 소개한 것입니다 서식건강법 창안자인 서(NISHI)
선생은 당대의 유명한 내과전문으로 부터 19세까지도 살기가 어려울 것이라
는 선고를 받고 분발하여 건강법 연구와 실천에 몰두했습니다. 이론적으로
는 동양의 한적 1만권과 서양의 원서 6만 3천권으로, 도합 7만 3천권의 문
헌을 참고하였으며 실천면에서는 셰계의 건강법 360여종을 자신의 실제 체
험을 통하여 이른바 서식건강법을 완성하였습니다. 노년에는 미국의 유색인
종인 흑인들의 비참한 생활과 인종차별을 목격하고 그들을 구원하기 위하
여 흑인의 피부를 백색으로 바꾸는 연구를 시작했으며 마침내 자기 몸을 실
험대에 올려 생체실험을 하다가 75세를 일기로 순직 서거하였습니다.(회장)
[이 게시물은 자연건강님에 의해 2013-06-19 15:19:39 2001년 11월호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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